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현석]딥페이크가 삼킨 선거 검증의 자리 되찾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24일 23시 12분


임현석 디지털랩 전략영상팀장
임현석 디지털랩 전략영상팀장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경기 평택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담은 그래프 이미지 한 장이 널리 퍼졌다. 한 방송사가 내보낸 조사 결과를 손본 것인데, 원본에서 파란색이던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의 그래프 막대는 국민의힘을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국혁신당 조국 후보의 파란색 막대를 돋보이게 하려고 이미지가 편집됐다는 의혹을 샀다. 조 후보 캠프 측은 “당이나 캠프가 만든 이미지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2월 민주당 울산 남구청장 예비후보 박모 씨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자신을 지역 발전을 이끌 인물로 선정했다는 가짜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경찰에 고발됐다. 영상 속 내용도, 이를 전하는 여성 아나운서의 얼굴과 목소리도 모두 가짜였다. 이 후보는 결국 후보에서 물러났다.

이런 장면은 더 이상 놀랄 만한 사건이 아니다. 6·3 지방선거를 지금 딥페이크가 통째로 삼키고 있다. 후보를 검증하던 자리에 짧고 자극적인 영상 조각들이 들어섰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갈수록 흐려진다.

먼저 가짜의 규모가 압도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를 요청한 딥페이크 게시물은 이미 9000건을 넘어섰다. 매일 수백 건씩 늘어 지난해 대선 집계치인 1만510건을 넘어서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딥페이크가 확산될수록 진짜와 가짜를 가를 기준선은 흐려진다. 후보의 실제 발언과 합성된 발언, 진짜 포스터와 캠프 명의를 도용한 가짜 포스터가 뒤섞인다. 유권자가 무엇을 보고 판단하든, 그 판단의 토대가 진짜라는 보장이 사라지는 것이다.

법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한 딥페이크 영상의 제작·편집·유포·게시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최대 5000만 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정작 그 칼을 어디에 댈지 모호하다는 데 있다. 캠프를 사칭한 가짜 포스터에는 어느 조항을 먼저 들이대야 하는지 판단할 판례와 기준이 아직 쌓이지 않았다. 악의적으로 후보를 깎아내린 합성물과 단순한 풍자나 패러디를 같은 잣대로 처벌해도 되는지도 모호하다. 딥페이크는 선거운동 목적일 때 처벌한다지만, 어디까지가 선거운동인지도 판단하기 쉽지 않다.

잣대가 흐릿한 사이 가짜는 매일 수백 건씩 번진다. 단속의 속도가 확산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모호한 경계부터 또렷하게 다듬어야 한다. 무엇이 금지되는 합성물인지, 어떤 행위에 어떤 조항이 적용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명문화하고, 플랫폼이 확산되기 전에 거를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한다. 가이드라인이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작동할 때라야 가짜가 비집고 들어올 틈도 좁아진다.

규칙을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 결국 가짜를 뒤쫓는 일이라면, 다른 한쪽에서는 진짜가 겨루는 무대를 다시 세워야 한다. 후보들이 토론장에 직접 마주 서서 공약과 논리를 검증받는 자리가 많아질수록, 짧고 그럴듯한 가짜가 파고들 자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부자 몸조심한다지만, 주요 격전지들에서 여론조사 1위권인 주요 후보가 마치 토론을 피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점이 이럴 때 더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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