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06월 07일

“무례하다” 뺨 때리고 발로 차고…말로만 “문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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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후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는 문화정치를 내세우며 과거 무단정치의 상징인 헌병의 상당수를 경관으로 옷을 갈아입혔지만,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전국 방방곡곡에 경찰서와 파출소, 주재소를 크게 늘려 조선 민중을 감시하고, 수탈했습니다. 민족차별, 민족말살의 일선에 경찰을 앞세운 것이죠. 동아일보는 창간 직후부터 경찰의 횡포를 끊임없이 고발했습니다. 그것이 곧 총독부를 공격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먼저 1920년 6월 5~7일자 3면에 연속 게재한 ‘제도의 죄냐? 사람의 죄냐? 지방경관의 횡포’를 보겠습니다. 해당 지면을 찍기 보름 전, 황해도 봉산군 기천면에서 일본인 순사부장이 조선인 면장을 구타하며 행패를 부린 일이 있었는데 동아일보는 이 소식을 듣고 순회특파원을 현지에 파견했습니다.

곡절은 이랬습니다. 사이토 총독의 ‘1군 1경찰서, 1면 1주재소’ 방침에 따라 기천면에도 주재소를 지으려던 순사부장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면장을 찾아가 직접 마을 유지 21명을 지명하며 이들의 기부를 받아야겠으니 모아달라고 합니다. 면장의 기별에도 끝내 3명이 불참합니다. 그러자 화가 난 순사부장은 21명 모두 주재소로 출두하라고 압박했고, 면장이 “농번기라 오늘 오지 않은 3명만 호출하면 어떻겠느냐”며 완곡히 거부하자 갑자기 “무례하다”며 뺨을 때리고, 구둣발로 가슴과 배를 찬 겁니다.

기자는 사건의 전말을 자세히 취재해 보도하며 말미에 “독립당과 배일파를 감옥에 넣기 전에 먼저 경관과 하급관리를 처치하라. 종래의 ‘비리겐’식 정치와 현재의 ‘깨강정 제도’로는 성공적으로 조선을 통치할 수 없으니 꿈 깨라”고 총독을 향해 일갈했습니다. ‘비리겐’은 머리가 뾰족하고 눈썹 끝이 올라간 복신(福神)의 상(像)입니다. 미국의 ‘빌리켄(Billiken)’이 원조인데 일본에서 들여오면서 ‘비리겐’으로 발음한 것이죠.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초대 조선총독은 생김새가 이와 비슷해 ‘비리겐’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또 깨강정은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부서지기 쉬운 과자이니 기사에서 ‘종래의 비리겐과 현재의 깨강정’은 ‘데라우치 식 무단정치와 형편없이 왜곡된 문화정치’를 싸잡아 일컫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1920년 4월 19일자 3면은 부산역 앞에서 조선인 수백 명에게 일을 시킨 뒤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은 데다, 항의하는 노동자에게 총까지 쏜 일본인을 비호하고 노동자들은 구타, 구금한 경관을 폭로했습니다. 또 같은 해 5월 12일자 3면 ‘난폭한 경관의 행위’에서는 장조(莊祖·사도세자)의 장인, 영풍부원군 홍봉한의 사당을 모신 집에 청결검사를 하러 온 순사가 사당방을 훼손한 일을 고발했습니다. 순사는 가장 경건해야 할 장소인 사당에 대고 빗자루를 휘두르며 “이게 다 뭐야? 부원군은 뭐냐?”라며 모욕적인 언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주부가 파출소에 고발했지만 흐지부지 종결되고, 다음날 다시 종로경찰서에 고소하니 증거도 없는 무고(誣告)라며 오히려 피해자를 구류했다는 내용입니다.

동아일보 1932년 2월 14일자에 실린 ‘순사와 개’의 악보. 해외동요에 윤석중 선생이 노랫말을 붙인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후로도 일경(日警)의 만행을 줄기차게 비판했지만 한 가지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1932년 2월 14일자 4면에 실린 ‘순사와 개’라는 동요입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이 노랫말을 붙였습니다. 몇 번 읊다보면 개가 짖는 대상이 순사인지, 도둑인지 헷갈릴 정도로 고급스런 은유가 쓰였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가사를 본 순사들의 얼굴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멍 멍 멍 개가 짖네/ 순사 오는 걸 보고~/ “이 댁엔 도둑놈이/ 안 들어왔으니~/ 딴 데나 가보라”고/ 멍~ 멍 멍~ 멍 멍~’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1월 22일
制度(제도)의 罪(죄)냐? 사람의 罪(죄)냐?

地方警官(지방경관)의 橫暴(횡포)

폭로된 춍독정치의 암흑면
조션의 정치를 방해하는 자
깨강정 가튼 재등 씨의 정치

沙里院(사리원)에서 巡廻特派員(순회특파원)


긔자는 이에 밝히 깨다랏다. 소위 조선통치의 개혁이라 하는 것은 뷘말뿐이오 조금도 실상이 업는 것은 사일이다. 위선 압해 두 번이나 보도한 사실을 볼진대 주재소나 공텽을 인민의 긔부로써 짓는 폐습이 폭로되얏고, 경찰관이 행정관(行政官·행정관)을 압박하는 것이 폭로되얏고, 디방 경관의 횡포한 행동이 폭로되얏스면 헌병을 그대로 옷만 밧고아 입히어서 경관을 만들은 것이 헌병제도를 폐지하고 경찰제도로 한 근본 목뎍에 위반되는 것이 아조 명백히 들어낫다.

그뿐 아라 더욱히 주재소를 인민의 돈으로 짓는 데에는 부자에게 거의 강제로 긔부를 식히어가지고 집을 지은 후에는 그 집은 면의 소유로 하고 한 달에 오륙 원의 집제를 밧고 경찰서에 빌니어주는대 그 오륙 원의 세금으로는 도저히 짐을 수리하는 비용도 되지 못한는 것이라 함은 역시 봉산군수의 말이다. 이와 갓치 교묘한 방법으로 인민의 돈을 빼아서서 공용에 씀은 사내 총독 시대의 관습이라 하겟스나 문화정치의 현판을 붓치고 나온 재등 씨도 이러한 일을 여젼히 행하는가.

긔자는 물론 재등 씨의 충정도 히지 못함은 아니다. 사실 일본의 조선통치를 방해를 하는 사람은 경관, 더욱 하급 경찰관리가 아니고 누구인가. 아모러한 죄도 업는 량민도 슌사나우리의 무리한 구두 발길과 빰손에는 감정이 아니 날 수가 업스며 일본을 배쳑하는 마음이 골수에 사못칠 것은 뎡한 일이 아닐가.

소소한 내막을 자세히 말함은 오히려 쓸 데 업는 일이오, 임의 세상이 다 아는 바이어니와 조선 사람이라 하면 눈꼽만치의 따듯한 정이 업시 대꼭지로부터 미워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갓가지로 차별만 하닛가 그래도 감정이 잇는 동물로서 엇지 반감이 업슬 수가 잇스리오.

그리고 하급 관리의 디방 인민에게 대한 권리라 하는 것은 엉터리도 업시 조선 총독보다 더 큰 것은 사실이다. 그네는 이와 갓튼 권리를 가진 것이 한업는 깃붐으로 아는지 백성이라고는 보기만 하면 압박과 학대를 할 뿐이다. 이것이 그네의 행세하는 버릇이 할지 그럿치 아니하면 그네가 아즉 아모 철을 몰나서 그러한지는 모르나 압박의 면에는 반듯이 반항(反抗·반항)이 잇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오, 또한 떳떳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럼으로 디방 인민들은 압박을 하면 엇지 할 수 업시 당하기는 하나 속으로 반항하는 마음이 나날이 늘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일로 말미암아 볼진대 총독정치를 방해하고 조선의 사회를 편안케 하지 안는 데는 하급 관리와 순사도 착실히 한목 보는 것은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긔자는 이에 현재의 총독졍치를 조상치 아니치 못하며 독립당과 배일파를 검거하야 감옥에 늣키 젼에 먼저 경관과 하급 관리를 처치하는 것 당연한 일이오, 종래의 『비리겐』식 정치와 현재의 깨강정 제도로는 도뎌히 조선 통치는 성공치 못할 것을 들어서 재등 씨의 꿈을 깨이고자 한다. (끗)
제도의 죄냐, 사람의 죄냐?

지방경관의 횡포


폭로된 총독정치의 어두운 면
조선의 정치를 방해하는 것은
깨강정 같은 사이토 총독의 정치

사리원에서 순회특파원


기자는 이에 명백히 깨달았다. 이른바 조선통치의 개혁이라 하는 것은 빈 말뿐이요, 조금도 실상이 없는 게 사실이다. 우선 앞에 두 번이나 보도한 사실을 보자. 주재소나 공청(公廳)을 인민의 기부를 받아 짓는 폐습이 폭로됐고, 경찰관이 행정관을 압박하는 것이 또 폭로됐고, 지방경관의 횡포한 행동이 폭로됐다. 따라서 헌병을 그대로 옷만 바꿔 입혀 경관을 만든 것은 헌병제도를 폐지하고 경찰제도로 한 근본 목적에 위반된다는 것이 아주 명백히 드러났다.

더욱 그 뿐 아니라 인민의 돈으로, 부자에게 거의 강제로 기부를 받아 주재소를 지은 뒤에는 그것을 면(面) 소유로 하고, 한 달에 5, 6원의 집세를 받고 경찰서에 빌려주는데 그 5, 6원으로는 도저히 집을 수리하는 비용도 되지 않는다는 게 역시 봉산군수의 말이다. 이 같이 교묘한 방법으로 인민의 돈을 빼앗아 공용(公用)으로 쓰는 것은 데라우치 총독 시대의 관습이라 하겠지만, 문화정치라는 현판을 붙이고 나온 사이토 총독도 여전히 이런 일을 자행하는가.

기자는 물론 사이토의 충정을 알지 못하는 건 아니다. 사실 일본의 조선 통치를 방해하는 사람은 경관, 특히 하급 경찰관리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아무 죄도 없는 양민도 순사 나리의 구둣발과 뺨 때리기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본을 배척하는 마음이 골수에 사무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소소한 내막을 자세히 말하는 건 오히려 쓴 데 없는 일이요, 이미 세상이 다 아는 것이지만 조선 사람이라 하면 눈곱만큼의 따뜻한 정도 없이 꼭지부터 미워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갖가지 차별만 하니 그래도 감정 있는 동물인데 어찌 반감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지방민에 대해 하급관리가 휘두르는 권리라 하는 것도 터무니없이 조선 총독보다 더 큰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이 같은 권리를 가진 것을 한없는 기쁨으로 아는지 백성이라고 보기만 하면 압박, 학대할 뿐이다. 이것이 그들의 행세하는 버릇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아직 철이 들지 않아 그런지 모르겠지만 압박을 하면 반드시 반항이 따르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요, 또한 반항하는 것이 떳떳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방 인민들은 압박을 하면 할 수 없이 당하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나날이 반항심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총독정치를 방해하고 조선 사회를 편안하게 하지 않는 데는 하급 관리와 순사도 충분히 한 몫 하는 것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기자는 이에 현재의 총독정치를 슬퍼하지 않을 수 없으며, 독립당과 배일파(排日派)를 검거해 감옥에 넣기 전에 먼저 경관과 하급 관리를 처치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요, 종래의 ‘데라우치 식 정치’와 현재의 ‘깨강정 제도’로는 도저히 조선 통치는 성공할 수 없음을 들어 사이토의 꿈을 깨고자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