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간이 지켜야 하는 것들의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1일 03시 00분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로레인 대스턴 지음·홍성욱, 황정하 옮김/464쪽·2만3000원·까치

중세 유럽의 ‘사치 금지법’은 인간의 욕망을 규칙으로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관료들이 황금 레이스나 벨벳 장식 등의 착용을 금지하면 디자이너들은 이내 더욱 사치스러운 장식을 개발했다. 금지하는 속도가 유행이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새로운 규칙은 끊임없이 발표됐다. 1294년 프랑스의 ‘사치 금지 조례’도 부르주아 계층이 흑담비 모피를 입는 것을 금지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례는 오히려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상류층을 흉내 낼 수 있는지에 관한 안내서처럼 쓰였다.

독일 막스 플랑크 과학사 연구소의 명예소장인 미국의 저명 과학사학자가 ‘규칙(rule)’의 역사를 탐구한 책이다. 측정 및 계산의 도구로서의 규칙(알고리즘), 따라야 할 모델로서의 규칙(패러다임), 사회 통제와 관련된 법률(법) 등 세 가지로 나눠 규칙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규칙’의 ‘규(規)’ 자에 그림쇠(컴퍼스)라는 뜻이 있는 것처럼 규칙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 단어 ‘카논(kanon)’도 길이를 재는 도구인 ‘자’와 관계가 있다. 이 단어는 줄기가 꼿꼿해서 저울대나 막대 자로 쓰였던 식물 ‘물대’를 가리키는 셈족 언어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카논’에선 수학적 정확성, 복제를 위한 모델, 법령 등 세 가지 의미가 파생됐다고 한다. 카논에 해당하는 고대 라틴어 단어 ‘레굴라(regula)’는 “유지하고 지시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영어 단어 ‘ruler’도 ‘자’와 ‘통치자’라는 뜻을 모두 가지게 됐다.

저자는 규칙엔 예외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규칙의 의미와 의의를 고찰하면서 시대를 가로지르며 철학과 과학,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다룬다. 평범한 독자라면 꽤 어렵게 느낄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부제는 ‘규칙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2022년 미 프린스턴대 출판 당시 원제목은 ‘Rules: A Short History of What We Live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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