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07월 19일

“사이토 총독은 뱀의 혀를 놀려 조선인 기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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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울분은 이국땅 유학생들도 매한가지였습니다. 특히 일본 유학생들은 1919년 2월 8일 도쿄에서 독립을 선언해 3·1독립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했고, 그로부터 1년 5개월 뒤인 1920년 7월, 여름방학을 이용해 고국 순회강연회를 엽니다. 참뜻은 ‘세계 개조(改造)의 기운’을 널리 알려 자유와 독립심을 심어주려는 것이었지만 허가를 받기 위해 ‘평소 배운 학술지식을 피력하겠다’는 걸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런데도 총독부는 바짝 긴장했습니다. 18명의 연사 가운데 김도연 윤창석 이종근 등 2·8독립선언의 주역들이 다수 포함돼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 강연이 아니라 문화행사다”, “법을 꼭 지키겠다”고 약속해 겨우 성사됐습니다.

강연회는 7월 9일 동래를 시작으로 부산, 김해, 밀양, 대구, 경주, 공주, 청주 등을 거쳐 18일에는 경성에서 개최됐습니다. 학우회의 충정에 깊이 공감해 순회강연회를 후원한 동아일보는 연일 이들의 동정과 강연 일정을 소개했습니다. 단성사에서 열린 경성 강연회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7월 19일자 기사 중에는 오후 1시에 시작된 행사에 오전부터 수천 명이 몰렸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흰 옷 입은 사람의 물결이 마치 어느 때, 무슨 광경을 연상할 만했다’고 표현했습니다. 행간(行間)에 3·1독립만세운동을 녹여낸 겁니다.

경성 강연회의 첫 테이프는 강연단장인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김준연이 끊었습니다. 훗날 동아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낸 그는 세계 개조의 흐름을 소개하며 러시아혁명과 독일·오스트리아 제국의 패퇴 등을 거론합니다. 비록 학술행사였지만 혁명이니, 제국주의의 패망이니 하는 얘기는 일제로서는 껄끄럽기 짝이 없었을 겁니다. 그는 이어 “현재 세계를 풍미하는 개조의 초점은 정신적·물질적·인격적 자유의 완전한 획득”이라며 조선 민중의 자유를 송두리째 앗아간 일제를 겨냥했습니다.


1920년 7월 18일 경성 단성사에서 열린 유학생 학우회의 순회강연을 듣기 위해 몰려든 청중들.



그 전 지방 강연회 때보다 한층 높아진 발언 수위에 어쩔 줄 모르던 일본 경찰은 2·8독립선언을 주도한 게이오대학 김도연이 두 번째로 연단에 오르자 이내 강연을 중단시키고 청중을 해산시킵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동아일보 주간 장덕수와 연사들이 이유를 캐묻자 종로경찰서장은 “나는 강연단에 경의를 표하지만, 상급관청의 명령에 따라 보안법 제2조에 따라 해산한다”고 간신히 내뱉습니다. 당시 조선민중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원천봉쇄한 보안법 2조는 ‘경찰관은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집회, 다중의 운동이나 군집의 제한·금지·해산을 명할 수 있다’고 돼있었죠.

총독부는 경성 강연회 외에도 줄줄이 계획돼있던 강연일정을 모두 취소시켰을 뿐 아니라 강연단 단원이 한 명이라도 참가하는 다른 강연 역시 금지했습니다. 경성부(府)의 상급 행정기관인 경기도가 발표한 이유를 보면 일제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납니다. 즉, 온건한 문화선전을 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반어(反語), 은어(隱語)와 풍자로 교묘하게 조선독립을 얘기하고 △타국의 예를 들어 불온사상을 선동했으며 △연사를 독립운동(2·8독립선언) 지사라고 소개하고 △창가(唱歌)를 연주해 군중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겁니다.

경성 강연회 도중 일경에 의해 강제 해산된 강연단 일행. 이 가운데 상당수는 1919년 2·8독립선언의 주역이었다.


동아일보는 종로경찰서장이 해산이유를 취재하는 기자에게 “특별히 어떻다는 건 아니고, 회장에 모인 청중의 공기가 불온하고···”라고 얼버무리자 이를 보도하면서 ‘공기를 단속하는 경관’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사흘 뒤인 7월 22일자 1면 사설 ‘학우회 순회강연단 해산명령과 언론압박’에서는 경기도가 든 해산 이유를 조목조목 반박한 뒤 사이토 총독을 향해 “가식과 허위로 무차별이니 일시동인(一視同仁·모두를 평등하게 대해 똑같이 사랑함)이니 선정(善政), 덕정(德政)이니 뱀의 혀를 놀려 조선인을 기만하지 말라”고 꾸짖어 총독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巡廻講演團(순회강연단) 永永(영영) 解散(해산)

십팔일 하오 두시 이십분 경성 단성사 강연 즁에

경긔도 뎨삼부에서 독립 션뎐의 혐의가 잇다고

돌연히 강연을 금지하고 또 단톄까지 해산 명령



『우리도 남과 가치 살겟다,』 이것이 우리의 새로히 부른 첫 소리니 사람이 세상에 난 이상에는 누구나 다 가치 사라갈 권리가 잇슨 즉 이 권리를 평등으로 밧겟다 하는 정당한 부르지짐이오. 『우리의 힘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새로히 부른 둘채 소리이니 남과 가치 살냐면 남의게 지지 아니함을 길너 한편으로는 내 생활을 풍부(豊富·풍부)히 하고 한편으로는 인류사회에 공헌(貢獻·공헌)을 부치랴 하는 정당한 부르지짐이라. 이는 사람이 사람가치 살냐함에 정당한 요구이며, 또 누구이든지 능히 막지 못할 일이요, 이때까지 사람가치 사라보지 못한 우리의게는 정히 무엇보다도 긴급한 일이로다.

이번 우리 동아일보가 동경에 류학하는 청년의 선각자를 후원하야 조선 내디의 각처에 순회강연회를 열게 되얏슴은 지금에 다시 말할 것도 업시 우리도 남과 가치 살기 위하야 우리의 힘을 길러야 한다』하는 부르지짐을 고국 동포의 귀에 사모치게 하고저 하는 바 순젼한 문화운동(文化運動·문화운동)이라. 그러나 이 의미 기푼 문화운동의 중앙무대(中央舞臺·중앙무대)이라 할 경성에서 이십만 동포의 눈물나는 동정, 피 끌는 환영 중에 이젼에 업시 굉장한 경황과 비유할 수 업시 큰 긔대 중에 단성사에 쳣날의 입을 여자마자 바야흐로 벌니든 입에 단단한 마개가 질니유고 비로소 내인 부르지짐의 쳣 소리는 눈물 속에 끄니지 아니치 못하게 되얏도다.

아- 무슨 리유인가. 경관은 이 강연회를 금지하고 소낙비 쏘다지는 중에 수쳔의 군중은 해산을 당하얏도다. 그뿐 아니라 경성은 무론이오 이후 조선에서 이 강연회를 열지 못하게 되얏도다. 아- 우리는 다시 무슨 말을 하리오. 다만 이러한 말을 독자 제군의게 보할 뿐이로다.



智識(지식)에 憧憬(동경)하야


殺到(쇄도)하는 數千(수천) 群衆(군중)

개회하기 젼 단셩사 압 광장을


살도하는 군즁이 무려 수천


십팔일 오후 한 시! 이날 이때는 우리 경성의 삼십만 시민이 손곱아 고대하든 우리 학우회 강연회를 서울에서 첫 막을 여는 날임으로 그다지 심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오젼 열시부터 흰 옷 입은 사람의 물결이 맛치 어느 때 무슨 광경을 련상할 만하얏다. 그리하야 오젼 열시가 되매 단성사의 압 골목으로 동관 네거리는 물론이어니와 장내 장외가 젼부 사람의 바다를 이루어 서로 부르짓고 대답하는 소래와 입장권을 달나고 살도하는 군중은 삼사천 명에 달하얏다.

다른 날보다 특히 엄중한 경계는 방금 무슨 일이나 나는 듯 하얏고 장내 장외에 느러선 불근 테 둘은 순사 나으리는 사오십 명에 달하야 강연이 시작하기 젼까지는 일대 수라장을 이루어 조선에서 집회가 잇슨 후 처음 되는 성황을 이루엇다. 오후 령시 삼십분 경에 자동차의 뿡! 뿡하는 소리가 들니며 강연단 일행의 그립은 자태는 단상에 낫타나게 되얏다.


前後(전후)의 世界(세계)는


自由平等(자유평등)의 戰場(전장)

우리는 정의와 인도로 살자고


金俊演(김준연) 君(군)의 大氣焰(대 기염)


뗑! 하고 오후 한시가 치매 본사 주간 장덕수(張德秀·장덕수) 씨의 사회 하에 강연의 막이 열니엇다. 슌서에 의하야 장 주간은 간단히 개회의 식사를 베풀고 바루 이어서 이번 강연단의 단장 되는 김준연(金俊淵·김준연) 군이 단에 오르매 만장의 박수는 단성사가 문허지는 듯하얏다. 군은 약간 간단하게 강연단의 취지와 본의를 말하야 인사를 대신한 후 『세계 개조와 오인의 각오』(世界 改造와 吾人의 覺悟·세계 개조와 오인의 각오)라는 문뎨로 말을 하기 시작하야 중약-세계 대젼쟁의 무거운 뚝겅은 색이유(塞耳維·새이유)의 청년 『후란시푸』의 손을 빌어서 막이 열니엇소. 일쳔구백십삼년 칠월 이십구일부터 일천구백십팔년 십일월 십일일까지 사년 삼개월 동안을 전 세계에는 뒤끌어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고 수억 원의 금젼을 허비하야 그 참혹한 모양은 누가 동정의 눈물을 흘니지 아니할가?

그리하야 세계 십륙억의 인류의 가슴으로부터 소사나오는 뜨거운 긔도는 불긔이자회로 합치되얏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악마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시옵소서. 우리는 결단코 다른 나라와 다른 사람을 그르다 생각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죄가 만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평화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옵소서. 우리는 승리 업는 평화를 원하옵니다. 이러한 긔도 소래가 젼 세계 십륙억만 창생의 의식뎍 또는 무의식뎍으로 부르지지는 한결같은 긔도이엇소.

그리하야 일쳔구백십칠년 삼월에 아라사의 혁명은 쳥텬에 벽력가치 폭발되매 그의 형세는 도도하게 독일을 침노하매 독일뎨국이 너머지고 오지리를 침노하매 오지리가 너머젓소. 하야 구주 렬국의 혁명 상태를 말하고 그러면 이 곤난한 젼쟁을 다시 하지 아니하고저, 살기 조흔 세상을 맨들고저 젼 세계 젼 인류에 개조의 부르지짐이 이러낫소. 그러면 이 살기 조흔 세상으로 개조함에는 먼저 완젼한 자유를 엇지 아니하면 아니되겟소. 그런대 자유에는 정신뎍 자유와 물질뎍 자유의 두 가지가 잇는대 이 두 가지의 자유가 완성하야 인격뎍 자유를 엇게 되옵니다. 이 세 가지 자유를 꼿에 비하면 물질뎍 자유는 꼿닙과 꼿술 갓고, 정신뎍 자유는 형상과 색채와 갓고, 인격뎍 주의는 향긔와 갓다 하야 자유의 의미를 밝힌 후

그러면 이 자유를 완젼히 엇고자 하는 것이 세계 개조의 초뎜이라 부르지진 후 이 자유를 엇기 위하야 사회주의 공산주의 기타 무슨 주의 무슨 주의 여러 가지 주의가 잇는 즁 일쳔구백십구년 륙월 이십팔일 『파리』 강화회의에 조인된 평화조약에 의지하야 생기는 것이 국제련맹(國際聯盟·국제연맹)과 국졔로동(國際勞働·국제노동)이라는 것이 생기엇소. 국제련맹을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 살기 조케 만들기 위하야 세계의 각국과 각 민족을 모와 그 우에 별로 통일뎍 국가를 맨들어 각 국가를 지배하는 긔관이라 할 수 잇다. 이 국제련맹이라는 것은 구주 사람의 머리 속 한편 구석에 잠기어 잇섯든 세계뎨국(世界帝國·세계제국)의 긔억이 다시 이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잇소. 이젼 구주에 라마뎨국 시대에는 물론 국제법이라 하는 것은 업섯고 각 적은 나라 사히에 분쟁이 잇스면 라마제국에서 재결하든 것이 잇섯소. 국제련맹이라는 것은 그 주의가 라마뎨국과 달느오. 라마뎨국은 계급뎍이지마는 국제련맹은 평등적이요.

국제 로동회의로 말하면 각국에서 정부 대표와 자본가 대표와 로동자 대표를 모와서 자본가와 로동자와의 관계를 연구하야 협뎡하야 세상을 평등하게 하자는 것이요. 그러면 우리는 이 세계 개조가 발흥하는 시긔에 대하야 엇더한 각오를 할 것인가? 우리는 수백 년 동안을 남과 담을 싸코 살엇소. 소위 동방군자국이라는 자만뎍 태도 아래에 원대한 리상이 업시 그날그날을 보내고 쓸 데 업는 사색편당으로 싸호고 잇슬 사히에 남들은 저와 가치 발달되엿다고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하다가 우리는 세계 인류와 함끠 콩 한 조각이라도 보수뎍(保守的·보수적)으로 말고 진취뎍(進取的·진취적)으로, 싀긔뎍(猜忌的·시기적)으로 말고 상애뎍(相愛的·상애적)으로, 리긔뎍(利己的·이기적)으로 말고 애타뎍(愛他的·애타적)으로 박구어야 하겟다고 도도한 열변을 발휘하다가 세계문화의 진보하는 형편을 말하야 내려가다가 불란서 학자 『산시몬』의 림종 시에 말한 위대한 사업을 성취할 사람은 항상 감격한 가운데 잇지 아니하면 아니되겟다』는 말을 인용하야 말을 맛쳣다.


午後(오후) 二時(이시) 二十分(이십분)


突然(돌연) 解散命令(해산명령)

김도연 군의 말하는 즁에


아모 리유도 말하지 안코


보안법 뎨이조에 의하야



그 다음으로 경응대학(慶應大學·경응대학) 재학생 김도연(金度演·김도연) 군이 검은 양복 씩씩한 눈동자를 굴니어 단에 올나 조선 산업의 장래에 대하야(朝鮮 産業의 將來에 對하야·조선 산업의 장래에 대하야)라는 문뎨로 구주 근대의 산업 상태를 몃 마듸 소개하자마자 오후 두시 이십분에 종로경찰서댱이 드러와 변사 김도연 군에게 대하야 변사의 강연을 중지식힌다 하매 변사는 의외에 말에 너무 긔가 막힌 듯이 『무엇이요』하고 무럿다. 서댱은 다시 『변사의 강연을 중지하오』하고 또 다시 말하얏다.

이에 변사는 할 수 업시 의자에 나가 안즈매 느러 안젓든 여러 명사와 변사는 일제히 입을 닷치고 잠잣코 안젓는대 경찰서댱은 다시 군중에게 대하야 할 말이 잇노라 하고 연단에 나섯다. 분개한 군중은 일시에 박수를 몹시 하야 단성사가 떠나가는 듯이 요란하야 서장의 말을 방해하얏다. 이때 사회자인 본사 주간 장덕수(張德秀·장덕수) 씨가 나서서 경관이 여러분에게 대하야 할 말이 잇스니 잠간 진정하야 달나는 말에 군중은 저윽이 진정이 되엿는대 이때 뒤문으로부터 붉은 테 두르고 칼 찬 순사 이십여 명이 몰녀드러와 변사의 섯든 연단은 수십 명 경관으로 가득 차서 의긔당당하게 텽중을 노려보는대 종로경찰서 서장은 『본 집회는 치안방해의 혐의가 잇슴으로 보안법(保安法·보안법) 제이조에 의지하야 해산을 명한다 선언하매 이때 변사나 군중의 얼골에는 일종 형용할 수 업는 처참한 긔운을 띄이고 우아래칭으로 드문드문 석겨잇든 학생은 일시에 더운 눈물을 쏫는 사람도 잇서서 살긔와 비애가 만장에 가득하얏는대 텽중는 용이히 나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머뭇거리는 사람이 만타.

이에 사회자와 강연단 중 몃 사은 경찰서장에 대하야, 무슨 리유로 해산을 명령하얏느냐 질문하매 서장은 다만 자긔도 이 강연단에 대하야는 비상히 경의를 표하는 바이나 상급 관청의 명령이 잇기 때문에 직무상으로 해산을 명함이라고 대답하는대 이 때에 뒤에서 맥고모자에 흰 양복을 입은 천압졔삼부장(千葉第三部長·천엽 제삼부장)이 나와서 『리유는 말할 것이 업다』고 졔지하얏스나 서장은 역시 잠간만 참아달나고 해산의 리유는 자긔가 말할 수 업심을 변명한 후 순사를 명하야 군중을 쫏차내라 하는대 이때 긋치엇든 비는 또 다시 쏘다지기를 마지 안는대 신경이 한껏 격동된 군중들은 순사에게 몰니어 나가 비를 마즈며 도라가는대 소소한 비발은 간단업시 내리어 어린 학생들의 눈물에 저즌 옷깃을 다시 비발로 적시는대 이때에 연단에 모혀 섯든 사람들도 일제히 경관이 모라내이며 엇더한 일본인 경부 한 명은 『나가지 안으면 내몰나고』 혀를 놀니는 중에 일동은 묵묵히 나오고 본사 주간이 여러 번 해산 리유를 무를 뿐이엇더라.



京畿道(경기도)의 理由書(이유서)



巡廻講演團(순회강연단) 禁止(금지)의 理由(이유)라고 京畿道(경기도) 第三部(제삼부)의 發表(발표)한 바가 左(좌)와 如(여)하더라.

朝鮮(조선)의 倂合(병합)은 東洋(동양)의 平和(평화)를 維持(유지)하고 朝鮮(조선)의 安寧(안녕)을 保障(보장)하기 爲(위)하야 行(행)한 바로 歷代(역대)의 總督(총독)이 皆(개) 此(차) 方針(방침) 下(하)에 日鮮人(일선인)의 融和(융화) 及(급) 朝鮮人(조선인)의 福利(복리)를 圖(도)하얏고 特(특)히 齋藤(재등) 總督(총독)은 優詔(우조)를 拜(배)하고 赴任(부임) 以來(이래) 日夜(일야) 內政(내정)의 改善(개선)에 努力(노력)하야 此(차) 大(대) 方針(방침)의 實現(실현)에 盡瘁(진췌)하얏도다.

今回(금회) 東京(동경)在留(재류)의 朝鮮人(조선인) 學生(학생)은 夏期(하기) 休暇(휴가)를 利用(이용)하야 朝鮮(조선)의 各地(각지)에서 講演會(강연회)를 開(개)하고 平素(평소) 修得(수득)한 學術上(학술상)의 智識(지식)을 披瀝(피력)할 事(사)를 申出(신출)하고 且(차) 반드시 國法(국법)을 守(수)하며 國憲(국헌)에 遵(준)하야 一意(일의)文化(문화)의 宣傳(선전)에 從事(종사)하되 決(결)코 政治(정치)를 論議(논의)하며 治安(치안)을 紊亂(문란)할 事(사)가 無(무)하기를 誓(서)하얏슴으로써 總督府(총독부)는 喜悅(희열)하야 其(기) 計劃(계획)을 認容(인용)하얏도다.

然而(연이) 本月(본월) 十日(십일) 以來(이래) 釜山(부산)을 始(시)하야 金海(김해), 密陽(밀양), 大邱(대구), 慶州(경주), 公州(공주), 鳥致院(조치원), 淸州(청주) 等(등)에 在(재)한 講演(강연)의 實際(실제)를 見(견)하면 事實(사실)이 全(전)혀 當初(당초)의 宣誓(선서)에 反(반)함이 有(유)하얏스나 更(경)히 警告(경고)를 與(여)하야 京城(경성)에서는 勉勵(면려)하야 穩健(온건)한 精神(정신) 下(하)에 文化(문화)의 宣傳(선전)을 爲(위)케 하얏스나 秋毫(추호)도 所改(소개)가 無(무)하고 一層(일층) 不穩(불온)의 言辭(언사)를 用(용)하야 治安(치안)을 紊亂(문란)함이 頗大(파대)함으로 不得已(부득이) 遂(수)히 此(차)를 禁止(금지)치 아니치 못하기에 至(지)하얏도다.

卽(즉) 各(각) 辯士(변사)의 演說(연설)은 悉皆(실개) 朝鮮(조선)의 獨立(독립)을 內容(내용)으로 사마 反語(반어) 又(우)는 隱語(은어)를 用(용)하며 或(혹)은 諷刺(풍자)하고 或(혹)은 例(예)를 他邦(타방)에 取(취)하야 不穩思想(불온사상)을 煽動(선동)함이 實(실)로 甚(심)함이 有(유)하며, 特(특)히 辯士(변사)를 紹介(소개)하는 際(제)에 大槪(대개) 獨立運動(독립운동)의 關係者(관계자)로 處刑(처형)된 志士(지사)임을 表示(표시)하며 又(우)는 有意的(유의적)으로 唱歌(창가)를 奏(주)하야 會衆(회중)의 心(심)을 激動(격동)하얏슴을 恒例(항례)로 하야 各地(각지)에서 警察官(경찰관)이 屢屢(누누)히 此(차)에 注意(주의)를 促(촉)하나 敢(감)히 所改(소개)가 無(무)하니 如斯(여사)함은 實(실)로 倂合(병합)의 大精神(대 정신)을 無視(무시)하고 統治(통치)의 大方針(대 방침)에 背反(배반)하는 行事(행사)로 且(차) 單純(단순)한 學術(학술)講演(강연)의 範圍(범위)를 脫(탈)하야 治安(치안)을 紊亂(문란)함이 實(실)로 大(대)하다 云(운)치 아니치 못할지라. 此(차)는 斷然(단연)한 處置(처치)를 執(집)하기에 至(지)한 所以(소이)이라.

吾等(오등)은 學生(학생)의 妄擧(망거)를 悲(비)하는 同時(동시)에 速(속)히 其(기) 本分(본분)에 反(반)할 事(사)를 希望(희망) 不己(불기)하노라.



地方(지방)까지


全部(전부) 禁止(금지)

독립선뎐 혐의로


뿌리채 해산명령



또 동 뎨삼부에서는 강연단 단장 김준연(金俊演·김준연) 군을 불너서 아래와 갓튼 명령을 하얏다더라.

一(일), 본 단톄에 대하야는 경긔도 기타 조선 젼반(朝鮮 全般·조선 전반) 디방에서 강연을 금지함.

二(이), 본 단원이 한 사람이라도 참가한 강연은 본 단톄의 연장(延長·연장)한 것으로 간주함으로 강연을 금지함.




解散(해산) 後(후)의 大警誡(대 경계)

거리거리의 긔마 순사는


무슨 즁대사건이나 날 듯



작 십팔일은 학우회 강연이 단성사에서 열닌다 하야 신경과민이 된 경관은 비상선을 느리고 매우 엄중한 경게를 하더니 마츰내 오후 두시 이십분 김도연 군 강연 중에 종로경찰서댱은 돌연히 보안법 뎨이조에 의하야 강연회의 해산을 명령함은 명보와 갓거니와 해산 후에 경관들의 활동은 참으로 굉장하얏다.

회장 안에만 들어선 경관이 오십여 명이오, 밧그로 말하면 긔마순사를 합하야 백여 명의 순사가 늘어서서 닥 좃던 개 울 넘어보는 격으로 의외에 해산을 당하야 모다 좃겨낫스나 비조차 악수로 퍼부음으로 엇지할 수 업시 주저~하고 섯는대 두 사람만 모히어도 가라고 소래를 지르며 장래에서는 아니 나아가는 자를 묵그라고 부르짓는 목소래까지 들니엇다. 심지어 단성사 압해 잇는 동양루라 하는 냉면집까지 들어와서 사람을 쫏차 내이엇다.

그러나 군중은 용이히 헛치어가지 아니하고 머물~함으로 순사는 젓먹든 힘을 다하야 해산을 식히기에 매우 땀을 흘니엇스나 오후 네시까지 오히려 군중은 거리~에 늘어서고 긔마순사와 말 타지 아니한 순사가 동관으로부터 종로-종로에서 안국동까지 거리에 늘어서서 참으로 무시무시한 광경이엇섯다.



空氣(공기)를 團束(단속)하는 警官(경관)

종로경찰서댱의 소위 리유



십팔일 오후 두시 십오분 단성사에서 순회강연단의 해산을 명령한 종로경찰서댱은 무슨 리유로 해산을 식혓는가 하는 본샤 긔쟈의 질문에 대답하되 『어느 뎜이 특별히 엇더타 함은 아니오 회댱에 모힌 텽중의 공긔가 불온하고 변사의 강연도 젼톄를 노코 보면 그 구문(口吻·구문)이 치안을 방해하는 것인 줄로 인뎡하야 자긔의 직권으로 해산을 명령함이오. 자긔의 인뎡한 것이 오른지 그른지 그 시비에 대하야는 해석하는 일은 각 사람의 자유이라 하더라.
순회강연단 영영 해산

18일 오후 2시 20분 경성 단성사 강연 중에

경기도 제3부에서 독립 선전의 혐의가 있다고

돌연 강연을 금지하고 단체까지 해산 명령



‘우리도 남과 같이 살겠다.’ 이것이 우리가 새로이 외친 첫 소리이니, 이는 사람이 세상에 난 이상 누구나 다 같이 살아갈 권리가 있으므로 이 권리를 평등하게 받겠다하는 정당한 부르짖음이다. ‘우리의 힘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새로이 외친 두 번째 소리이니, 남과 같이 살려면 남에게 지지 않을 힘을 길러 한편으로는 내 생활을 풍부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사회에 공헌하려 하는 정당한 부르짖음이다. 이는 사람이 사람 같이 살려는 정당한 요구이며, 누구든지 능히 막지 못할 일이요, 이때까지 사람 같이 살아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진정 무엇보다도 긴급한 일이다.

이번 우리 동아일보가 동경 유학 청년 선각자들을 후원해 조선 본토 곳곳에서 순회강연회를 열게 된 것은 지금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우리도 남과 같이 살기 위해 우리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부르짖음을 고국 동포의 귀에 사무치게 하고자 하는 바, 순수한 문화운동이다. 그러나 이 뜻 깊은 문화운동의 중심무대라 할 경성에서 20만 동포의 눈물나는 동정, 피 끓는 환영 속에, 전에 없는 분주함과 비할 데 없이 큰 기대 속에 단성사에서 첫날의 입을 열자마자 바야흐로 벌리던 입에 단단한 마개를 지르고, 비로소 낸 부르짖음의 첫 소리는 눈물 속에 끊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 무슨 이유인가. 경관은 이 강연회를 금지하고 소낙비 쏟아지는 중에 수천 군중은 해산을 당했다. 그뿐 아니라 경성은 물론, 이후 조선 어디에서든 이 강연회를 열지 못하게 됐다. 아! 우리는 다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러한 말을 독자 제군에게 알릴뿐이다.


지식을 동경해
쇄도하는 수천 군중

개회하기 전 단성사 앞 광장을
쇄도하는 군중이 무려 수천



18일 오후 1시! 이날 이때는 우리 경성 30만 시민이 손꼽아 고대하던 우리 학우회 강연회가 경성에서 첫 막을 여는 날이어서 심한 더위에도 불구하고 오전 10시부터 흰 옷 입은 사람들의 물결이 마치 어느 때, 무슨 광경을 연상할 만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단성사 앞 골목으로 동관 네거리는 물론, 장내외가 전부 사람의 바다를 이뤄 서로 부르고 대답하는 소리, 입장권을 달라고 쇄도하는 군중은 3000, 4000명에 이르렀다.

다른 날보다 특히 엄중한 경계는 곧 무슨 일이라도 날 듯했고, 장내 외에 늘어선 붉은 테 두른 일본 순사는 40, 50명에 달해 강연이 시작하기 전까지 일대 수라장을 이뤄 조선 땅에서 집회가 시작된 후 첫 손가락 꼽을 만한 성황을 이뤘다. 낮 12시 30분경 자동차의 뿡뿡 하는 소리가 들리며 강연단 일행의 그리운 모습이 단상에 나타났다.


전후의 세계는
자유평등의 전장

우리는 정의와 인도로 살자고
김준연 군, 대 기염



땡! 하고 시계가 오후 1시를 알리자 본사 주간 장덕수 씨의 사회로 강연의 막이 열렸다. 순서에 따라 장 주간은 간단히 개회사를 하고 바로 이어 이번 강연단 단장인 김준연 군이 단에 오르자 만장의 박수로 단성사가 무너지는 듯했다. 김 군은 간단히 강연단의 취지와 의도를 말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뒤 ‘세계 개조와 우리의 각오’라는 주제로 말하기 시작했다. 중략.

“세계 대 전쟁의 무거운 뚜껑은 세르비아 청년 ‘프린치프’의 손에 의해 막이 열렸습니다. 1913년 7월 29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4년 3개월 동안 전 세계가 들끓어 수십만 명이 죽고 수억 원을 허비하니 그 참혹한 상황에 누가 동정의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세계 16억 인류의 가슴에서 솟아나오는 뜨거운 기도는 정성을 다해 하나로 합치됐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우리에게서 악마를 떠나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결단코 다른 나라와 다른 사람을 그르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가 많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시오. 우리를 영원한 평화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주십시오. 우리는 승리가 아니라 평화를 원합니다. 이러한 기도 소리는 전 세계 16억 창생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부르짖는 한결같은 기도였습니다.”

김 군은 이어 “1917년 3월 러시아 혁명이 청천벽력 같이 폭발해 그 형세가 도도하게 독일로 쳐들어가니 독일제국이 넘어지고, 오스트리아로 가니 오스트리아가 넘어졌습니다”라며 유럽 열국의 혁명 상황을 전한 뒤 “이 딱한 전쟁을 다시는 하지 않기 위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 세계, 전 인류에 개조의 부르짖음이 일어났습니다. 이 살기 좋은 세상으로 개조하는 데에는 먼저 완전한 자유를 얻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자유에는 정신적 자유와 물질적 자유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자유가 완성되면 인격적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자유를 꽃에 비유하면 물질적 자유는 꽃잎, 꽃술과 같고, 정신적 자유는 형상, 색채와 같고, 인격적 자유는 향기와 같습니다”라고 말해 자유의 의미를 밝혔다.

그는 “이 자유를 완전히 얻고자 하는 것이 세계 개조의 초점”이라고 부르짖은 뒤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이 자유를 얻기 위해 사회주의, 공산주의 기타 여러 가지 주의가 있는데 1919년 6월 28일 ‘파리 강화회의’에서 조인된 평화조약에 의해 국제연맹과 국제노동이 생겨났습니다. 국제연맹을 간단히 말하자면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 세계 각국과 각 민족을 모아 그 위에 별도로 통일적 국가를 만들어 각 국가를 지배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국제연맹이란 것은 유럽 사람들의 머리 속 한편 구석에 잠겨 있던 세계제국의 기억이 다시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유럽 로마제국 시대에는 물론 국제법이라는 것은 없었고, 각 작은 나라들 사이에 분쟁이 있으면 로마제국에서 옮고 그름을 가렸지요. 하지만 국제연맹이라는 것은 그 주의가 로마제국과는 다릅니다. 로마제국은 계급적이지만, 국제연맹은 평등합니다. 또 국제 노동회의로 말하자면 각국에서 정부, 자본가, 노동자 대표를 모아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연구하고 협동해 세상을 평등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김 군은 이어 “그러면 우리는 바야흐로 이 세계 개조가 일어나는 시기를 맞아 어떤 각오를 해야 할까요. 우리는 수백 년 동안 남과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소위 동방군자국이라는 자만적인 태도 아래 원대한 이상도 없이 그날그날을 보내고 쓸 데 없는 사색당파로 싸울 동안 남들은 저 같이 발달한 것입니다”라고 감개무량한 어조로 말하다 “우리는 세계 인류와 함께 콩 한 조각이라도 보수적으로 말고 진취적으로, 시기적으로 말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기적으로 말고 애타적으로 바꿔야 하겠습니다”라고 도도한 열변을 토했다. 그는 계속해서 세계문화의 진보를 설명해 내려가다 프랑스 학자 ‘생시몽’이 임종 때 말한 “위대한 사업을 성취할 사람은 항상 마음 속 깊이 감동과 고마움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인용하며 강연을 마쳤다.


오후 2시 20분
돌연 해산 명령

김도연 군이 말하는 중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고
보안법 제2조에 의해



그 다음으로 게이오 대학 재학생 김도연 군이 검은 양복을 입고 눈동자를 씩씩하게 굴리며 연단에 올라 ‘조선 산업의 장래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근대 유럽의 산업에 대해 몇 마디 소개하자마자 오후 2시 20분에 종로경찰서장이 들어와 김 군에게 “변사의 강연을 중지시킨다”고 하자 그는 의외의 말에 너무나 기가 막힌 듯 “뭐요?”라고 물었다. 서장은 다시 “변사의 강연을 중지하오”라고 다시 말했다.

이에 변사는 할 수 없이 의자에 앉고, 늘어 앉아있던 여러 명사와 변사도 모두 입을 닫고 잠자코 앉아 있는데 경찰서장은 다시 군중에게 할 말이 있다며 연단에 나섰다. 분개한 군중은 일시에 단성사가 떠나갈 듯 요란하게 박수를 쳐 서장의 말을 방해했다. 이때 사회자인 본사 주간 장덕수 씨가 나서 “경관이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다 하니 잠깐 진정해달라”고 요청하자 군중은 다소 진정됐다. 이때 뒷문에서 붉은 테 두르고 칼을 찬 순사 20여 명이 몰려들어와 변사가 서있던 연단을 가득 메운 채 기세등등하게 청중을 노려보는 가운데 종로경찰서장은 “이 집회는 치안방해 혐의가 있어 보안법 제2조에 따라 해산을 명한다”고 선언했다. 변사나 군중의 얼굴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처참한 기운을 띠고, 위아래 층으로 드문드문 섞여있던 학생 중에는 갑자기 뜨거운 눈물을 쏟는 사람도 있어서 살기와 비애가 만장에 가득했는데 청중은 쉽게 해산하지 않고 오히려 머뭇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에 사회자와 강연단 중 몇 사람이 경찰서장에게 “무슨 이유로 해산을 명령했느냐”고 따지자 서장은 다만 “나도 이 강연단에 비상한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 상급 관청의 명령이 있어 직무상 해산을 명한다”고 답했다. 이때 뒤에서 밀짚모자에 흰 양복을 입은 치바(千葉) 제3부장이 나와 “이유는 말할 것 없다”고 했으나, 서장은 잠깐만 참아달라면서 해산 이유는 자기가 말할 수 없다고 변명한 뒤 순사들에게 군중을 쫓아내라고 했다. 이때 그쳤던 또 다시 쏟아지는데 한껏 신경이 곤두선 군중은 순사에게 몰려 비를 맞으며 돌아가는데 가는 빗줄기는 끊임없이 내려 어린 학생들의 눈물에 젖은 옷깃을 다시 빗발로 적셨다. 연단에 모여 섰던 사람들도 경관이 일제히 몰아냈는데, 어떤 한 일본인 경부는 “나가지 않으면 내몰라고!”라고 혀를 놀리기도 했다. 그 바람에 일동은 묵묵히 나올 수밖에 없었고, 본사 주간 장덕수 씨만 여러 번 해산 이유를 물을 뿐이었다.


경기도의 이유서


순회강연단 금지의 이유라고 경기도 제3부가 발표한 바는 다음과 같다.

조선의 병합은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고 조선의 안녕을 보장하기 위해 단행한 것으로, 역대 총독이 모두 이 방침 아래 일본인과 조선인의 융화 및 조선인의 복리를 꾀했고, 특히 사이토 현 총독은 임금의 말씀에 절하고 부임한 이래 밤낮으로 내정의 개선에 노력해 이 대 방침의 실현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이번 도쿄에 유학하는 조선인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조선 각지에서 강연회를 열고 평소 배운 학술지식을 피력하겠다고 신청하면서 반드시 국법을 지키며 국헌을 준수해 한 뜻으로 문화의 선전에 힘을 다하되 결코 정치를 논하거나 치안을 문란케 할 일이 없음을 서약했기에 총독부는 기쁘게 그 계획을 인용했다.

그러나 이달 10일 이래 부산을 시작으로 김해, 밀양, 대구, 경주, 공주, 조치원, 청주 등에서 했던 강연의 실상을 보면 당초 선서에 위반한 사실이 있었지만 재차 경고해 경성에서는 다시 노력해 온건한 정신 아래 문화 선전을 하도록 했다. 하지만 조금도 개선됨이 없고 한층 불온한 언사를 사용해 치안을 어지럽힘이 자못 심대하니 이에 따라 부득이 이 강연회를 금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

즉 각 변사의 연설은 모두 다 조선의 독립을 내용으로 삼아 반대말이나 은어를 사용하며, 또는 풍자하고, 또는 다른 국가의 예를 들어 불온사상을 선동함이 실로 심하며, 특히 변사를 소개할 때 대개 독립운동 관계자로 처형된 지사임을 나타내며, 또 일부러 창가를 연주해 군중의 마음을 흔드는 것도 보통이어서 각지에서 경찰관이 누누이 주의를 줬지만 감히 개선되는 바가 없다. 이 같은 행위는 실로 병합의 대 정신을 무시하고 통치의 대 방침을 배반하는 일로, 또 단순한 학술강연의 범위를 벗어나 치안을 어지럽힘이 실로 크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당국의 확고한 조치가 필요하기에 이른 까닭이다.

우리는 학생들의 망령된 짓을 슬퍼하는 동시에 속히 그 본분에 반하는 일을 벌이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지방까지
전부 금지

독립 선전 혐의로
뿌리째 해산 명령



제3부는 또 강연단 단장 김준연 군을 불러 아래와 같이 명령했다.

1. 이 단체에 대해 경기도 기타 조선 전반 지방에서의 강연을 금지함.

2. 강연단 단원이 한 사람이라도 참가한 다른 강연은 이 단체의 연장으로 간주해 강연을 금지함.


해산 후 대 경계

거리거리의 기마 순사는
무슨 중대 사건이나 날 듯



어제 18일 학우회 강연이 단성사에서 열린다고 해 신경과민이 된 경찰은 비상경계구역을 늘리고 매우 엄중한 경계를 하더니 마침내 오후 2시 20분 김도연 군의 강연 중 종로경찰서장이 돌연 보안법 제2조에 따라 강연회 해산을 명령한 것은 보도와 같지만, 해산 후 경관들의 활동 역시 참으로 굉장했다.

회장 안에 들어선 경관만 50명이요, 밖으로 말하자면 기마 순사를 합쳐 100여 명의 순사가 늘어서 닭 쫓던 개 울타리 넘어보는 격으로 의외의 해산을 당해 모두 쫓겨났지만 비조차 억수로 퍼부어 어찌할 수 없이 주저하며 서있는데 두 사람만 모여도 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장내에선 나가지 않는 사람을 묶으라고 부르짖는 목소리까지 들렸다. 심지어 단성사 앞 동양루라는 냉면집까지 들어와 사람을 쫓아냈다.

그러나 군중이 쉽사리 흩어지지 않고 머무르자 순사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해 해산을 시키느라 매우 땀을 흘렸으나 오후 4시까지 군중은 오히려 거리에 늘어서고 기마 순사와 말을 타지 않은 순사들이 동관에서 종로, 종로에서 안국동까지 거리에 늘어서서 참으로 무시무시한 광경을 연출했다.


공기를 단속하는 경관


종로경찰서장의 소위 ‘이유’


18일 오후 2시 15분 단성사에서 순회강연단의 해산을 명령한 종로경찰서장은 무슨 이유로 해산을 시켰는가 하는 본사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어느 점이 특별히 어떻다 하는 건 아니고, 회장에 모인 청중의 공기가 불온하고 변사의 강연도 전체를 놓고 보면 그 말이 치안을 방해하는 것인 줄로 인정해 내 직권으로 해산을 명령했다. 내가 그렇게 인정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 그 시비에 대해 해석하는 것은 각 사람의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