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여당은 서울·부산시장 공천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5일 14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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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은 코로나19만이 아니었다. 뻔뻔함도 팬데믹이다. 집권세력의 뻔뻔스러운 내로남불엔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친문 핵심도 아닌 김부겸 전 의원까지 감염될 줄은 몰랐다. 자신이 당 대표가 되면 내년 재·보궐선거에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낼 뜻을 밝힌 것이다. 마치 심장에 철판을 깐 듯 불과 닷새 전 자기가 한 말을 뒤집고서.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은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선을 할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김상곤 혁신위’가 만든 혁신책이다. 뚝심으로 이름난 김부겸이 대통령표 당헌을 가볍게 깨뜨린다니, 뻔뻔함은 무서운 팬데믹이 아닐 수 없다.

● 국민과의 약속 뒤집겠다는 김부겸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문으로 사퇴해 치르는 거다. 서울시장 보선 역시 고 박원순 시장의 ‘유고’ 때문이다. 민주당에서 성추문 정도는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당의 뻔뻔스러움을 입증할 뿐이다. 당신의 딸이, 누이 또는 아내가 같은 일을 당했대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나.

김부겸은 14일 당에 귀책사유가 있으면 재·보선 후보를 안 낸다는 당헌을 언급하면서도 내년 선거가 “당의 중요한 명운이 걸렸다고 할 만큼 큰 선거”라고 공천의 불가피성을 시사했다. 당헌 당규만 고집하기엔 너무 큰 문제가 됐고, 따라서 그 지역에서 고생해 온 당원 동지들의 견해가 제일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당원 뜻을 방패 삼아 당헌을 고치고, 대국민 사과를 마스크 삼아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을 하겠다는 얘기다.

금태섭 전 의원이 당론을 어겼다는 이유로 징계했던 민주당이다. 이해찬 당 대표는 당론 받들기를 ‘국회의원은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보다 중시해 중국공산당의 민주집중제 뺨친다는 비난까지 들었다. 당헌을 그냥 둔 채 2018년 지방선거 때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자리에 양승조 현 지사를 공천한 것보다는 당헌을 고치는 게 덜 뻔뻔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 앞에 약속했던 당헌을 고치는 것도 김부겸은 국민과의 약속보다 ‘문파’의 뜻을 중시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 서울시장 유고, 누구 귀책인지 밝혀라

김부겸이 9일 자기가 했던 말을 뒤집고도 반성조차 않는 건 더 실망스럽다.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한 그날 김부겸은 “당헌은 편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 문제”라며 “우리들이 약속한 국민들과의 약속 자체가 편의에 따라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당원들과 고민해서 결정하겠다는 똑같은 전제 아래 말을 바꾼 것이다. 그러고도 ‘책임 정당’을 이끌겠다는 그의 말은 믿기 어렵다.

서울시장 유고를 불러온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서울시 직원 A 씨의 고소는 피고소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된 상태다. 그래서 귀책사유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진상 규명은 반드시 해야 한다.

김부겸 선거캠프는 14일 서울시 인권위원회 조사를 공식 제안했다. 심지어 15일 김부겸은 “고소인의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는 건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A 씨가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는데 ‘서울시 내부’의 인권위원회인들 제대로 밝혀낼지 의문이다.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서울시 차원의 진상조사를 제안하며 외부인 참여를 요구한 데 비해서도 김부겸안은 뻔하고도 무책임하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7일 국회 소통관에서 전당대회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일보 DB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7일 국회 소통관에서 전당대회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일보 DB


● 당권주자 이낙연은 제 목소리 못 내나

당권주자 이낙연 의원은 14일 후보 공천 여부를 묻는 질문에 “시기가 되면 할 말을 하겠다”고 답 같지 않은 답을 했다. 진상 규명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당에서 정리된 입장을 곧 낼 것으로 안다”고 말해 듣는 이를 속 터지게 했다. 15일엔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기를 바란다”며 “민주당도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는 뻔한 소리를 했다. 차기 대통령감 1등을 달리면서도 친문 직계 아닌 호남 출신이어선지 부자 몸조심하는 티가 역력하다.

어쩌면 이낙연은 엄숙한 신중함으로 지배세력의 뻔뻔스러움과 차별화하는 전략일지 모른다. 문파의 눈 밖에 나면 당권도, 대권도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사람도 없다. 그렇게 신중(愼重·지나치게 조심함)에 신중을 기하다 설령 대선 경선을 통과해 대통령이 된대도 자기 목소리가 남아날지 걱정스럽다.

이낙연이 진정 현재의 권력과 차별화를 원한다면, 진상 규명은 물론 누가 A 씨의 고소를 피고소인에게 유출했는지 밝히라고 촉구하기 바란다. 경찰청이 A 씨의 고소를 청와대에 보고한 날 서울시 젠더특보는 ‘외부’에서 불미스러운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전임 대통령이 국정 농단으로 탄핵을 받은 것도 공무상 비밀누설에서 비롯됐다. 그래도 침묵한다면… 이낙연은 ‘문재인 청와대’의 적자(嫡子)로 자리매김할 순 있을 것이다(그러나 대선에 유리할지는 알 수 없다).

● 몸은 늙어도 마음은 아직도 ‘운동권 성문화’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14일 사과문을 내며 ‘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을 포함해 당내의 모든 성비위 관련 긴급 일제점검’을 요구한 건 의미심장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민주당에서 성추문이 잇따라 터져서만이 아니다. 그들도 운동권 특유의 성(性)문화를 모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21대 국회의원 중 전과(前過)가 1건 이상 있는 사람이 세 명 중 한 명(33%)이다. 민주당은 73명(41%)으로 통합당(22명·21%)보다 훨씬 많다. 상당수가 전대협 등 운동권 출신이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별을 단 것으로 분석된다.

1980년대 운동권은 감히 말하지 못했지만 2000년 들어 젊은것들이 작심하고 까발린 이슈가 ‘운동사회의 성폭력’이다. 정의당 류호정, 장혜영 의원이 강조한 ‘피해자 중심주의’는 단순히 성폭력을 피해자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게 아니다. 대학·노조·시민단체 등 도덕성과 평등을 내건 좌파 조직에 성폭력이 만연해 있고, 더는 못 참게 된 젊은 여성단체들이 2000년 말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 깃발 아래 외친 전문용어가 피해자 중심주의였다.

고 박원순 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서울시 직원 A 씨의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왼쪽에서 두번째)가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일보 DB
고 박원순 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서울시 직원 A 씨의 대리인 김재련 변호사(왼쪽에서 두번째)가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일보 DB


● 은폐와 적반하장은 집어치워라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무엇이 성폭력인지는 가해자 진술 없이도, 피해자의 고통과 판단만으로 성립된다(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의 진술이 필요 없는 이유다).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 사건은 매우 빈번히 발생하는데(2000년 12월 100인위 ‘1차 실명 공개에 대한 입장’) 명망 있는 남성 운동가라는 특유의 조건 아래, 조직 보위를 위해 입을 다물라는 특유의 은폐구조, 가해자가 피해자처럼 둔갑하는 특유의 부정의(不正義)가 뻔뻔스럽게 작동된다. 이런 은폐와 침묵과 적반하장의 메커니즘이 ‘2차 가해’라는 거다.

서울시장 유고를 둘러싼 집권세력의 분위기와 기이할 만큼 흡사하지 않은가. 주로 운동권, 시민단체 출신이니 당연하다. 유독 민주당에서 불거지는 성적 문제는, 모든 여자들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믿는 권력중독 아저씨들의 착각 때문만이 아니다. 운동권 학생 시절에 익히, 좌파단체 때도 숱하게 직간접으로 겪었기에 보통국민은 이해 못 할 뻔뻔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당신들의 이념과 정책이 시대착오적이듯, 당신들의 성문화 또한 시대를 잘못 만났다. 이념과 정책과 성문화를 바꾸지 못한다면 노무현 정부 때 만든 성매매처벌법을 폐지하는 건 어떤지 묻고 싶다(필자가 폐지에 찬성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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