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3월 1일

“어머니, 이 추위에…” 3·1운동 6인의 애끊는 옥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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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3·1운동 48인 재판 불가” 일본인 소신 판사 보복 좌천’ 글에서 3·1운동 지도자들의 1심 재판이 중단된 사정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렇다고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풀어줄 일제가 아니었죠. 1심 없는 2심으로 직행했습니다. 경성복심재판부는 1920년 10월 30일 합계 60년의 징역형을 선고했죠. 48인은 상고를 포기해 형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48인은 감옥 담장에 가로막혀 부모 형제 자식과 생이별했습니다. 감옥생활은 갇힌 사람만 옥죄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친지들도 감옥 밖에서 옥살이를 합니다. 아들과 남편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면회를 신청하기도 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 돈을 들여보내 조금이라도 나은 감옥생활이 되도록 애를 씁니다. 이를 ‘옥바라지’라고 하지요.

제3자는 갇힌 사람과 그들을 옥바라지하는 가족의 마음을 쉽게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들이 감옥이라는 특수한 곳에서 만나고 헤어지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는 1921년 3월 1일자에 48인 중 6인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해 소개했습니다. 감옥 밖에서는 그저 아무 걱정 말고 제 한 몸 잘 건사하기만을 바라지요. 감옥 안에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편지를 쓰지만 가족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까지 숨길 수는 없는 법입니다.



천도교 도사인 오세창은 중국어 역관 출신이어서 그런지 한문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의 도움으로 뜻을 풀어보니 대범한 자세가 물씬 풍깁니다. ‘조금도 가슴이 막힌 것이 없고 세상과 더불어 다투고 싶지 않다’며 상고를 포기한 심정을 털어놓았죠. 염려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라고 하면서 ‘인생이 원래 이러하니 붓을 던지고 한번 웃는다’는 대목에서는 초탈한 경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부친 오경석은 역시 역관으로 개화사상의 시조였죠.

같은 천도교 도사인 권동진의 편지에서는 환자의 분위기가 묻어납니다. 경성감옥으로 온 뒤 ‘병이 다시 나서 크게 어려운데 추위 때문에 몸이 쇠약해졌다’고 상태를 알렸죠. 더 길게 쓰면 걱정할까봐 읽을 책을 넣어달라는 부탁만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글씨가 힘이 없고 사연이 분명하지 못한 것을 보더라도 아픈 상태인 것을 알겠다고 전했습니다.



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면회를 마치고 떠난 어머니에게 ‘입춘 추위의 찬바람에 잘 돌아가셨는지 돌아서시는 옷자락이 눈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라고 썼죠. 어머니는 낡은 죄수복 차림의 아들 모습에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셨을 겁니다. 섣달그믐에 부친 편지가 새해 아침에 제대로 들어갈지 모르겠다며 제때 새해 문안도 드리지 못하는 불효자식을 용서해 달라고도 했죠. 더구나 최남선은 어린 조카딸의 죽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지난밤 보채는 조카딸 아이를 달래는 꿈을 꾸었다며 슬픔을 누르지 못했죠.

보성고등보통학교 교장 최린은 부인에게 애틋한 정을 표현했습니다. ‘지난번 면회시간이 너무 짧았던 데다 슬픈 마음 때문에 안 보느니만 했다’고 한 것이죠. 고향의 늙은 부모께 아들은 잘 지낸다고 편지해달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그리움과 송구함이 함께 전해집니다.



기독교 장로 박희도의 편지는 동생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입니다. 3년 전 동생이 아플 때 3·1운동에 가세해 곁을 떠났고 부모 봉양까지 떠넘겼다며 ‘목석인들 유감이 없겠느냐’고 미안해했죠. 자신이 없는 사이에 동생이 결혼까지 했으니 미안함은 곱절이 되었을 법합니다.

기독교 목사 오화영은 딸에게 편지를 써 아내가 마음 편히 지내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런데 돈 1원을 더 보내달라고 하죠. 그때 1원이면 지금 5만 원입니다. 그것도 형편 닿는 대로 해달라는 거였죠. 형편이 어려운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은 마음이 그대로 다가옵니다.

이들의 편지에는 인간의 약한 모습이 드문드문 드러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일제가 이들을 감옥에 가두면서 노린 점이기도 하겠죠. 세상과 단절시켜 독립 의지를 꺾어놓겠다는 심산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출옥할 때까지 당당하게 스스로를 지켜나갔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獄中(옥중)에서 家族(가족)에게
션언서사건 복역쟈의 편지

판장 한 겹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굿게 막아 부모형뎨의 지정 간에 그리운 때에 서로 만나보지도 못하고 륙십일 동안에 간신히 한 번식 감옥으로부터 친족에게 나오는 재감인의 편지는 실로 그 가족에게 당하야는 안탁가운 보배이오 알뜰한 눈물의 재료이다. 이에 독립선언사건으로 경성감옥에서 복역 중인 몃々 사람이 최근에 그 가족의게 부친 편지를 어더본즉 모도 다 인생의 지정이 지면에 넘치여 유명한 문예작품을 보는 듯하다.

완연히 한 문장
오세창의 편지
오세창의 편지는 재판 판결을 밧고 복역할 때에 아들형뎨의게 부친 것인대 사연은 비록 간략하나 완연히 한 문장을 이루엇다.
今日(금일) 吾心(오심)。但(단) 將順逆來境(단장순역래경)。任之自然(임지자연)。視苦樂如平等(시고낙여평등)。少無礙胸不欲與世有諍故(소무애흉부욕여세유쟁고)。玆抛上告權服役爲定(자포상고권복역위정)。汝等(여등)。應須體此(응수체차)。勿用深慮(물용심려)。整理家務(정리가무)。以俟後日我歸(이사후일아귀)。亦婉諭家中諸人(역완유가중제인)。慰而無悲可也(위이무비가야)。人生(인생)。 原來如此(원래여차)。擲筆一笑(척필일소)
第六號(제6호) 父(부)

병인이 분명한
권동진의 편지
신병으로 신음한다는 권동진의 그 형 권용진 씨의게 부친 편지에는
사뎨는 이 감옥으로 온 뒤에는 병이 다시 발하야 크게 곤난한 중 치위로 인하야 신톄가 쇠약하얏다.
하는 사연이 잇다. 얼마나 그 가족으로 하야곰 가슴을 아프게 하얏는지 그의 의사는 서책 차입하라는 부탁뿐이오. 대개 간단한데 필텩이 미약하고 사연이 분명치 못한 것은 얼른 보기에도 병인의 필적인 줄 알겟다.

눈물을 자아내는
최남선의 편지
어머니의 면회하고 도라온 뒤에 부친 최남선의 편지에 그 어머니가 감옥에서 도라올 때의 감상으로
립츈 치위의 찬바람 머리에 안녕히 도라가섯는지 돌처서시는 옷자락이 눈에서 사라지々 안슴니다.
긔록한 그 근경에 이르러는 자못 보는 사람의 눈물을 자어내이며 떡국 아츱이 아즉도 세 밤을 격한 이 상서를 하감하옵실 때에는 도로혀 몃 날을 지낫사올지 묵은 세배로 올니는 상서가 새해 문안도 되지 못하는 것이 지금 소자의 세월이올시다.
하는 사연. 지척가튼 감옥이 얼마나 이 세상과 멀리 격하야 잇는지를 말함이 핍진하얏고 족하딸 한경의 죽음에 대 야는
한경의 일은 참혹하기 니를 길 업슴니다. 어제밤 꿈에 울고 보챼는 한경이를 제가 얼싸안고 달내셔 이런저런 리약이함을 꾸엇삽더니 뜻밧게 말슴을 듯사오니 애연하기지업삽내다.
하는 사연은 옥중에 잇는 사람이 가족의 흉보를 드름에 얼마나 가슴이 아품을 알겟고
놉흔 담 넘어로 떡치는 소리 들리는 음력 십이월 이십팔일 낫이라고 년 월 일을 긔록한 편지의 말미는 더욱 감상이 기푼 듯하다.

지정이 넘치는
최린의 편지
최린으로부터 그 부인 김우경에게 부친 편지에는
향자 면회 시에 시간이 하도 촉급하야 자세한 말 못 할뿐 아니라 창연한 생각 도로혀 안 보니만 못하얏고 또 작일 서대문감옥 압헤서 얼골은 자세 보앗소 하고 부々간 서로 생각하는 지정이 필묵에 넘치는 듯하며
시골 문안 자조 듯소
고향에 잇는 늙은 부모의 안부를 무른 후에 경셩감옥으로 옴겨왓스나 별로 변한 것은 업스니 고향에 편지를 하라고 부탁하야 부모의 일을 간절히 사모함은 공판뎡에서 자긔 아버지의게 대한 일을 말할 때에 가슴이 억색한 음성을 듯든 생각이 난다.

삼년 젼의 감회
박희도의 편지
너의 병상에 누어 잇는 것을 보고 아지 못하는 눈물로 작별한지 어언간 삼년이 되얏다.
하는 것은 박희도의 그 아오에게 부친 편지의 첫머리이다. 병든 아오의게 집안일을 맛기고 옥에 드러가던 당시의 감회가 아직도 새로온 모양이며
부모님 슬하를 떠나서 봉양치 못한지 삼년이 되얏스니 엇지 목석인늘 유감이 업스랴.
하야 부모의게 고통끼치운 일에 대하야 충심으로 미안함을 사례하고
금번 네 혼례에 참예치 못함은 심한 유감인 중 부모님끠서와 네가 여북 애를 쎳겟느냐.
하는 지정에는 빈한한 가뎡의 책임자로 인정에 그러할 것이려니와 형의 만긔일은 금년 십일월 사일이니 안심하고 그간 새벽마다 나도 긔도하니 너도 나를 위하야 긔도하여라.
하는 심정은 얼마나 세상에 나오고 시픈 마음이 간절함을 알겟다.

돈 일 원만 부치라
오화영의 편지
오화영의 그 딸 오응선에게 부친 편지에는
전일 락상한 발목은 아조 쾌히 나앗느냐.
하고 자상히 무른 후에 자세하게 친족과 기타의 안부를 뭇고
나의 츌옥하는 날까지 너의 모친온 고향이나 살든 곳이나 어느 곳을 물론하고 바람이나 쏘이고 구경이나 하기를 바란다고
고생하는 부인을 위로하는 마음이 간절하며
차々 할 수 잇는대로 돈 일 원만 더 차입하기를 바란다.
하는 구절에 이르러는 구차한 딸에게 일 원 금을 부탁하는 심회가 얼마나 안탁가왓슬는지 더욱이 돈 일 원에 대하야 『차々 할 수 잇는대로』리함이 그 가세를 웅변으로 말한다.

감옥에서 가족에게
선언서 사건 복역자의 편지

판장 한 겹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굳게 막아 부모형제의 깊은 정이 그리운 때에 서로 만나 보지도 못하고 60일 동안 간신히 한 번씩 감옥에서 친족에게 오는 수감자의 편지는 실로 그 가족에게는 안타까운 보물이고 알뜰한 눈물의 재료이다. 독립선언 사건으로 경성감옥에서 복역 중인 몇몇 사람이 최근 가족에게 부친 편지를 입수해 보니 모두 인생의 깊은 정이 지면에 넘쳐 유명한 문학작품을 보는 듯하다.

흠 없는 한 편의 문장
오세창의 편지
오세창의 편지는 재판 판결을 받고 복역할 때 아들 형제에게 부친 것으로 사연은 비록 간략하지만 완전하게 한 편의 문장을 이루었다.
오늘 내 마음은 그저 앞으로의 상황이 잘되든 못 되든 자연에 맡겨두고 고통과 즐거움을 평등하게 보고 있다. 조금도 가슴이 막힌 것이 없고 세상과 더불어 다투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이에 상고권을 포기하고 복역하는 것으로 정해졌으니 너희들은 응당 반드시 이것을 알고 깊이 염려하지 말고 집안일을 정리하여 뒷날 내가 돌아갈 날을 기다리라. 또한 집안의 여러 사람들에게 잘 타이르고 위로하여 슬퍼하지 말도록 하라. 인생이 원래 이러하니 붓을 던지고 한번 웃는다.
제6호 부친

환자가 분명한
권동진의 편지
몸의 병으로 신음한다는 권동진이 형 권용진 씨에게 보낸 편지에는
저는 이 감옥으로 온 뒤에는 병이 다시 나서 크게 어려운 가운데 추위 때문에 몸이 쇠약하였다
는 사연이 있다. 얼마나 가족으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하였는지 그의 소식은 책을 넣어달라는 부탁뿐이다. 대체로 간단하며 글씨가 힘이 없고 사연이 분명하지 못한 것은 얼른 보기에도 환자의 편지인 줄 알겠다.

눈물을 자아내는
최남선의 편지
어머니가 면회하고 돌아간 뒤에 보낸 최남선의 편지에 어머니가 감옥에서 돌아설 때의 감상으로
입춘 추위의 찬바람 탓에 안녕히 돌아가셨는지 돌아서시는 옷자락이 눈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록한 언저리에 이르러는 자못 보는 사람의 눈물을 자아내며
떡국 아침이 아직도 3일 밤 남은 이 편지를 읽으실 때는 도리어 며칠이 지났을지 묵은 세배로 올리는 이 편지가 새해 문안도 되지 못하는 것이 지금 소자의 세월입니다.
하는 사연, 코앞에 있는 듯한 감옥이 얼마나 이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주 생생하였고 조카딸 한경의 죽음을 두고는
한경의 일은 참혹하기 이를 길 없습니다. 어젯밤에 울고 보채는 한경이를 제가 얼싸안고 달래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꿈을 꾸었더니 뜻밖의 말씀을 들어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하는 사연은 옥중에 있는 사람이 가족의 흉보를 들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를 알겠고
높은 담 너머로 떡치는 소리 들리는 음력 12월 28일 낮이라고 연월일을 기록한 편지의 끝부분은 더욱 감상이 깊은 듯하다.

깊은 정이 넘치는
최린의 편지
최린으로부터 부인 김우경에게 부친 편지는
지난번 면회 때 시간이 하도 급하여 자세한 말을 못했을 뿐 아니라 아주 슬픈 생각에 도리어 안 보느니만 못하였고 또 어제 서대문감옥 앞에서 얼굴은 자세히 보았소.
하고 부부 간에 서로 생각하는 극진한 정이 문장에 넘치는 듯하며
시골 문안 자주 듣소?
고향에 있는 늙은 부모의 안부를 물은 후에 경성감옥으로 옮겨왔으나 별로 변한 것은 없으니 고향에 편지를 하라고 부탁해 부모의 일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것은 법정에서 자기 아버지에게 대한 일을 말할 때에 가슴 답답한 듯 말하던 목소리를 듣던 생각이 난다.

3년 전의 감회
박희도의 편지
네가 병상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알지 못하는 눈물로 작별한 지 어언간 3년이 되었다.
하는 것은 박희도가 동생에게 부친 편지의 첫머리이다. 병든 아우에게 집안일을 맡기고 감옥에 들어가던 당시의 감회가 아직도 새로운 모양이며
부모님 슬하를 떠나서 봉양하지 못한지 3년이 되었으니 어찌 목석인들 유감이 없겠느냐.
하여 부모에게 고통 끼치는 일에 대하여 충심으로 미안하다고 고마움을 나타내고
이번 네 혼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심한 유감인데 부모님께서 그리고 너는 얼마나 애를 썼겠느냐.
하는 깊은 정에는 가난한 가정의 책임자로 인정상 그러할 것이겠고
형의 만기일은 올해 11월 4일이니 안심하고 그간 새벽마다 나도 기도하니 너도 나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하는 심정은 얼마나 세상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지 알겠다.

돈 1원만 부쳐라
오화영의 편지
오화영이 딸 오응선에게 보낸 편지에는
전날 넘어져 다친 발목은 아주 다 나았느냐.
하고 자상하게 물은 뒤 자세하게 친족과 기타의 안부를 묻고
내가 출옥하는 날까지 너의 모친은 고향이나 살던 곳이나 어느 곳을 물론하고 바람이나 쏘이고 구경이나 하기를 바란다고
고생하는 부인을 위로하는 마음이 간절하며
차차 할 수 있는 대로 돈 1원만 더 보내주기를 바란다.
하는 구절에 이르러는 구차한 딸에게 1원 돈을 부탁하는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을는지 더욱 이 돈 1원에 대하여 “차차 할 수 있는 대로”라고 한 것이 집안 형편을 분명하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