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얼마 전 두 달 과정의 클래스 뒤풀이에 참석했다. 한 중장년 교육기관에서 열린 강좌였는데, 수강생 대부분은 나처럼 새로운 분야를 배우러 나온 퇴직자들이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차 한잔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대여섯 명이 근처 카페로 향했다.
카페 안은 주중 오후답게 한산했다. 한 사람이 앞장서서 테이블을 붙이자 다들 자연스럽게 모여 앉았다. 처음 분위기는 꽤나 밝았다. 근래 유행한다는 디저트 이야기가 오갔고, 음식이 나오자 이런저런 감상평도 더해졌다. 강의실 밖에서 얼굴 보는 자리가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그러다 주제가 요즘 살아가는 이야기 쪽으로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낸 이는 퇴직한 지 2년째라는 50대 후반의 김 선생님이었다. 그는 아직 대낮에 혼자 카페에 앉아 있는 일이 편치 않다고 했다. 괜스레 주변 눈치를 살피게 되고, 자신만 딴 세상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나만 한가해 보이는 거 있잖아요.” 그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선생님도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언젠가 오전 시간대에 지하철을 탔는데 본인 또래 남성들이 유난히 많아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무표정하게 휴대전화만 보는 모습이 자기와 닮아 있었다고 했다. “직장 다녔다면 한창 일할 시간이었을 텐데 말이죠.” 짧게 던진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담긴 심정은 충분히 전달됐다. 그 뒤로도 한동안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참 희한했다. 어떤 이야기든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누가 새로운 주제를 내놓으면 모두가 집중해서 듣다가도, 끝나면 곧바로 정적이 흘렀다. 공통 관심사인 수업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오갔던 터라 다시 꺼내기는 멋쩍었다. 그렇다고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어떤 이는 천천히 일어나 카페 안을 둘러보았고, 또 다른 이는 휴대전화 화면만 연신 바라보았다.
나도 왠지 입을 열기가 주저됐다. 무엇을 말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공연히 잘못 나섰다가 침묵만 깊어질까 봐 망설여졌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낯설더라도 용기를 내봤을 텐데, 그날따라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한 시간쯤 지났으려나. 누군가 약속 때문에 가야 한다고 하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일어섰다. 카페 문을 나서며 또 보자는 인사가 나왔지만 크게 화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덤덤하게 헤어졌다. 한두 명은 버스정류장 쪽으로, 서너 명은 지하철역 방향으로 각자 걸음을 재촉했다. 조금 전 한자리에 있던 일행이 맞나 싶을 만큼 흩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집에 오는 내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괜한 데 시간을 쓴 걸까?’ 솔직히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유용한 정보를 얻은 것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인맥이 쌓인 것도 아니었다. 대화는 줄곧 허공에 떠 다니는 느낌이었으며, 따져보면 편안했던 적보다 어색했던 순간이 더 많았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들은 이제까지 한두 차례가 아니었다.
퇴직하고 오랫동안 나는 새로운 모임에 나갈 때마다 은근히 기대를 품었다. 뜻 맞는 사람을 만나길 바랐고,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인연이 생기길 고대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만남은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나는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왔고, 그때마다 허무함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도 새로 모임이 잡히면 기대부터 앞세웠다.
왜 그랬을까. 오랜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 만나는 일에도 자연스레 목적을 두었던 것 같다. 협업 부서를 마주하면 팀의 성과를 생각했고, 거래처를 대하면서는 회사의 이익을 떠올렸다. 그러다 보니 아무런 결과를 남기지 않는 만남은 그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회사는 떠났지만, 사람을 만나는 기준만큼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점이 있다. 퇴직 이후의 만남은 뚜렷한 목적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이따금 웃는 것만으로도 적잖이 힘이 됐다. 퇴직한 나에게 필요한 건 인생을 바꿔줄 대단한 위인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함께 살아낼 편안한 친구였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리만큼 든든해졌다.
퇴직 후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많다. 긴 시간 동고동락했던 이들이 퇴직하고 나니 연락을 끊거나 피한다는 이유에서다. 나 역시 그러했지만, 지금은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퇴직 후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특별한 누군가를 기다리는 대신, 오늘 내 곁에 머무는 작은 인연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퇴직 후의 인간관계는 과거의 좋은 사람을 붙잡기보다, 현재 내 옆에 있는 이가 이미 좋은 사람임을 깨닫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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