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청춘 너머 청춘

동아일보 입력 2010-06-12 03:00수정 2010-06-12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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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켓-변주곡, 김동구 그림 제공 포털아트
청춘(靑春)이란 단어를 발음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푸름입니다. 말뜻을 곧이곧대로 풀어도 ‘푸른 봄’입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청춘의 시기가 가장 앞선 지점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국어사전에서도 청춘을 10대 후반부터 20대를 일컫는 젊은 시절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청춘이 나이에 국한된다는 말에 회의적인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진정한 청춘은 단순하게 나이로 환산되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창조성에 좌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청춘의 가장 중요한 특질로 열정을 꼽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그것으로 청춘의 상실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정이란 삶에 대한 뜨거운 애정입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삶에 뜨거운 애정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의와 절망에 빠져 지옥처럼 암울한 나날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나이와 상관없이 나타납니다. 젊은 사람 중에도 삶에 대한 열정을 상실한 사람이 있고 나이 든 사람 중에도 삶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청춘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죽는 날까지 상실하지 말아야 할 필수적인 인생의 추진력입니다. 청춘이 끝나면 인생이 끝나고 인생이 끝나면 청춘이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는 청춘을 지니고 사는 사람과 청춘을 상실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청춘은 그 자체로 완성적인 형질이 아닙니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운동 에너지이고 생명활동에 필요한 원천적 생기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것을 위해 항상 깨어 있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의식이 정오의 태양처럼 빛나는 존재는 결코 나태해지지 않고, 의식이 밤하늘의 별처럼 각성된 존재는 결코 자신만을 위해 세상을 살지 않습니다. 청춘이란 나로부터 남에게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근원적 에너지, 나와 남을 넘어 인생의 본질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각성의 횃불입니다. 그리하여 청춘의 에너지로 각성된 사람은 인생의 행로를 잃지 않습니다. 청춘은 본질적인 것과 근원적인 것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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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원숙한 청춘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젊은이의 내면에서 고사당한 청춘을 발견할 때 우리는 이를 데 없이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인생이 소중하다는 점을 아는 사람, 그가 진정한 청춘의 소유자입니다. 청춘을 유지하는 사람은 항상 깨어 있는 자세로 인생을 다듬어 나갑니다. 인생의 가치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왜곡을 청춘의 이름으로 바로잡으며 자신의 인생행로를 올곧게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청춘을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모색하고 탐구하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청춘은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를 유지합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들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북극성처럼 청춘의 이정표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가라, 머뭇거리지 말고 가라, 심장이 살아 박동하는 그날까지 쉬지 말고 가라.”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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