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사망 이후 상속인 간 갈등으로 임대차 분쟁이 길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가족 간 갈등 상황을 표현한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세입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현관문은 몇 달째 열리지 않았다. 상속인들은 보증금 문제로 갈렸고, 임대인은 새 세입자를 받지 못한 채 공실과 관리비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최근 임차인 사망 이후 상속인들 사이 보증금·점유 갈등으로 임대차 정리가 장기간 표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들이 유품과 계약 문제를 비교적 빠르게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가족 간 연락이 끊겨 있거나 상속인들 사이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임대인과 상속인 모두 발이 묶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서울에서 다가구주택을 임대하던 A 씨는 계약 만기를 앞둔 임차인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상속인들 사이 입장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한 상속인은 기존 집에 계속 거주하겠다고 했고, 다른 상속인들은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누구에게 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지, 누구를 상대로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해야 하는지조차 불분명했다.
특히 상속포기나 한정승인 절차가 진행 중이면 최종 상속인이 누구인지 확정되지 않아 임대인이 협의 상대를 정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상속인 간 갈등이 길어지면서 집은 수개월째 새 임차인을 받지 못했다. 임대인은 공실 부담과 관리비를 떠안았고, 상속인들 사이 협의도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임차인이 사망했다고 해서 임대차계약이 자동으로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임대차계약상 권리·의무와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등은 상속인들에게 승계된다. 문제는 상속인들 사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다. 일부는 점유를 이어가고, 일부는 보증금 분배를 요구하면서 임대차 종료와 부동산 인도 문제가 동시에 꼬이게 된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대인이 특정 상속인 한 명에게만 보증금을 반환하거나 일부 상속인과만 협의해 문제를 정리하려 했다가 이후 다른 상속인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은 상속인 전원에게 나뉘어 승계되기 때문에 잘못 대응하면 같은 보증금을 두 번 지급해야 하는 이중변제 위험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 “공탁했는데 왜 못 나가나”…끝나지 않는 명도 분쟁
실무에서는 상속인 간 분쟁이 길어질 경우 변제공탁과 명도소송 절차가 함께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변제공탁은 채권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하거나 채권자 사이 다툼이 있는 경우 채무자가 법원에 돈을 맡김으로써 채무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받는 제도다.
다만 공탁만으로 점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거주 중인 사람이 계속 집을 점유하고 있다면 결국 명도소송 절차가 필요할 수 있다.
엄 변호사는 “임차인이 사망하면 임차권과 점유 상태 역시 상속인 전원에게 공동 승계되는 구조”라며 “일부 상속인만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가 강제집행 단계에서 다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무에서는 상속인 전원을 상대로 명도소송을 제기한 뒤 보증금 반환과 부동산 인도를 함께 정리하는 동시이행 판결을 받고, 이후 상속인들을 피공탁자로 한 변제공탁 절차를 진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1인 가구 증가와 가족 단절, 고독사 증가 등이 임대차 분쟁 양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연락이 끊긴 가족들이 갑작스럽게 상속 문제로 얽히거나 상속인 간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임대차 정리가 수개월 이상 지연되는 사례가 이전보다 늘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가족 내부에서 정리되던 문제가 이제는 법률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임대인과 상속인 모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상속과 임대차 절차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팩트필터 : 세입자 사망 뒤 임대인이 하면 안 되는 행동
· 특정 상속인 1명에게만 보증금 전액 반환 → 다른 상속인이 다시 반환을 요구할 경우 이중변제 위험 발생 가능
· 상속인 동의 없이 고인의 짐 임의 처분 → 재물손괴 등 형사 문제로 번질 가능성
· 연락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잠금장치 교체·강제 점유 회복 → 자력구제 금지 원칙 위반으로 불법행위 책임 가능성
· 상속관계 확인 없이 성급하게 합의 진행 → 상속포기·한정승인 여부에 따라 법적 책임 구조 달라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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