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색이 제1야당이 안철수 앞에 당장 엎드릴 리 없다. 안철수도 출마 선언 당시 국민의힘(이하 국힘) 입당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이라고 했고, 통합경선도 “공정경쟁만 된다면 어떤 방식도 좋다”고 밝혔다. 이후 야권은 안철수가 던진 도시락폭탄에 혼란과 갈등, 분열로 치닫는 양상이다.
● 총선 지역구 포기가 양보였다고?
국힘에서 입당하라, 들어와서 경선하라, 노래를 부른 건 당연하다(안철수가 열린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하여 국힘과 국당이 통합경선 방식에 합의해낸다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서울시민은 희망차게 새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국힘이 서울시장 후보를 준다고 약속을 한대도(공당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철수가 그 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합당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입당은 웃기는 소리다). 선입당 후경선이 싫은 건 이해한다지만 안철수는 14일 “이미 지난해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양보했는데 또 양보를 하라고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오잉? 국당이 지역구 후보를 못 낸 게 아니라 양보를 한 거라고?

긴 외유에서 귀국해 2020년 1월 국당을 창당한 안철수는 국힘(당시 미래통합당)과의 연대를 단호히 거부했었다. “여당과의 일대일 구도는 백전백패”라고 했다가 나중엔 “거기(통합당) 대표나 공천관리위원장이 오히려 생각이 없다고 한다”고까지 했다. 당 지지율이 지지부진해 안철수계 의원들이 자꾸 통합당으로 떠나자 2월 말 기자회견을 열어 “253개 지역 선거구에 후보자를 내지 않기로 했다”고 비례대표 후보만 공천한 게 전부다. 그게 아니라 안철수 자신이 서울시장(원래는 대통령) 야권 단일후보가 되려고 일부러, 미리, 당을 희생시키는 양보를 했다면 그야말로 당을 사유화한 당권남용이다.
● 서울시장 포기는 부친 반대 때문이었다
‘양보’라는 데 안철수의 상품가치가 있기는 하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지지율 50%를 달리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철수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을 위해 조건 없는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단박에 대선주자로 등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300명 멘토’ 중 하나였던 윤여준은 그해 12월 “안철수가 부친의 결사반대 때문에 (출마) 못 한다고 했다”고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나도 생생히 기억한다. 서울시장에 출마를 생각 중이라는 기사가 9월 1일 밤 오마이뉴스에 뜨자 다음 날 모든 매체가 안철수의 입만 바라보는 형국이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며 9일 최종 결심을 밝히겠다고 했다. 그런데 윤여준에 따르면 안철수는 2일 아침에 벌써 “부친이 결사반대한다”고 전화해왔다는 거다. 이렇게 발칵 엎어놓고 안 하겠다면 장난하는 거냐, 빠지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하니 박원순에게 양보한다며 빠져야 명분이 선다는 취지로 말해줬더니, 그게 7일 사심 없이 양보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장됐다는 얘기다.

● 파파보이 안철수, 지금은 달라졌을까
안철수의 부친 안영모 씨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2012년 4월 국제신문 인터뷰에서 “평소 내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 요소도 있었을 것”이라며 또 한 가지 중요한 얘기를 했다. 안철수가 2012년 대선에 나오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을 때였다. 부친은 “내가 성격을 봐서 아는데 큰아이는 경선하자고 해도 경선할 아이가 아냐. 절대 경선은 안 한다”고 단언한 것이다. 실제로 그해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과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는 경선을 하지 않았다. 당시 안철수의 진심캠프에서 단일화 협상에 나섰던 금태섭은 무슨 대책이 있는 게 아니라 문재인의 양보만 기다렸다고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 썼다. 계속 시간만 흘러가 나중엔 여론조사 방식만 남았는데 그마저 못 믿겠다며 거부해버렸다. 그러더니 안철수는 누구와 의논했는지도 모르게 11월 23일 느닷없이 사퇴를 선언했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문 후보 지지율을 압도하고 있다고 해도 제1야당의 후보가 자진해서 사퇴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금태섭이 책에 쓴 대목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국힘은 10명의 경선 주자 중 후보를 만들어낼 것이다. 서울시를 집권당의 폭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선 야권후보 단일화가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러나 안철수로선 더는 물러설 수 없다. 그렇다고 국힘과 단일화 경선을 할 ‘아이’인지는 의문이다. 과연 안철수는 달라졌을까.
● 눈썹 굵어진 안철수, 마음도 굵어졌어야
아닌 것 같다. 눈썹이 진해지고, 목소리도 굵어졌지만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에 “저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까지 나서 근거 없는 비판을 한다”고 발끈한 걸 보면 안철수는 아직 밴댕이속이다. 10년의 정치 실패를 반성하고, 공부하며, 큰 뜻을 갈고 닦았다면 “과거에 그랬다면 미안하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같이 정치하며 큰 뜻을 펴보자”는 식으로 정치인의 도량을 보여줬어야 했다. 국힘과 단일화하기로 결론이 났다 해도 경선방식에 합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안철수는 “단일후보 결정은 이 정권에 분노하는 서울시민들이 하면 된다”고 했는데 국힘이 제시하는 여론조사 방식은 ‘이 정권에 분노하는 서울시민 대상’이 아니라는 식으로 합의가 안 될 가능성이 크다(심지어 국당의 이태규는 14일 “100% 시민경선에서 표본수 표본도 전체 표본으로 할지, 야당 지지층과 무당층으로만 할지, 적합도로 할지, 경쟁력으로 할지, 여기에 따라서 엄청난 관점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복잡한 소리를 했다).
경선방식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안철수는 당연히 출마한다. 안철수와 국힘, 무소속의 금태섭까지 야권이 표를 갉아먹다 패배할 공산이 크다.
● 그래도 집권당에 비하면 양질이다
집권당 소속 고 박원순 서울시장 때문에 하게 된 보궐선거다. 자기네 잘못 때문에 재·보궐선거를 하게 되면 후보를 안 낸다는 당헌까지 고치는 집권세력에 비하면, 안철수나 국힘은 양질이라고 봐야 한다.그럼에도 제1야당인 국힘이 이 선거도 이기지 못하면, 그런 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서울시민이 원하는 것은 야권의 승리이지 국힘의 운명엔 미안하지만 관심 없다. 어떤 식으로든 국힘은 안철수를 껴안고 승리하든지, 논개처럼 자폭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안철수든, 국힘이든 비판전으로 제 살 깎아먹진 말았으면 한다(좌파는 그런 짓 절대 안 한다. 그러고 보니 안철수는 좌파는 아닌 모양이다). 행운을 빈다. 해피 뉴 이어.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