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저녁 일본 도쿄 고토구에 있는 대형 쇼핑몰인 ‘어번독 라라포트 도요스’를 찾았다. 탁 트인 도쿄 앞바다와 인근 고층 맨션들의 불빛이 어우러진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30년 전만 해도 이곳의 풍경은 달랐다. 일본의 3대 중공업체인 IHI(옛 이시카와지마하리마중공업)의 조선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형 상업용 선박은 물론이고 자위대 군함들도 이곳에서 생산됐다. 하지만 2000년 호위함 ‘아케보노’ 건조를 마지막으로 조선소는 문을 닫았다.
방위력 강화 속도 내는 일본
일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선박의 절반가량을 건조하는 최대 조선 강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후발 주자인 한국과 중국에 뒤처진 상태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쇼핑몰로 변한 이 조선소 얘기를 다시 꺼내고 있다. 자국 조선업의 쇠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뼈아픈 장소를 상기시키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의 취임 반년 만에 반전의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정부는 지난달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살상 무기 수출을 원칙적으로 허용키로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서 살상 무기 수출을 금지해 온 방침을 전환한 것이다. 일본은 헌법 개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자는 논의를 넘어, 이제는 명칭을 국방군으로 변경하자는 목소리도 커진다. 2022년 안보 3문서를 개정하며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를 제도화했고, 올해 3월 사거리 1000km의 장거리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다. 사실상 한반도 전역이 타격권이다. 공격을 받았을 때만 제한적으로 방위력을 행사한다는, 전후 일본 안보의 근간인 ‘전수방위 원칙’이 사실상 형해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이 패전 후 경제가 급성장하며 다시 ‘군사 대국화’로 나아가려 한다는 우려는 앞서도 제기돼 왔다. 그럴 때 일본은 주변국과 국내 여론을 고려해 자중의 행보를 보여준 적도 있다. 1976년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내각이 무기 수출을 사실상 전면 금지하고, “방위비를 국민총생산(GNP)의 1%로 제한한다”는 원칙을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과거의 약속이 거론되는 것조차 요즘 일본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다카이치 총리는 2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그는 당시 ‘일본을 강하고 풍요롭게’라는 구호를 강조했다. 또 60% 내외 높은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강한 일본은 한국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북한, 중국, 러시아의 군사적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협력의 틀에 힘이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 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일본의 팽창주의를 마냥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셔틀 외교’ 다음 세대 여는 그림 만들 때
19, 20일 경북 안동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양국은 에너지 분야 등의 협력에 합의했다. ‘셔틀 외교’가 이어지며 한일 협력이 진전되는 모습이다. ‘셔틀 외교’의 기원은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 정상은 ‘긴밀한 상호 방문·협의를 유지·강화하고 정례화’하기로 했고, 실천도 했다.
그런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2년 뒤면 30주년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중이고, 다카이치 총리도 재임 중일 가능성이 크다. 두 정상이 ‘셔틀 외교’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평화와 공존, 그리고 새로운 30년을 여는 한일 관계의 새 그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강해지는 일본을 바라보는 우려도 줄어들 수 있을지 모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