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우리를 슬프게 하는 기후 위기에 대하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1일 03시 00분


일조량-우울증, 무더위-조현병
날씨와 기후에 예민한 정신건강
정신과 의사, 다양한 사례 소개
◇기후 상처/김현수, 신샘이, 이용석 지음/276쪽·2만 원·클라우드나인


지난해 여름 전국 평균 기온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았다고 한다. 2022년 여름엔 서울 강남이 물에 잠기는 일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당시 물에 잠긴 승용차 위에 망연자실한 채 앉아있던 ‘서초동 현자’를 기억한다. 기후재난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들이다.

정신과 의사들이 기후변화가 우리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본격적으로 연구, 분석한 책이다. 기후변화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떻게 마음을 더 울적하게 만드는지를 다양한 사례와 연구를 통해 설명했다.

저자들은 기후와 날씨에 따라 우울증 발병률과 자살률이 변한다고 짚는다. 최근 3년간 국내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았던 달은 2021년 3월과 2022년 4월, 2023년 5월이었다. 하나같이 봄이다. 춥고 어두운 겨울도, 쓸쓸한 가을도, 무더운 여름도 아니다. 봄철 일조량의 변화가 호르몬에 영향을 미쳐 감정 기복을 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들은 새롭게 시작하는데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도 있다. 정신건강이 기후에 얼마나 예민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더위도 영향을 준다. 2010∼2019년 미국 보험사가 접수한 보험금 청구를 분석해 보니 더위가 극심한 날에 우울증과 불안, 조현병 등 정신질환으로 응급실에 방문한 사람이 늘었다. 미국과 멕시코 자료에 따르면 월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자살률이 각각 0.7%, 3.1% 상승했다. 2005∼2013년 미 캘리포니아주에선 기온이 5.6도 상승할 때 자해와 자살 시도로 인한 응급실 방문이 5.8% 늘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는 어떤 메커니즘으로 정신건강에 영향을 줄까. 기온 상승으로 열이 많이 오르면 신체의 혈류와 중추신경계가 영향을 받아 뇌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공격과 관련된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분비도 늘어난다. 짜증이 늘고 시간 감각도 마비된다. 신체 통제력을 잃고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며 인지 기능도 떨어진다. 기저 질환자와 노약자 등이 특히 취약하다.

안정적인 날씨 패턴이 무너지면 해마다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심리적 피로가 커진다. 최근엔 이로 인해 새로운 정신적 사회적 병리 현상도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2021년 기후재난에 관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고찰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재난 이후 질병과 경제적 문제가 발생하면서 아동 학대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놓인 남태평양 섬나라 주민들은 외상 ‘전’ 스트레스 반응도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지속적인 두려움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으로 발현된 것이다.

저자들은 “우리가 근무하는 진료실에도 날씨 탓을 하며 힘들다는 분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환자들은 ‘날씨 때문에 힘들다’, ‘날씨마저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정신질환이 있거나 고령인 환자들은 폭염이나 열대야, 가뭄, 폭우 등에 더 큰 고통을 호소한다고 한다. 기후위기는 겉으로만 위험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조용히 우리의 내면을 갉아먹는 ‘침묵의 암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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