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女 간병하다 살해 고양 父子… 2주전까진 “끝까지 모실것” 말해
심리적 고통-부담 극도로 커진듯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 11% 그쳐… “지자체가 선제 발굴, 가입 늘려야”
ⓒ 게티이미지뱅크
경기 고양시에서 투병 중이던 80대 여성을 살해한 남편과 아들이 한강에 투신한 사건 이후 ‘간병 살인’ 문제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간병 살인은 가족이 환자를 오랜 기간 돌보다가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결국 환자를 살해하거나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것을 뜻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가족 간병과 관련된 각종 복지제도가 있지만 해당 가족은 아무런 지원을 못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 10년간 간병에 지쳐… “평소 힘들어해”
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숨진 80대 여성은 10년 전부터 지병을 앓고 있었다. 최근 건강이 나빠졌고, 거동도 어려워 병상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여성의 80대 남편과 50대 아들은 요양보호사나 간병인 등 일체의 외부 도움 없이 간병을 해왔다고 한다. 고양시 관계자는 “해당 가정의 경우 소득 기준 등 검토 결과 긴급돌봄 대상이나 차상위계층 등 해당 사항이 없었다. 복지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주변 지인들은 범행을 저지른 남편과 아들이 평소 간병 문제로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6일 기자가 만난 해당 아파트 경비원은 “사건이 일어나기 12일 전 아들이 수척한 표정으로 내게 ‘어머니가 지병으로 힘들다’고 했다”면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니 ‘어머님을 끝까지 모시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건 발생 약 2주 전까지도 어머니를 돌보겠다는 말을 한 것이다. 이후 범행까지 이르는 사이에 간병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과 부담이 극도로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간병 살인은 2007년부터 2023년까지 총 228건 발생했다. 2000년대에는 한 해 평균 5.6건에 불과했지만, 2020년대 들어선 한 해 평균 18.8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1월에는 50대 남성이 치매를 앓는 80대 아버지를 8년간 간병해 오다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령화 추세로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 사례가 많아지면서 간병인의 신체적·경제적 부담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이용자가 적다는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이는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65세 이상 노인’ 또는 ‘65세 미만이지만 치매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에게 신체활동 지원 등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다. 대상자가 되면 요양보호사나 요양병원 입원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용이 제한적이란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2023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 수는 110만 명으로, 우리나라 65세 이상 의료보장 노인 인구(986만 명)의 약 11% 수준에 그쳤다. 10명 중 9명은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셈이다.
● “지자체가 선제적 발굴해 가입률 늘려야”
전문가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자격 조건을 완화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하는 기관과 직원들의 기준이 일관되지 않은 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양보험 수급률은 지역별로 편차가 있다”며 “판정 기준을 최대한 일률적으로 만드는 통합 판정 체계를 안착시켜 억울하게 가입에 실패하는 사례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판정 기준을 개선해 제도 수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고양 사건의 경우에도 해당 가족은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못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처럼 당사자가 신청하는 방식에서 국가나 지자체가 직권으로 대상자를 일괄 파악해 지원하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양보험 등 복지제도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지자체 등에서 대상자를 선제적으로 발굴해 가입률 등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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