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으면 ‘억소리’… 출산 장려 나선 기업인들 통 큰 지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1일 03시 00분


[토요기획] 출산에 팔 걷은 기업인들
출생아 수 9년만에 ‘깜짝 반등’… 민간 기업의 출산 장려책 눈길
SK, 네 쌍둥이 가정에 육아비… LX는 출산 격려금 1억 원 전달
난임 시술비-육아휴직 확대 등… 출산 전후 과정 지원도 늘려
“중소기업까지 퍼져야 효과 클 것”

《‘출산 장려’ 팔걷은 기업들

지난해 국내 출생아 수가 2016년 이후 9년 만에 전년 대비 소폭 늘었다. 민간 기업들이 ‘신생아 늘리기’를 위해 노력하는 등 인식 전환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 기업들이 직원들의 자녀 출생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행정안전부 2024년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출생등록을 한 아동 수는 24만2334명이다. 2023년(23만5039명)에서 7295명(3.1%) 늘었다. 한국 출생아 수는 2015년 44만4098명으로 집계된 이후 2016년부터 줄곧 감소해 2023년 23만5039명으로 저점을 찍었다. 8년 동안 출생아 수가 줄곧 감소하다가 9년 만인 지난해 반등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출산 반등의 이유로 △에코붐 세대(1991∼96년생)의 결혼 증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엔데믹(풍토병화) 이후 늘어난 혼인 건수 등을 꼽고 있다. 여기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저출생 대책과 이를 보완하는 민간 기업의 출산장려책이 없었다면 ‘깜짝 반등’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출생 문제는 곧 기업 생태계의 위기로 볼 수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출생아 수 반등의 기세를 이어가려면 민간 기업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 기업 ‘회장님들’의 통 큰 출산 장려

송리원 SK온 PM(41)과 부인 차지혜 씨(39)는 2023년 3월 초산으로는 국내 최초로 자연분만을 통해 네 쌍둥이를 품에 안았다. 하지만 금쪽같은 네 쌍둥이를 건강하게 출산한 기쁨도 잠시, 남들은 하나도 힘겨워하는 아이를 넷이나 동시에 양육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육아도우미 1명을 고용하는 데 드는 비용만 약 300만 원으로 네 쌍둥이를 감당하려면 적어도 육아도우미가 두 명이 필요했다. 정부 지원금을 받더라도 평범한 직장인에게는 너무 큰 비용이 들었다.

이 소식을 듣자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직접 나섰다. 최 회장과 최 수석부회장은 송 PM 부부의 사연을 듣고서 각각 5개월분, 총 10개월분의 육아도우미 비용을 사재로 지원했다. 여기에 SK온이 회사 차원에서 2개월분의 비용을 추가 지원했다.

송 PM은 “네 쌍둥이를 양육하려면 경력 단절이 불가피한데 회사 배려로 경력을 유지하며 육아를 병행할 수 있었다”며 “회사가 의료비를 전액 지원해 주는 제도도 임신 기간 중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구본준 LX그룹 회장도 평소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기업이 주도하는 극복 방안을 고심해 왔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 정재룡 LX하우시스 청주구매팀 선임(37) 부부가 네 쌍둥이를 출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구 회장은 “가정의 큰 기쁨으로 자라날 네 쌍둥이의 건강을 기원한다”며 이들 부부에게 격려금 1억 원을 쾌척했다. LX하우시스도 정 선임 부부에게 5000만 원을 별도로 지급했다.

LX그룹은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의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구 회장의 의도가 정 선임 사례로 대내외에 알려진 만큼, 사내 지원 제도를 개선하고 가족 친화적 조직 문화를 확립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1세대 디벨로퍼’인 문주현 MDM그룹 회장은 저출생 문제를 지적하는 언론 보도를 접한 2019년부터 그룹 전반에 출산 장려 제도를 도입해 왔다. 문 회장표 출산 장려 정책의 모토는 ‘요람에서 대학까지’다. 직원의 자녀가 태어난 순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8년 동안 꾸준히 지원금을 지급한다. 세 자녀 가정에 100만 원, 두 자녀 가정에 50만 원, 한 자녀 가정에 20만 원을 매달 지급한다. 세 자녀 가정 기준 18년 동안 지급하는 지원금을 모두 합하면 2억1600만 원에 이른다.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면 4년간 등록금도 전액 지원한다.

MDM그룹은 “회사가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겠다는 문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제도”라고 설명했다.

● ‘현금’보다 ‘현실’ 난임시술·양육 지원책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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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불임 환자는 24만 명, 난임 환자는 13만 명에 달한다. 출산 축하금보다 고가의 불임·난임 치료 지원이 절실한 부부를 돕고, 어렵게 얻은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도록 육아 환경을 조성해 주는 제도를 갖춘 기업도 있다.

현대백화점은 정지선 회장의 가족 친화 경영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사내 복리후생 프로그램 ‘일가정 제도’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 기존에는 7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에게 100만 원씩 3회까지만 지원하던 난임 시술을 횟수와 비용 제한 없이 지원하기로 했다. 만 8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 직원만 받을 수 있었던 가사도우미 지원 혜택도 남성 직원들이 받을 수 있게 하고 횟수를 월 1회에서 2회로 늘렸다. 남성 직원이 임신한 배우자의 검진에 동행하면 유급휴가도 준다.

GS건설은 ‘임직원이 회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허윤홍 대표의 비전 선포에 따라 임신, 출산, 육아 전 주기에 걸친 지원 제도를 보강했다. 임직원의 난임 시술 비용을 1회 100만 원 한도로 총 5회까지 지원하고, 산후조리원 비용을 실비의 절반까지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육아휴직은 법정 기간 1년에 추가로 1년을 더해 최대 2년까지 쓸 수 있게 했다. 남성 직원이 사용하는 배우자 출산휴가도 기존 10일에서 20일로 늘렸다.

● 사내 ‘출산장려팀’까지 신설

윤상현 콜마홀딩스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콜마출산장려팀’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윤 부회장의 구상으로 만들어진 출산장려팀은 사내 출산 장려 정책을 보완하고 새로 개발하는 역할을 한다. ‘콜마 임산부의 날’에 예비 엄마 아빠를 초청해 최고경영진과 소통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거나, 직원들에게 사내 지원책을 주기적으로 알리며 사용을 권장하는 것도 출산장려팀의 역할이다.

콜마그룹은 출산장려팀 출범과 함께 직원들의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했다. 남녀 모두 출산휴가 종료 직후 육아휴직 1개월을 사용해야만 한다. 육아휴직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월급에서 정부 육아휴직 지원금을 뺀 차액도 전액 보전해 준다. 2009년부터 지급해 온 출산 장려금도 대폭 인상하고 6, 7세 자녀를 둔 직원에게는 매달 19만 원의 미취학아동 수당을 지급한다. 콜마홀딩스 관계자는 “콜마출산장려팀은 계속해서 참신한 출산 장려 정책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이 선도해 온 출산 장려 문화가 중견기업, 중소기업으로 확대되어야 궁극적으로 저출생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출산을 장려하는 기업 문화가 아직은 대기업 정규직에 편중돼 있다는 취지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학 교수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낙수 효과’가 저출생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할 것”이라며 “민간의 출산 장려책이 대기업 정규직의 전유물로 남는다면 인구 정책의 효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출산 장려#기업인#난임 시술#출산장려팀#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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