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05월 26일

로마에서 왔다고? 10만 군중 여의도로 몰려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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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온다!”, “만세! 만세!”


음력으로 부처님오신날인 1920년 5월 25일 오후 경성 여의도 일대는 수만 군중이 일제히 내지르는 “만세” 소리로 뒤덮였습니다.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 만세를 부른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비록 태극기를 들진 않았지만, 또 독립만세도 아니었지만 기 한번 못 펴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조선 민중의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요?


1920년 이탈리아 조종사들이 타고 온 ‘스파’식 복엽 비행기. 최대 출력 230마력에 시속 250㎞에 이르는 당시 최신식 기종이었다.


이로부터 100여 일 전인 2월 14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13명의 조종사가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일본 도쿄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기나긴 모험을 시작합니다. 1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와 일본 두 나라가 우호를 다진다는 명분으로 기획한 이벤트였죠. 하지만 악천후와 기체 고장은 다반사였고, 조종사가 병에 걸리거나 심지어 추락해 죽는 등 비행은 악전고투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페라린과 마시에로 두 중위는 최신식 ‘스파(SVA)’ 기종을 몰고 그리스 테살로니키, 이라크 바스라, 인도 콜카타, 태국 방콕,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해 중국의 광둥, 푸저우, 상하이, 칭다오를 거쳐 5월 17일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의 여정을 ‘라마동경간대비행(羅馬東京間大飛行)’이란 제목으로 추적 보도한 동아일보는 페라린 중위가 신의주에 도착한 5월 23일 호외를 발행했고, 두 중위가 25일 경성에 안착하자 다음날 제3면의 대부분을 할애해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이 가운데 ‘10여 만의 군중이 하늘을 쳐다보며 공중의 용사를 기다렸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1919년 말 경성 인구가 24만8644명이었으니 기사대로라면 10명 중 4명꼴로 여의도로 몰려든 셈입니다. 그만큼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1920년 5월 13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페라린 중위와 ‘스파’식 비행기. 사진을 쓰지 않고 인물과 사물의 특징을 살린 캐리커쳐로 표현해 이채롭다.


이탈리아 조종사들의 모험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대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일제의 압박에 억눌려 신음하던 조선인에게 용기와 도전정신을 북돋울 수 있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동아일보는 두 중위가 비행 중에 아라비아인들의 기관총 사격을 받은 일, 토인에게 붙잡혔지만 기지를 발휘해 탈출한 일 등 숱한 역경을 극복한 모험담을 5월 12일자에 소개했습니다. 26일자 보도에서는 이들을 ‘용맹하고 장쾌한 하늘의 정복자’, ‘기골도 당당한 장부’, ‘피와 생명으로 조국을 회복했고,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인’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당시 비행기 조종사는 대부분 군인이었습니다. 페라린도 시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와 함께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격에 나서 화려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죠. 그러니 비행기는 곧 공군을 상징했고, 일제 치하의 조선에선 비행기를 갖고 조종사를 양성해 무력 독립운동을 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겁니다. 1920년대 노백린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 등이 캘리포니아에 한인 비행학교를 설립한 것이나 서왈보, 안창남, 권기옥 등 비행사들이 독립운동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이탈리아 조종사의 모험을 집중 보도해 ‘비행기로 민심을 격발’한 동아일보는 1922년 12월 안창남의 고국방문 비행을 주최하기에 이릅니다.


1920년 5월 30일 조선에서의 마지막 기착지인 대구를 떠나 일본으로 향하는 마시에로 중위.



경성의 유지들은 5월 27일 오후 7시 조선호텔에서 페라린과 마시에로를 환영하는 연회를 베풀기로 했는데 이때 작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됐는데도 주인공들이 나타나지 않은 겁니다. 이유인 즉 이날 오후 5시 반경부터 경성 일대에 직경 2㎝가 넘는 우박이 반시간 동안이나 쏟아지는 기상이변이 일어나자 두 중위는 부랴부랴 애기(愛機)를 살피러 여의도로 달려갔던 것이었죠. 다행히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두 이탈리아 비행사는 서둘러 연회에 참석했고, 다음날 경성을 출발해 대구, 오사카를 거쳐 31일 최종 목적지인 도쿄에 내려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雄飛(웅비)한 天空(천공) 三萬三千里(삼만삼천리)
釋誕(석탄)의 漢陽(한양)에 伊機(이기) 到着(도착)
두 채의 이태리 비행긔는 날개를 련하야
이십오일 오후 만세 성즁에 경성에 도착


날수로 일백네 날을 허비하고 직접비용으로 일백오십만 원을 드려서 구라파의 남편 끝흐로부터 아세아의 동편 끝까지 허다한 장해와 고란과 분투하면서 공중 삼만삼쳔리를 정북하고 라마 동경 간 대 비행의 이태리 비행긔는 두 채가 나래를 련하야 이십오일 오후 경성을 멀리 차젓도다.

개벽 이래에 처음으로 공중의 원객이 방문하는 경성의 시민은 거륵한 동정과 깁흔 늣김으로써 『후에라린』과 『마세로』의 두 용사를 환영하얏고 우리 동아일보는 용맹하고 장쾌한 공계의 정복자에게 이쳔만 우리 동포의 환영하는 마음을 전하는 뜻으로 그에게 화환을 보내여써 성공을 축하하얏도다.


來(래)! 來(래)! 萬世(만세)!
의주 경성 사이에 두시 십오분
만세 성즁에 장쾌한 그의 착륙

녀의도(汝矣島·여의도) 착륙장을 중심으로 로량진 구룡산 마포를 주위로 모혀든 십여 만의 군중이 하늘을 처다보며 멀니 오는 공중의 용사를 기다렷다. 아츰의 흐렷든 텬후는 저윽이 쳥랑하얏스나 바람은 자못 맹렬하야 진긔한 손의 공중 려행에 곤난이 가업슬가 하는 마음이 관중의 가삼에 왕래하는 중

오후 하시쯤 되야 착륙장에서 서북편의 하늘을 살피던 하명의 접대위원이 『왓다』하는 소래를 지르매 수만의 관중은 이 소래에 응하야 제일히 만세를 불럿다. 이 때에 멀리 일산 방면으로부터 새만한 비행긔의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차차 거리가 갓가와지며 푸례폐라의 바람을 깨치며 진동하는 소래가 웅장하고 상쾌히 관중의 가슴을 울리운다.

등황색의 스파식 복엽 비행긔는 왼편에 가득히 태양빗을 밧고 녀의도의 착륙장을 지나 방향을 돌여 남산의 왼편을 너머 경성 시중을 한번 도라 시민의게 경의를 표하고 녀의도 착륙장에 서서히 하륙하야 한강 물결을 울리는 만세 성즁에서 나릴 때는 한시 사십분이라. 신의주에서 출발한 지 겨우 두시 십오분에 일쳔이백리를 돌파하얏더라. 이와 가치 뎨일착으로 득달한 장교는 금일 아츰에 신의주에 도착하야 휴식할 겨를도 업시 다시 비행긔에 오른 『마세로』 중위라는 말이 만장에 전파되매 감탄하는 소래가 한층 놉더라.


又(우) 一機(일기)!
『후에라린』 도착
신긔한 뎌공 비행

『마세로』 중위의 하륙을 마저 환호하는 소래가 아직도 끈치지 아니한 오후 한시 오십륙분에 또 한 채의 비행긔가 서녁 하늘에 멀리 낫하난다. 『저것이 『후에라린』이다』하는 소래가 진뎡하랴는 착륙장을 다시 움즉인다. 비행긔도 녀의도의 착륙장을 한번 도라 경성을 방문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뎌공 비행을 시작하야 남산보다 활삭 얏게 디상에서 간신히 삼백척의 고도를 보전하야 가지고 보는 사람으로 하야금 아슬아슬하게 경성 시중을 서서히 도라서 한시 오십칠분에 착륙장에 나려서 환호갈채 중에 디상의 사람이 되니 긔글도 현현한 장부이오 가슴에 즁국 훈장의 광채가 황황하더라.

등황색 비행긔의 후부에 그린 삼색의 이태리 국긔는 만리풍상에 오히려 색채가 선명하고 백일 원정에 피곤한 긔색이 조금도 업시 유쾌한 우슴이 얼골에 가득한 장사의 태도는 과연 피와 생명으로써 조국을 회복한 이태리국 사람이오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태리국 사람인가 십더라.


歡呼聲(환호성) 中(중)에 祝杯(축배)
우슴의 얼골에 마시난 삼펜배


『푸』『마』 두 중위는 임의 설비하야 잇는 휴식소로 드러가 잠간 수인 후에 하오 두시 십분에 별로히 설비하야 노흔 식장으로 『푸』『마』 두 중위와 『이태리』 장교들을 인도하야 몬저 우도 군사령관(宇都軍司令官·우도 군사령관)이 악수를 한 후에 차례로 수야 뎡무총감(水野政務摠監·수야 정무총감)과 총독부의 중요한 관리와 인사를 맛치고 중앙에 설비한 탁상 우에는 화려한 류리 화병에 백화를 찬란하게 꼬저놋코 간단히 축배의 준비를 하얏는대 주빈으로 착석한 『푸』『마』 두 중위는 만면희색에 경착한 비행복을 입고 가삼에는 금은색이 찬란한 훈장이 겻테 잇는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번적거린다.

두 중위는 서향을 하야 안고 기타 환영위원들은 테블을 중앙으로 둘너서서 갓둑하게 부은 삼폐ㄴ의 술잔을 일시에 놉히 들어 우도 군사령관의 발성으로 만세를 부르매 『푸』『마』 두 중위는 섯트른 일본말노 『만세』를 불너 화답하며 그 씩씩하고 장쾌한 모양은 몃 만 리를 공중으로 구치하야 온 피로한 사람갓치는 보이지 아니한다.

『삼펜』의 술잔을 입에다 이고 두 중위는 쾌할하게 마신 후에 경성부에서 긔징하는 화환은 송영부자(松永富子·송영부자) 아도덕자(兒島德子·아도덕자)의 두 령양의 손으로 기증되얏다. 한편에서는 쳥랑한 군악대의 일본국가의 주악이 잇슨 후에 일동은 다시 텬막 밧게 설비하야 노흔 의자에 두 중위를 중앙에 안치고 중요한 래빈들이 긔념사진을 박힌 후에 하오 두시 이십분에 환엽식은 간단히 맛치엿다.


榮光(영광)을 裝飾(장식)하는
東亞日報(동아일보)의 花環(화환)
본사에서 션사한 화려한 화환
두 즁위난 깃거웁게 이를 바다

경성부의 환영식이 두시 이십분에 끝난 후 본사에서는 특별히 몃 만 리 먼 길에 『로-마』에서 경성까지 장쾌히 나라온 『푸에라린』 중위와 『마세에로』 중위에게 일반 독자를 대표하야 위로하는 뜻을 표하고저 화환을 한 개식 증정하기로 되야 본사 주간 댱덕수 씨의 령매 댱덕선 양(張德善 孃·장덕선 양) (一六·일육)과 본사 긔자 김형원 군의 종매 리금득 양(李金得 孃·이금득 양) (一七·일칠)의 손으로 두 중위에게 각각 화환을 증정하매 두 중위는 매우 감사한 얼골로 바드며 화환에 조선문으로 쓴 패를 가라치며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기로 우에는 중위의 일홈을 쓰고 아래에는 『동아일보사』라고 썻노라 한 즉 매우 깃거하며 조선에 와서 조선 사람에게 이와 가치 따듯한 환영을 밧음은 당연한 일이라 하겟스나 과연 이럿케 성대히 마자줄 줄은 각생지 못한 바올시다. 처음 길이라 디형 『地形·지형』을 자세히 몰나서 경성에 도착할 때에는 매우 고생을 하얏슴니다 하고 먼저 도착한 『마세로』 중위가 말을 맛지 못하야 『푸에라린』 중위가 다시 이어서 조선은 참으로 경치가 이태리와 근사하야 매우 아름다우며 긔후 『氣候·기후』는 매우 평은하야 비행하기에는 매우 뎍당하오 하며 끗끗내 깃분 뜻을 이기지 못하얏다. 이러케 화환이 증뎡하는 식이 끗난 후 긔념으로 사진을 박힌 후 두 중위는 얼마동안을 휴식하야가지고 자동차를 타고 화환을 가치 실코 숙소인 조선호텔로 들어갓는대 오날 내일을 쉬어가지고 재명일 이십팔일에 출발하야 대구(大邱·대구)를 지나서 동경으로 간다더라.


兩(양) 中尉(중위) 歡迎會(환영회)
이십칠일 저녁에
『이태리』 비행긔 『푸』『마』 두 중위의 환영회는 경성부의 주최로 명 이십칠일 하오 일곱 시에 조선호텔에서 연다더라.

滿都(만도)를 擧(거)하야 漢江(한강)에
비행긔 구경에 물 끌틋 한 경성


어제는 사월 팔일이자 만성 인민이 목이 말으게 기다리든 이태리 비행긔가 여의도(汝矣島·여의도)에 도착하는 날이다. 만성 인민 남녀로소가 물 끌틋이 몰녀서 여의도 넓은 마당을 향하는 사람이 몃 만 명이나 되는지 뎐차마다 만원이 되고 몬지를 일으키며 몰녀가는 자동차도 련란부졀한다. 첫여름 하늘 빗은 류리가치 개여잇고 가늘게 부러오는 서늘한 바람은 낫을 싯처 지나가는대 남대문 밧 나서서 길에 널닌 사람들은 모다 비행긔 구경 가는 사람들이라. 색동저고리 입은 어린하해 모시 녀름옷 입은 부인네 수만 명 사람이 길거리에 억개를 부빌만치 혼잡하얏다.

수양버들 느러지고 한강물은 말갓는대 불근 글시 쓰인 사긔(社旗·사기)를 풀풀 날니며 풍우가치 모라가는 본사의 자동차대를 보고 길거리로 몰녀가다가 잠시 다리를 솔밧에서 쉬이고 잇든 회색 양복 입은 학생들은 본사의 자동차를 바라보며 환영의 깃분 소래를 부르지저 한 흥미를 새로히 더하얏다.

급게 흘너가는 한강의 물결에는 수척의 어선이 시름업시 떠서 잇고 여의도 넓은 마당에는 구경군으로 바다를 이루엇다. 드러가는 먼 산에는 등어리마다 사람이 모혀 안잣고 드러가는 어구에는 룡산경찰서 림시로 파출된 구호장(救護場·구호장)이 잇고 그 외에 수십여 처의 쳔막 아래에는 신문긔자석(新聞記者席·신문기자석) 유지자석(有志者席·유지자석) 군사령부에서 출장한 군복 입은 군인들 휴게소(休憩·휴게)가 수업시 벌려잇고 각 학고에서 대를 지어 나온 학생들도 용장스럽게 느러서서 비행긔가 드러오기만 눈이 빠지게 서녁 하늘을 처다보는대 가슴에 흰 꼿을 붓친 위원들은 분주하게 안내를 하야준다.

힘차게 날아오른 하늘 3만3000리
부처님오신날 한양에 이탈리아 비행기 도착
두 대의 이탈리아 비행기는 날개를 연이어
25일 오후 성대한 만세소리 속에 경성에 도착



날수로 104일, 직접비용 150만 원을 들여 유럽의 남쪽 끝에서 아시아 동쪽 끝까지 무수히 많은 장애와 고난을 맞아 싸우면서 공중 3만3000리(약 1만3000㎞)를 정복하고 로마~도쿄 간 대 비행을 한 이탈리아 비행기는 두 대가 날개를 나란히 하고 25일 오후 경성을 멀리서 찾았다.

개벽 이래 처음으로 먼 데서 방문하는 공중 손님을 맞는 경성 시민은 거룩한 동정과 깊은 느낌으로 ‘페라린’과 ‘마시에로’ 두 용사를 환영했고, 우리 동아일보는 용맹하고 장쾌한 하늘의 정복자에게 2000만 동포의 환영하는 마음을 전하는 취지로 그에게 화환을 보내 성공을 축하했다.









온다! 온다! 만세!


의주~경성 간 2시간 15분
성대한 만세소리 속에 장쾌한 그의 착륙


여의도 착륙장을 중심으로 노량진, 구룡산, 마포 주변까지 모여든 10여 만의 군중이 하늘을 쳐다보며 멀리서 오는 공중의 용사를 기다렸다. 아침에 흐렸던 날씨는 꽤 맑고 화창해졌지만 바람은 자못 맹렬해 귀한 손님의 공중 여행에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관중의 가슴에 오가는 중

오후 1시쯤 착륙장에서 서북쪽 하늘을 살피던 접대위원 한 명이 “왔다”하는 소리를 지르자 수만의 관중은 이에 응해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이 때 멀리 일산 방면으로부터 새만한 크기의 비행기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차차 가까워지면서 바람을 가르며 진동하는 프로펠러 소리가 웅장하고 상쾌하게 관중의 가슴을 울린다.

등황색 ‘스파’(SVA)식 복엽(複葉) 비행기는 왼편에 가득 햇빛을 받고 여의도 착륙장을 지나더니 방향을 돌려 남산 왼편을 넘어 경성 시내를 한번 돌아 시민에게 경의를 표하고 여의도 착륙장에 서서히 내려 한강 물결을 울릴 정도로 성대한 만세소리 속에 착륙한 시각은 오후 1시 40분이었다. 신의주에서 출발한 지 겨우 2시간 15분 만에 1200리(약 470㎞)를 돌파한 것이다. 이 같이 제일 먼저 도착한 장교는 오늘 아침 신의주에 도착해 휴식할 겨를도 없이 다시 비행기에 오른 마시에로 중위라는 말이 가득 모인 사람들에게 전파되니 감탄하는 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또 한 대!
페라린 도착
신기한 저공비행


마시에로 중위의 착륙에 환호하는 함성이 아직 그치지 않은 오후 1시 56분에 또 한 대의 비행기가 멀리 서쪽 하늘에 나타난다. “저것이 페라린이다”하는 소리가 이제 좀 진정되려는 착륙장을 다시 들썩이게 한다. 이 비행기도 여의도 착륙장을 한번 돌아 경성을 방문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저공비행을 시작해 남산보다 훨씬 얕게 지상에서 겨우 300척(약 90m) 고도를 유지해 보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며 경성 시내를 서서히 돌아 1시 57분에 착륙장에 내려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지상의 사람’이 되니 기골도 당당한 장부요, 가슴엔 중국 훈장의 광채가 번쩍인다.

등황색 비행기 뒷면에 그린 3색의 이탈리아 국기는 먼 거리를 날아온 고난에도 색채가 오히려 선명하고, 100일 원정에도 피곤한 기색 조금도 없이 얼굴에 유쾌한 웃음 가득한 장사의 태도는 과연 피와 생명으로 조국을 회복한 이탈리아 사람,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환호성 속에 축배
웃는 얼굴로 마시는 샴페인


페라린과 마시에로, 두 중위는 이미 마련된 휴게실로 들어가 잠깐 쉰 뒤 오후 2시 10분에 별도로 만들어놓은 식장으로 다른 이탈리아 장교들을 인도해 들어가 먼저 우쓰노미야 다로(宇都宮太郞) 군사령관과 악수한 뒤 차례로 미즈노 렌타로(水野練太郞) 정무총감 등 총독부 주요 관리와 인사를 마쳤다. 중앙의 탁상 위에는 화려한 유리 화병에 눈부시게 흰 꽃을 꽂아놓고 간단히 축배 준비를 했는데 주빈으로 착석한 두 중위는 만면에 희색을 띠고 비행복을 입었는데 그 가슴에 달린 금 은색의 찬란한 훈장은 곁에 있는 사람의 눈이 황홀하도록 번쩍인다.

두 중위는 서쪽을 향해 앉고, 기타 환영위원들은 테이블을 중앙으로 둘러서서 가득 부은 샴페인 잔을 일시에 높이 들어 우쓰노미야 군사령관의 선창으로 만세를 불렀다. 이에 두 중위가 서투른 일본말로 “만세”를 불러 화답하니 그 씩씩하고 장쾌한 모습은 수만 리 하늘을 달려온 피곤한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다.

두 중위가 샴페인 잔을 입에 대고 쾌활하게 마신 뒤, 마쓰나가 도미코(松永富子), 고지마 도쿠코(兒島德子) 두 여성은 경성부에서 기증하는 화환을 그들에게 선사했다. 한편에서 군악대가 맑고 낭랑하게 일본 국가를 연주한 후 일동은 다시 천막 밖에 차린 의자 중앙에 두 중위를 앉히고 중요한 내빈들이 기념사진을 찍은 뒤 오후 2시 20분 환영식을 간단히 마쳤다.

영광을 장식하는 동아일보의 화환
본사에서 선사한 화려한 화환
두 중위는 기쁘게 이를 받아


경성부의 환영식이 2시 20분에 끝난 뒤 동아일보는 특별히 로마에서 경성까지 수만 리 먼 길을 장쾌히 날아온 페라린 중위와 마시에로 중위에게 일반 독자들을 대신해 위로의 뜻을 표하고자 화환을 한 개씩 증정하기로 했다. 본사 주간 장덕수 씨의 딸 장덕선 양(16)과 본사 김형원 기자의 사촌 여동생 이금득 양(17)의 손으로 두 중위에게 각각 화환을 증정했다. 두 중위는 매우 고마워하는 표정으로 받으며 화환에 한글로 쓴 패를 가리키며 “이것이 무슨 말이냐”라고 물어 “위는 중위의 이름을 쓰고 아래는 ‘동아일보사’라고 쓴 것이다”라고 하니 매우 기뻐했다. 먼저 도착한 마시에로 중위가 “조선에 와서 조선 사람에게 이렇게 따뜻한 환영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이렇게까지 성대하게 맞아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초행이라 지형을 자세히 몰라 경성에 도착할 때에는 매우 고생을 했다”라며 말을 마치지 못하자 페라린 중위가 이어 “조선은 이탈리아와 비슷하게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고 기후도 매우 평온해 비행하기에 적당하다”며 끝끝내 기쁜 뜻을 감추지 못했다.

이와 같이 화환 증정식이 끝난 후 기념으로 사진촬영을 한 뒤 두 중위는 얼마 동안 휴식하려고 자동차에 화환을 싣고 숙소인 조선호텔로 들어갔는데, 오늘과 내일 쉬고 모레인 28일에 출발해 대구를 경유해 도쿄로 갈 예정이다.

두 중위 환영회
27일 저녁에


이탈리아 비행기 페라린, 마시에로 두 중위의 환영회는 경성부 주최로 27일 오후 7시에 조선호텔에서 열릴 계획이다.


온 도시가 들썩이며 한강에
비행기 구경에 물 끓듯 한 경성


어제는 음력 4월 8일이자 모든 사람이 목마르게 기다리던 이탈리아 비행기가 여의도에 도착한 날이다. 온 백성, 남녀노소가 물 끓듯 몰려 여의도 넓은 마당으로 향하는 사람이 몇 만 명이나 되는지 전차마다 만원이요, 먼지 일으키며 몰려가는 자동차도 맞닿아 끝이 없다. 첫여름 하늘빛은 유리 같이 개었고, 가늘게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낯을 스쳐 지나가는데 남대문 밖에 나서 길에 널린 사람들은 모두 비행기 구경 가는 사람들이다. 색동저고리 입은 어린이, 모시 여름옷 입은 부인네 등 수만 명이 길거리에서 어깨를 부빌 만큼 혼잡했다.

수양버들 늘어지고 한강 물은 맑은데 길거리로 몰려가다 잠시 솔밭에서 다리를 쉬어가던 회색 양복 입은 학생들은 붉은 글씨가 쓰인 사기(社旗)를 펄펄 날리며 비바람 같이 달리는 본사의 자동차를 바라보며 환영의 기쁜 소리를 부르짖어 흥미를 새로이 더했다.

빠르게 흐르는 한강 물결에는 몇 척의 어선이 한가로이 떠있고, 여의도 넓은 마당은 구경꾼으로 바다를 이뤘다. 들어가는 먼 산에는 등성이마다 사람들이 모여 앉았고, 들어가는 어귀에는 용산경찰서가 설치한 임시 치료소가 있고, 그 외에 수십 개 천막 아래에는 신문기자석, 유지석, 군사령부에서 출장 나온 군복 입은 군인들의 휴게소가 수없이 벌려 있다. 각 학교에서 무리지어 나온 학생들도 용감하고 굳세게 늘어서 비행기가 들어오기만 눈이 빠지게 서쪽 하늘을 쳐다보는데, 가슴에 흰 꽃을 붙인 위원들은 분주하게 안내를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