1921년 4월 1일

어둠 속 천둥번개 치고, 폭풍우 일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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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4월 1일, 동아일보는 창간 1주년을 맞아 1면에 기념 사설을 실었습니다. 제목은 다소 평이한 ‘1년을 회고하야’인데, 부제(副題)가 오히려 눈길을 끕니다. ‘운뢰둔, 군자이경륜(雲雷屯, 君子以經綸)’. 주역에 나오는 말입니다. 주역은 인간과 자연의 존재 양상과 변화체계를 64괘(卦)로 설명하는데 이 중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을 가져온 겁니다. 수뢰둔은 험난하고 꽉 막혀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상징하죠. 그러니 부제인 ‘운뢰둔···’은 ‘먹구름 속에 천둥번개가 치고 폭풍우가 일어나니, 군자는 이로써 세상을 다스린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네요. 아직 알쏭달쏭하겠지만, 사설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해가 갑니다.

사설의 앞부분은 창간 당시의 감개무량함, 병들고 행방불명된 동인들에 대한 안타까움, 발매반포 금지와 무기정간 등 일제의 핍박, 그리고 역경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 동포의 사랑에 대한 감사 등입니다.

동아일보 창간 1주년인 1921년 4월 1일자 1면 상단 그림. 어린아이가 붓을 활에 장전하는 장면을 그려 필봉으로 일제를 겨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어 넓은 안목으로 천하의 대세를 고찰합니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승전국이 파리강화회의를 열어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결정적 순간 등을 돌린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결정한 뒤였습니다. 승전국도 패전국도 아닌 나라들에 대해서는 ‘민족자결주의’를 적용한다는 원칙을 세웠죠. 국제평화와 안전, 국제협력 증진을 꾀한다는 취지에서 국제연맹을 설립한 데 이어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산하기관인 상설국제사법재판소도 태동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후 세계는 평화나 안전 같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 몫을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는 욕심을 멈추지 않아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사설은 △패전국에 대한 시기와 의심 △‘세계의 화약고’ 발칸반도의 정정 불안 △위협받는 폴란드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발트 해 연안 신생국 △영국과 프랑스의 알력 △미국의 고립주의 △소비에트정부 출범 등의 불안요인을 열거합니다. 그러면서 ‘빈국은 부국을 원망하고 부국은 빈국을 모멸하니 세계의 장래가 암담하고 인류의 앞길이 참담하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사설은 국내로 눈을 돌려 경제계, 정치계, 학술, 예술 등 모든 분야에 ‘큰 파도 같은 절대의 경쟁세력’이 조선인을 상류에서 하류로, 도회지에서 산간벽지로 쫓아내 쓸어버리는 경향이 날로 심하다고 진단을 내립니다. 이 세력이 일제를 가리킨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어 ‘이런 세계에, 이런 시대에, 이런 형편에 놓인 조선 사람은 장차 어떻게 그 운명을 개척하며, 그 행복을 꾀할 것인가’라고 탄식합니다. 우리 민족을 기다리는 것은 폭풍우이며,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높은 산, 험한 고개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설은 주역의 ‘운뢰둔, 군자이경륜’을 인용해 어둠 속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폭풍우가 이는 것은 곧 만물을 성장하게 하고, 생명을 통하게 하는 도리가 나타날 징조라면서 지금이 바로 마땅히 일할 때이며, 포부를 널리 펼 때라고 강조합니다. 이에 대비해 정성스럽게, 의연하게 정진하자면서 동아일보도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무거운 사명, 큰 임무를 기꺼이 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무렵 동아일보는 1면 맨 위에 사설을 배치했습니다. 그런데 창간 1주년 기념호인 이날만큼은 사설을 한 단 내리는 대신 무궁화동산의 어린아이가 붓을 들어 활에 장전하는 그림을 올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일제의 폭압으로 비록 지금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암흑 속에 천둥번개와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지만, 첫돌을 맞은 동아일보가 날카로운 필봉으로 일제를 겨냥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一年(일년)을 回顧(회고)하야
雲雷屯(운뢰둔), 君子以經綸(군자이경륜)


本報(본보)의 創刊日(창간일) 四月(사월) 一日(일일)의 一週回(일주회)를 當(당)하야 吾人(오인)은 삼가 讀者(독자) 諸君(제군)의 健康(건강)을 祝(축)하며 在來(재래)의 두터운 眷顧(권고)를 感謝(감사)하는 同時(동시)에 이 機會(기회)에 다시 우리 朝鮮民族(조선민족)의 前途(전도)에 對(대)하야 慶福(경복)을 빌고자 하노라.

四月(사월) 一日(일일), 四月(사월) 一日(일일)은 吾人(오인)에게 印象(인상)이 깁흔 날이며, 感慨(감개)가 만은 날이며, 吾人(오인)의 能(능)히 忘却(망각)하지 못할 날이로다. 그날에 吾人(오인)은 빗을 보앗스며, 소리를 웨첫스며, 그날에 吾人(오인)은 空氣(공기)를 呼吸(호흡)하야 우리의 『生‧생』을 天下(천하)에 傳(전)하얏도다. 하날에 빗나는 太陽(태양)의 威力(위력)과 大地(대지)에 흐르는 生命(생명)의 榮光(영광)을 불러 우리 朝鮮民族(조선민족)의 覺醒(각성)을 促(촉)하얏스며, 自由發達(자유발달)의 文化(문화)를 創造(창조)하야 各(각)히 性命(성명)을 正(정)하는 同時(동시)에, 世界文化(세계문화)에 貢獻(공헌)하기를 希望(희망)하얏도다.

그러나 吾人(오인)의 希望(희망)은 秋收(추수) 때를 當(당)한 農夫(농부)의 希望(희망)이 아니며 順風(순풍)에 快走(쾌주)하는 船客(선객)의 希望(희망)이 아니라 晦冥(회명) 中(중)에 馳(치)하는 電雷(전뢰)와 暴風雨(폭풍우)에 叫(규)하는 怒號(노호)와 갓흔 希望(희망)이엿나니, 當時(당시)의 吾人(오인)의 가슴은 實(실)노 이 緊張(긴장)으로써 破裂(파열)이 되지 아니할가 念慮(염려)하얏노라. 아! 그날이여, 그날에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또한 석기엿스니 이는 險難(험난)한 吾人(오인)의 前程(전정)을 象徵(상징)함이 아니런가. 吾人(오인)은 이날의 一週回(일주회)를 當(당)하야 實(실)로 無限(무한)한 感慨(감개)를 禁(금)치 못하노라.

一個年(일개년)이 瞬刻(순각)이라. 그 期間(기간)이 비록 短少(단소)하나 吾人(오인)의 行船(행선)은 許多(허다)한 風波(풍파)를 當(당)하얏나니 發賣頒布(발매반포)의 禁止(금지)를 當(당)한 事(사) 二十回(이십회)에 近(근)하고, 發行停止(발행정지)의 否運(부운)에 處(처)한 事(사) 三個月餘(삼개월여)에 亘(긍)하얏스며, 同人(동인)이 或(혹)은 退(퇴)하고, 或(혹)은 病(병)들며, 或(혹)은 行方(행방)이 不明(불명)하야 生死(생사)를 未辨(미변)하는 者(자) 有(유)하도다. 變遷(변천)이 多(다)하고 風波(풍파)가 甚(심)함은 人間事會(인간사회)의 恒相(항상)이라 엇지 이를 恨(한)하며 또 歎(탄)할 바ㅣ리오만은 吾人(오인)은 情(정)을 超越(초월)하지 못하며 感覺(감각)을 脫却(탈각)하지 못하는지라 過去(과거)를 回顧(회고)하는 이때를 當(당)하매 果然(과연) 가슴의 激烈(격렬)한 波動(파동)을 스스로 抑制(억제)하기 難(난)하도다.

이제 眼目(안목)을 傳(전)하며 見地(견지)를 換(환)하야 世界(세계)의 推移(추이)와 天下(천하)의 大勢(대세)를 觀察(관찰)하건대 時代(시대)의 紛擾(분요)함과 人心(인심)의 不安(불안)함이 依然(의연)히 歸(귀)할 바를 不知(부지)하며, 定(정)할 곳을 不得(부득)하니 볼 지어다.

永久(영구)한 平和(평화)를 期約(기약)하며 正義(정의)의 確立(확립)을 自任(자임)하든 巴里(파리)의 講和會議(강화회의)를 本源(본원)으로 하야 流出(유출)한 平和條約(평화조약)은 엇지 되얏스며, 此(차)를 中心(중심)하야 回轉(회전)하는 世界(세계)의 形便(형편)은 如何(여하)한고. 國際聯盟(국제연맹)이 成立(성립)하며, 勞動會議(노동회의)가 現出(현출)하며, 國際裁判所(국제재판소)가 確定(확정)되얏스나 獨逸(독일)과 墺地利(오지리)와 露西亞(로서아)에 對(대)하야는 列國(열국)이 依然(의연)히 猜疑(시의)의 念(염)과 憎惡(증오)의 情(정)을 抛棄(포기)하지 아니하며 『퓨-메』 問題(문제)는 解決(해결)하얏스나 『애드리아틱』에 對(대)한 沿岸(연안) 諸國(제국)의 衝突(충돌)과 爭鬪(쟁투)는 依然(의연)히 不絶(부절)하야 빨칸 半島(반도)의 하날이 平穩(평온)하지 못하며,

『팔틱』海(해) 沿岸(연안)의 新設(신설) 小國(소국)은 或(혹)은 存在(존재)에 脅威(협위)를 受(수)하며, 或(혹)은 發達(발달)에 障害(장해)를 受(수)하야 運命(운명) 開拓(개척)에 惟日(유일)이 不足(부족)하되 能(능)히 그 希望(희망)을 이루지 못하야 騷然(소연)하며, 聯合國(연합국)의 中堅(중견)인 英佛(영불)은 每事(매사)에 確執(확집) 抗爭(항쟁)하야 和然(화연)한 關係(관계)를 이루우지 못하며, 米國(미국)은 西半球(서반구)에 孤立(고립)하기를 主張(주장)하야 自家(자가)의 提案(제안)인 國際聯盟(국제연맹)을 承認(승인)하지 아니하니 大槪(대개) 平和(평화)를 期(기)하는 國際聯盟(국제연맹)의 價値(가치)와 效力(효력)은 何(하)에 在(재)하며, 露西亞(로서아)의 過激派(과격파)는 비록 資本主義(자본주의)의 國家(국가)와 通商(통상) 開始(개시)에 奔忙(분망)하나 그 基礎(기초)는 確然(확연)하야 不動(부동)하는지라.

此(차)로부터 流出(유출)하는 社會的(사회적) 各般(각반) 影響(영향)은 或(혹)은 英國(영국)에 及(급)하야 炭鑛(탄광)의 國有(국유) 運動(운동)이 起(기)하며, 伊太利(이태리)에 入(입)하야 産業(산업) 公有(공유)의 暴動(폭동)이 起(기)하며, 獨逸(독일)에 至(지)하야 共産黨(공산당)의 擡頭(대두)를 促(촉)하야 資本主義(자본주의)와 對抗(대항) 爭鬪(쟁투)를 開始(개시)하야 社會(사회)의 安穩(안온)을 破(파)하며 秩序(질서)를 紊亂(문란)히 하되 平和(평화)의 解決(해결)이 何時(하시)에 成立(성립)할넌지 아지 못하겟스니 社會(사회)의 平和(평화)를 目的(목적)하며 産業(산업)의 正義(정의)를 期(기)하든 國際勞動會議(국제노동회의)의 價値(가치)와 效果(효과)는 何(하)에 在(재)한고.

海洋(해양) 自由(자유)와 經濟的(경제적) 交通(교통) 自由(자유)와 軍備(군비) 撤廢(철폐)와 人種差別(인종차별) 撤廢(철폐)와 民族自決(민족자결)과 大小國(대소국) 平等(평등) 等(등)의 이 모든 主張(주장) 提唱(제창)은 今日(금일)에 至(지)하야는 一場(일장)의 夢想(몽상)으로 消滅(소멸)하야 다시 痕迹(흔적)이 無(무)한지라. 各(각)히 軍備(군비) 擴張(확장)의 必要(필요)를 高調(고조)하며, 門戶(문호) 閉鎖(폐쇄)를 宣言(선언)하며, 經濟的(경제적) 帝國主義(제국주의) 維持(유지)에 沒頭(몰두)하야 他(타)의 生存(생존)에 考慮(고려)를 加(가)하지 아니하니 世界(세계) 風雲(풍운)의 低氣壓(저기압)은 이로 좃차 生(생)하는지라 國際裁判所(국제재판소)가 何等(하등)의 效用(효용)을 發(발)하며 何等(하등)의 勢力(세력)을 揮(휘)하리오.

特(특)히 太平洋(태평양)의 波濤(파도)가 安穩(안온)하지 못하도다. 濠洲(호주)와 新西蘭(신서란) 等(등) 南洋(남양)에 立國(입국)한 者(자), 或(혹)은 北美(북미)合衆國(합중국)과 加奈陀(가나타) 等(등) 太平洋(태평양) 沿岸(연안)에 立國(입국)한 者(자) 서로 團結(단결)하며 呼應(호응)하야 他(타)를 排斥(배척)하고 幸福(행복)을 獨占(독점)하랴 하되 將來(장래)의 暴風雨(폭풍우)를 警戒(경계)하는 準備(준비)에 孜孜(자자)히 不怠(불태)하니 此等(차등) 形勢(형세)가 激(격)하야 他日(타일)에 如何(여하)한 風雲(풍운)을 惹起(야기)할 것을 누가 能(능)히 推測(추측)하리오.

天下(천하)의 視線(시선)이 中國(중국)에 集中(집중)하는 도다. 이 나라, 이 古國(고국)이라 人口(인구)가 衆多(중다)하도다. 物貨(물화) 供給(공급)의 莫大(막대)한 利(이)를 此(차)에서 可(가)히 求(구)할지며, 이 나라 이 亞細亞(아세아)의 中原(중원)이라 富源(부원)이 莫大(막대)하도다. 自然(자연) 開拓(개척)의 絶大(절대)한 功(공)을 此(차)에서 可(가)히 求(구)할지라. 天下人(천하인)의 視線(시선)이 特(특)히 戰後(전후) 疲弊(피폐)의 此時(차시)를 當(당)하야 富(부)를 求(구)함이 懇切(간절)한 今日(금일)에 此(차)에 集中(집중)함이 엇지 自然(자연)한 바ㅣ 아니리오. 그러나 利(이)를 爭(쟁)하는 곳에는 殺戮(살육)이 從(종)하며 謀害(모해)가 生(생)하는 것이라, 利(이)의 爭奪場(쟁탈장)이 되는 中國(중국)은 또한 殺害(살해)의 修羅場(수라장)이 될 것은 分明(분명)한 事勢(사세)로다. 하물며 中國(중국) 自身(자신)이 老衰(노쇠)하야 暗昧(암매)하며 昏迷(혼미)하야 完全(완전)한 國家(국가)의 形體(형체)를 不成(불성)함이리오. 西伯利亞(서백리아)의 混沌(혼돈)한 狀態(상태)와 潛在(잠재)한 危機(위기)는 吾人(오인)의 贅言(췌언)을 要(요)치 아니하는 도다.

要(요)컨대 强國(강국)은 依然(의연)히 劍(검)을 杖(장)하야 野欲(야욕)의 눈을 將來(장래)의 『機會‧기회』에 注(주)하며, 弱子(약자)는 强者(강자)의 抑制(억제) 下(하)에 呻吟(신음)하야 鬱鬱(울울)한 不平(불평)을 스스로 心中(심중)에 結(결)하며, 貧(빈)한 者(자)는 富(부)한 者(자)를 怨恨(원한)하고, 富(부)한 者(자)는 貧(빈)한 者(자)를 侮蔑(모멸)하나니 이럼으로 强弱(강약)이 서로 抗爭(항쟁)하며, 貧富(빈부)가 서로 鬪爭(투쟁)하야 世界(세계)의 將來(장래)로 하야곰 暗澹(암담)케 하며 人類(인류)의 前程(전정)으로 하야금 慘憺(참담)케 하는 도다.
이제 朝鮮(조선) 狀態(상태)는 如何(여하)한고. 齋藤(재등) 總督(총독) 文化政治(문화정치) 下(하)에 或(혹) 地方自治制(지방자치제)의 시험, 或(혹) 學校評議會(학교평의회)의 開設(개설), 或(혹) 警察(경찰) 改善(개선), 或(혹) 敎育(교육) 擴張(확장), 或(혹) 産業(산업) 調査(조사) 등 各種(각종)의 革新(혁신)과 施設(시설)이 不無(불무)하나 長久(장구)한 泰平安眠(태평안면)을 貪(탐)한 結果(결과) 他(타)에 數十(수십), 數百(수백) 步(보)를 時代(시대)에 뒤진 朝鮮人(조선인)이 能(능)히 他(타)와 比肩(비견) 共進(공진)하야 生存競爭(생존경쟁)에 榮冠(영관)을 得(득)함은 容易(용이)한 事(사)가 아니니 볼지어다.

經濟界(경제계)에, 政治界(정치계)에, 學術(학술)에, 藝術(예술)에 海濤(해도)갓흔 絶大(절대)의 競爭的(경쟁적) 勢力(세력)은 朝鮮人(조선인)을 驅逐(구축)하야 上流(상류)에서 下流(하류)로, 都會地(도회지)에서 山間僻地(산간벽지)로 掃蕩(소탕)하는 傾向(경향)이 날로 甚(심)하지 아니한가. 이러한 世界(세계)에, 이러한 時代(시대)에, 이러한 形便(형편)에 處(처)한 朝鮮(조선) 사람은 將次(장차) 엇지하야 그 運命(운명)을 開拓(개척)하며, 그 幸福(행복)을 圖謀(도모)하리. 嗚呼(오호)라, 우리 民族(민족)의 길이 險(험)하고 또 難(난)하도다. 그를 기다리는 者(자)가 暴風雨(폭풍우)며, 그를 迎接(영접)하는 者(자)가 泰山峻嶺(태산준령)이뇨.

吾人(오인)은 스스로 아지 못하거니와 오즉 東亞日報(동아일보)의 길이 또한 險(험)한 同時(동시)에 그 使命(사명)이 더욱히 重(중)하며 그 任務(임무)가 더욱히 큰 줄을 스스로 깨닷노라. 易(역)에 云(운)하되 『雲雷屯(운뢰둔)이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經綸(경륜)하나니라』 하얏스니 吾人(오인)은 이때가 맛당히 일할 때인 줄을 알며, 經綸(경륜)을 布(포)할 때인 줄을 아노라. 吾人(오인)은 晦冥(회명) 中(중)에 電雷(전뢰)가 馳(치)하며, 暴風雨(폭풍우)가 起(기)함은 物(물)을 遂(수)하며, 生(생)을 通(통)하는 道理(도리)가 動(동)함인 줄을 아노니

바라건대 朝鮮(조선) 兄弟(형제)는 이에 處(처)하야 精然(정연)히, 또 依然(의연)히 各種(각종) 文化(문화)를 樹立(수립)하기에 努力(노력)하며, 一層(일층)의 生(생)을 實現(실현)하기를 印象(인상) 깁흔 이날에 다시 바라며 빌어 마지아니하노라.
1년을 회고하여
구름과 우레가 ‘둔(屯)’이니, 군자는 이로써 세상을 다스린다


본보 창간일인 4월 1일의 1주년을 맞아 삼가 독자 여러분의 건강을 축원하며 줄곧 두터운 정으로 돌봐주신 데 대해 감사하는 동시에 이 기회에 다시 우리 조선민족의 앞날에 경사스러운 복이 깃들기를 빈다.

4월 1일, 4월 1일은 우리에게 인상 깊은 날이며, 감개무량한 날이며, 우리가 능히 잊지 못할 날이다. 그날 우리는 빛을 보았으며, 소리 높여 외쳤으며, 그날 우리는 공기를 들이마셔 우리의 출생을 천하에 전했다. 하늘에 빛나는 태양의 위력과 대지에 흐르는 생명의 영광을 불러 우리 조선민족의 각성을 촉구했으며, 자유발달의 문화를 창조해 각인의 천성과 천명을 바로 하는 동시에, 세계문화에 공헌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은 가을 추수 때를 맞은 농부의 희망이 아니며 순풍에 쾌주하는 여객선 승객의 희망이 아니라 캄캄한 어둠 속에 달리는 천둥번개와 폭풍우에 부르짖는 성난 울음과 같은 희망이었으니, 당시 우리의 가슴은 실로 긴장으로 터지지 않을까 염려할 정도였다. 아! 그날이여, 그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 또한 섞여 내렸으니 이는 험난한 우리의 앞길을 상징함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창간 1주년을 맞아 실로 무한한 감개를 금할 수 없다.

1년은 삽시간이다. 비록 그 짧은 기간 중에도 우리가 탄 배는 허다한 풍파를 만났으니 발매반포 금지를 당한 일이 20회에 가깝고, 발행정지의 불운에 처한 기간이 3개월여에 뻗쳤으며, 동인들이 퇴사하고, 병들며, 행방불명이 돼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도 있다. 변천이 많고 풍파가 심한 것은 인간사회에 항상 있는 일이라 어찌 이를 한탄하겠는가만 우리는 정을 뛰어넘지 못하며 감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에 과거를 돌아보는 이때를 맞아 참으로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스스로 억제하기 어렵다.

이제 안목을 넓게 하고 견지를 새롭게 해 세계의 추이와 천하의 대세를 관찰하건대 시대의 어수선함과 인심의 불안함이 전과 마찬가지로 돌아갈 바를 모르며, 머물 곳도 없으니 이제부터 하나하나 살펴보자.

영구 평화를 기약하며 정의의 확립을 스스로 떠맡은 파리강화회의를 근원으로 해 생겨난 평화조약은 어찌 됐으며, 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의 형편은 어떤가. 국제연맹이 성립하고, 노동회의가 나타나며, 국제재판소가 확정됐지만 여러 나라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대해서는 전과 똑같이 시기하고 의심하는 생각, 증오하는 뜻을 포기하지 않으며, ‘피우메 문제’는 해결했으나 아드리아 해 연안 여러 나라의 충돌과 다툼은 여전히 끊이지 않아 발칸 반도의 하늘이 평온하지 못하며,

발트 해 연안의 신설 소국들은 그 존재에 위협을 받으며, 발달에 장해를 받아 운명을 개척할 방도를 궁리할 시간이 부족하지만 능히 그 희망을 이루지 못해 떠들썩하며, 연합국 중견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매사에 고집을 부려 양보하지 않고 서로 다투는 탓에 조화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며, 미국은 대서양 서쪽에 홀로서기를 주장해 자국이 제안한 국제연맹조차 승인하지 않으니 대체 평화를 기약하는 국제연맹의 가치와 효력은 어디에 있으며, 러시아의 과격파는 비록 자본주의 국가와 통상을 개시하려 분주하지만 그 근본은 확연해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이로부터 나오는 제반 사회적 영향은 영국에 미쳐서는 탄광 국유운동이 일어나며, 이탈리아에 들어가서는 산업 공유의 폭동이 발발하며, 독일에 이르러서는 공산당의 대두를 재촉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싸움을 개시해 사회의 평온함을 깨뜨리며 질서를 문란하게 만들었지만 평화의 해결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으니 사회평화를 목적으로 하며 산업정의를 바라던 국제노동회의의 가치와 효과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해양의 자유, 경제적 교통의 자유, 군비 철폐, 인종차별 철폐, 민족자결, 대‧소국가 평등과 같은 이 모든 주장을 제창한 것은 오늘에 이르러서는 일장춘몽으로 소멸해 다시는 흔적도 없다. 각국은 군비확장의 필요를 고조시키며, 문호 폐쇄를 선언하며, 경제적 제국주의 유지에 몰두해 타국의 생존은 고려하지 않으니 세계 풍운의 저기압은 이로써 발생하는 것이니 국제재판소가 무슨 효용을 발휘하며, 어떤 세력을 지휘하겠는가.

특히 태평양의 파도가 평온하지 않다. 호주와 뉴질랜드 등 대양 남쪽에 세운 나라들, 혹은 북미 합중국과 캐나다 등 태평양 연안에 세운 나라들이 서로 단결하며 호응해 타국을 배척하고 행복을 독점하려 하되 장래의 폭풍우를 경계할 준비에도 힘써 게으르지 않으니 이 같은 형세가 격심해져 다른 날 어떤 풍운을 일으킬지 누가 능히 추측하겠는가.

또 천하의 시선이 중국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 나라는 오래된 국가라 인구가 아주 많다. 따라서 재화 공급의 막대한 이익을 여기서 가히 구할 수 있으며, 이 나라는 아시아대륙의 중심이라 부(富)의 근원이 막대하다. 따라서 자연히 개척의 절대적인 공을 여기서 가히 구할 수 있다. 특히 전후 피폐해진 이때를 맞아 부를 추구하는 것이 간절한 오늘날, 천하 만인의 시선이 이곳 중국에 집중되는 것이 어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익을 다투는 곳에는 살육이 따르며, 꾀를 써서 남을 해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 이익의 쟁탈장이 되는 중국은 곧 살해의 수라장이 될 것은 분명한 형세이다. 하물며 중국은 노쇠해져 사리에 어둡고 혼미해 완전한 국가의 형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혼란스러운 상태와 드러나지 않은 위기는 우리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요컨대 강국은 전과 다름없이 칼을 잡고 야욕에 찬 시선을 장래의 ‘기회’에 경주하며, 약소국은 강자의 억압 아래 신음하며 마음속에 답답한 불평을 품고 있으며, 빈국은 부국을 원망하고, 부국은 빈국을 모멸하니 이처럼 강약이 서로 다투고, 빈부가 서로 투쟁해 세계의 장래가 암담하고, 인류의 앞길이 참담하도다.

이제 조선의 상태는 어떠한가. 사이토 총독 문화정치 아래 지방자치제의 실험, 학교평의회 개설, 경찰 개선, 교육 확장, 산업 조사 등 각종 혁신과 시설 확충이 없지 않았으나 오랫동안 아무 근심 없이 평안함만 바란 결과 타국에 수십, 수백 걸음 시대에 뒤진 조선 사람들이 능히 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나아가 생존경쟁에서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차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보자.

경제계, 정치계, 학술, 예술에 바다의 큰 파도 같은 절대의 경쟁 세력은 조선인을 상류에서 하류로, 도회지에서 산간벽지로 쫓아내 쓸어버리는 경향이 날로 심하지 않은가. 이런 세계에, 이런 시대에, 이런 형편에 처한 조선 사람은 장차 어떻게 그 운명을 개척하며, 그 행복을 꾀할 것인가. 아! 슬프다. 우리 민족의 길이 험하고도 어렵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폭풍우이며, 그를 영접하는 것은 높은 산 험한 고개 아닌가.

우리는 스스로 알지는 못하지만, 다만 동아일보의 길 또한 험한 동시에 그 사명이 더욱 무겁고, 그 임무가 더더욱 큰 줄 깨닫는다. 주역에 이르되 ‘구름과 우레가 둔(屯)이니, 군자는 이로써 세상을 다스린다’고 했으니 우리는 이때가 마땅히 일할 때인 줄 알며, 포부를 널리 펼 때인 줄을 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폭풍우가 이는 것은 곧 만물을 성장하게 하고 생명을 통하게 하는 도리가 나타날 징조임을 잘 알고 있다.

바라건대 조선 형제들이여, 이에 대비해 정성스럽게, 또 의연하게 각종 문화를 수립하는 데 노력하여 일층의 삶을 실현하기를 뜻깊은 이날 다시 바라며,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