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국민 거북이’ 개그우먼으로 1990년대 ‘개그 퀸’이던 김현영. 건강한 이가 전부 드러나는 호탕한 웃음과 못난이도 아니면서 못난이 캐릭터를 밝게 소화해낸 그 끼를 기억한다. 인기가 높았기에 여전히 잘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살아온 얘기를 들으니 짠하다 못해 슬프다. 억장이 무너지는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버틴 스스로가 용하단다. 누가 개그우먼 아니랄까 봐 힘든 지난날을 개그 소재 삼아 웃긴다. 더 마음 아프다.
김현영은 1990년 KBS 개그맨 공채 6기로 데뷔했다. 잘 나갔다. 신인으로 당대 최고 인기 개그 프로인 ‘유머 1번지’에 비중 있는 역할로 들어갔다.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 말려’ 코너에서 동궁(東宮)으로 나온 대스타 심형래에게 늘 구박 받는 ‘못생긴 무수리’로 얼굴을 알렸다. 바보인 동궁이 대놓고 무시하는데, 그것을 웃기게 받으며 철없이 좋아하는 개그 포인트를 기가 막히게 살렸다.
얼굴에 주근깨와 점을 잔뜩 찍고는 “동궁마마”를 애타게 부르며 웃으면 심형래가 그 얼굴을 밀쳐 낸다. 밀리지 않으려고 버틸 때 짓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에 폭소가 터진다. 알아주는 사람이 늘더니 이어 ‘추억의 책가방’ 코너로 ‘떡상(인기가 크게 오른다는 뜻)’했다. 이 코너 주인공 임하룡(역할 명 임해룡)의 푼수 여자친구로 나와 구박을 당하면서도 일편단심인 모습이 또 큰 웃음을 줬다.
방송가에서 차세대 개그우먼 선두 주자가 됐다. 어린이들까지 그의 말투와 표정을 따라하며 좋아했다. 당시 유행하던 할리우드 영화 제목을 딴 ‘닌자 거북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거북이 별명은 연예인 원조 격이다. 귀염성 다분한 얼굴인데도 이 별명을 감사히 받아들여 어디 가든 자신의 캐릭터로 밀었다. 광고도 많이 찍고 돈도 많이 벌었다. 다른 가수, 코미디언 스타들과 해외 동포 위문 공연도 다녔다. 남을 웃기면서 즐겁고 넉넉하게 사는 길이 열린 듯했다.
하지만 세상은 김현영을 편하게 놔두지 않았다. 30대 후반에 남자를 잘못 소개 받아 결혼한 것이 불행의 싹이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사기 결혼이나 다름없었다. 남편의 빚은 캐면 캘수록 불어났다. 이러 저리 빚을 대신 갚아 주다 감당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내 대접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다. 남편이 시켜 미국에 돈 벌러 갔다가 아이도 유산했다. 버틸 수 없었다. 남편 빚이 더 남아 있다는 얘기에 이혼을 결심했다. 그때서야 자신이 그 남자의 네 번째 부인인 것을 알았다. 큰 상처만 남았다.
편치 않은 결혼 생활 동안 마음을 의지하던 어머니마저 저 세상으로 떠났다. 3세 때 아버지를 여읜 김현영을 남부럽지 않게 키운 어머니였다. 큰 충격에 모든 활동을 접고 세상과 인연을 끊다시피했다. 대인기피증에 우울증까지 괴롭혔다. 이것도 다 팔자려니 하며 마음의 짐을 조금씩 비워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1990년 노래 ‘여식의 눈물’로 데뷔해 디스코와 트로트 메들리 가수로 이름을 알린 모정애(본명 이숙희)가 곁에 없었다면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사회에서 만난 언니 모정애는 김현영의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해줬다. 답답한 삶에 숨통을 터 줬다.
모정애는 한국 코미디계 대부 고(故) 배삼룡 선생이 “너는 꼭 엄마같다”며 지어준 예명이다. 운명처럼 김현영의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현영은 엄마같은 언니를 의지하며 버텼다. 점점 강해지고 있다. 모정애를 만나고 ‘잃어버린 김현영’을 되찾는 중이다. 여전히 무거운 짊을 지고 있지만….
● 계산 없이 동생을 품은 언니
김현영과 모정애, 두 사람의 인연은 15년 정도 됐다. 여러 행사에서 몇 번 눈인사만 하다가 장애인 봉사 행사에서 평생 짝이 됐다.
“현영이가 나를 몰랐어도 저는 현영이를 알고, 어떻게 지내 왔는지 전해 들은 게 있잖아요. 가엽기도, 측은하기도 했죠. 이유 없이 잘해 주고 싶더라고요. 현영이 얼굴을 보면 이상하게 큰아들 생각이 났어요. 특별한 인연이구나 했죠. 현영이는 내면도 참 예쁘다고 처음 볼 때 직감했어요. 자연스럽게 ‘내 사람’으로 품게 됐죠.”
모정애 장남은 6세 때 뇌수막염을 앓아 청력을 잃었다. 아들을 잘 돌보지 못한 탓이라는 죄책감이 가슴 한쪽에 있다. 김현영을 챙기면서 그런 마음의 짐을 조금씩 덜어냈다.
모정애는 다시 세상으로 나오기를 주저하던 김현영을 자기 행사에 데리고 다니며 무대 MC로 세웠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서 ‘어르신 봉사 콘서트’를 오래 했는데 김현영이 묵힌 끼를 발산하도록 했다.
“언니가 일거리 없는 나를 먹여 살렸어요. 출연료로 20만 원 정도 받았는데, 언니가 자기 지갑에서 돈을 빼서 ‘너는 이 정도는 받아야 돼’라면서 내 주머니에 넣어 줘요. 쉬운 일 아니거든요. 행사장에서 팬들이 주시는 돈을 언니는 현장에서 힘든 일 하는 분이나 지방에서 올라오는 가수에게 다 나눠 줘요. 결국 자기 지갑은 텅텅 비죠. 언니는 부자도 아니랍니다.”
무대에 설 때마다 언니 모정애는 ‘국민 거북이’가 밖으로 나왔다고 세상에 알렸다.
“언니는 무대에서 3, 4초 만에 좌중을 장악해요. 분위기를 자유자재로 쥐락펴락하죠. 웬만한 개그맨도 그렇게 하기 쉽지 않거든요. 언니가 MC인 저에게 ‘앉은 거냐, 선 거냐’라고 물을 때부터 웃음이 터지죠. 키 작은 제가 ‘앉은 거예요’라거나 ‘선 거예요’라고 받아치면 잘 호응해 줘요. ‘앉으나 서나 똑같은’ 제 존재감을 알려주는 거죠. 언니 덕에 제가 팬들과 다시 눈을 맞출 수 있게 됐어요.”
팬 입지가 탄탄한 모정애는 골수 팬들을 김현영과 공유한다. ‘모정애 팬은 곧 김현영 팬’이다. 모정애는 “현영이가 우리 팬들에게 ‘당연한 존재’가 됐다”며 “현영이가 ‘모정애 보조’라며 자존심 상해 하지 않고 나를 따라와 주니 고맙다”고 말한다.
“팬들과 자주 만나다 보면 스트레스가 생길 때도 있고, 할 말을 다 못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현영이가 저와 팬들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잘 잡아 줘요. 어려운 관계를 잘 풀어 주고 좋은 분위기로 만들어 주죠. 현영이가 제 보약입니다.”
● “현영아, 지금 스위스는 가지 말자”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생각한다. 모정애 언니가 없었다면 내가 이 세상 어디에서 언제까지 머물 수 있었을까. ‘언니가 내 옆에 없다’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숨이 막힌다. 김현영의 삶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힘들고 불편한 구석이 있다. ‘온전한 김현영’으로 아직 살 수 없는 처지다.
김현영은 마음이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있는 친언니 수발을 들며 산다. 외출도 활동도 편히 못한다. 두 사람 생계를 김현영이 다 짊어지고 있다. 자신을 위한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여유조차 없다. 그렇다고 속시원하게 남에게 고민을 털어놓지도 못한다.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
모정애 언니를 만나야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게 된다. ‘아무 말 대잔치’를 언니는 다 받아 준다. 말에 뼈가 있건 없건, 고장난 라디오처럼 반복되는 김현영의 애걸복걸 모두를 말이다.
모정애는 “내 삶은 없다. 희망도 없다”는 김현영에게 자존감을 자주 수혈해 준다. 김현영은 “어쩌다 정애 언니가 불러주면 그게 행복”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러면 언니는 동생을 더 보듬는다. 약한 마음을 더 먹지 않았으면 한다.
“현영아. 누군가를 챙겨 주는 것 자체가 행복인거야. 네가 친언니 손과 발이 돼서 같이 지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그만큼 아직 건강하다는 얘기야.”
지난해 11월은 김현영에게 혹독했다. 미래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심란한 나날이 계속됐다. 나아질 듯 하면 힘든 일이 찾아오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적잖이 지쳤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모정애 언니에게 함께 스위스에 가자고 했다. 스위스는 안락사와 조력에 의한 자살을 일부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죽음을 고민한 것이다. 듣는 언니로서는 오죽 힘들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싶다. 그래도 동생의 마음을 거듭 누그러뜨린다.
“현영아,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사는 건 다 처음이잖아. 처음 살아보니 힘들 때마다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어. 그런데 주변 사람도 저마다 괴로운 일을 겪잖아. 스위스에 가자는 얘기는 절대 하면 안 돼.”
모정애는 올해 작고 따뜻한 말로 김현영의 고단한 마음을, 힘든 하루를 더 살뜰하게 안아주기로 했다 .
● 무조건 함께… “동생의 꺾인 꿈, 다시 살려 주고파”
‘인생’
작사 김민우 작곡 김욱 노래 모정애
바람이냐 구름이냐 강물이드냐 돌고돌아 흘러흘러 나 여기 나 여기 왔오 어디로 갈거냐고 무엇을 할거냐고 나에게 묻지를 마라 인생은 바람처럼 인생은 구름처럼 그렇게 흘러가는걸
어디로 갈거냐고 무엇을 할 거냐고 나에게 묻지를 마라 인생은 바람처럼 인생은 구름처럼 그렇게 흘러가는걸
―동생 김현영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인가요.
“네.”
김현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이 가사에 다 담겼다고 한다. 사람 사는 것, 다 거기서 거기다. 이왕이면 더 희망적인 얘기를 하자. 스위스 가자는 말, 이제 그만하라고 강조한다. 뜻이 맞고 죽이 맞는 친구를 만난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김현영은 살맛까지 주고 있다는 언니 모정애다. 이런 자신의 마음을 동생이 알아 줬으면 한다. 스스로의 약한 마음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동생이 얻었으면 한다.
김현영은 진지하지만 역시 천성은 개그우먼인가 보다. 노래가 하고 싶다는 얘기로 분위기를 바꾼다. 노래로 하고 싶은 말을 하며 감정을 표출하는 언니가 부럽다고 한다. 자신의 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내 노래가 있으면 무대에 영원히 설 수 있잖아요. 악착같이 노래를 내야겠어요. 하하. 음치인 건 아는데 사기를 좀 쳐 보려고요. AR(보컬까지 녹음된 노래 반주) 틀어 놓고 노래하되 앵콜은 안 받는 가수 말이죠. 하하하.”
“현영아 취미로만 노래해. 노래는 해보되 가수라고만 하지 말아라. 얘는 노래를 해도 웃기니까요. 하하.”
굳이 노래를 하지 않더라도 모정애 언니가 잘 되면 자신에게 보람 있는 삶 아닌가, 김현영은 생각해 본다.
“언니의 유튜브 라이브 음악 채널(@Mojeongaelivetv2561, 현재는 ‘싱싱 TV’에서 라이브를 하고 있다)이 있어요. 몇 년 전에는 1시간 이상 모든 장르의 신청곡을 받아 다 불러 줬어요. 대한민국에서 신청곡을 전부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엄청난 실력이죠. 그런데 언니 가수 인생이 아직 확 뜨지 않았어요. 이 채널이 다시 살아 나서 더 떠야 해요. 제가 옆에서 바람만 잘 잡으면 뜰 것 같은데 말이죠. 하하.”
두 사람을 보면 ‘동행’ ‘함께’ 같은, 의리가 없으면 지속하지 못하는 가치가 생각난다. 김현영은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싫었고,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유서까지 썼다. 그런 동생의 손을 잡아 준 마음은 어땠을까.
“현영이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현영이를 만나면서 어떤 계산을 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거 같아요. ‘조금 도와줬으니 현영이도 나한테 도움을 주겠지’ 같은 ‘조건 만남’이 아니었어요. 지금처럼 앞으로도 무조건 ‘챙겨 주자’는 마음으로 대할 겁니다. 현영아, 지금 손잡고 있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한 최고의 순간’이라는 생각으로 살자. 잘 버티고 있어.”
“언니가 남자로 보일 때가 있어요. 머릿속에만 그리던 이상형 말이에요. 언니가 남자였다면 당장 사귀었을 거예요. 장군감이 따로 없어요.”
김현영 동생이 또 혼자서 아프고 고민하고 방황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믿기는 하지만 걱정이 없진 않다. 어떻게든 자신 옆에 놔둬야 속이 편할 것 같다. 동생은 스스로 불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언니 모정애하고 같이 있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다. 더 의지하고 신세지고 싶다.
“언니하고 다니면 항상 콩고물이 떨어질 것 같아요. ‘현영아, 와’라고 하면 정말 물질적이든, 무엇이든 떨어지거든요. 하하. 언니가 어디 가자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거예요. 언니를 만나러 온 오늘 이 시간마저 무척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너하고 있으면 콩고물이 크게 떠오르거든. 현영아, 평생 같이 주우러 다니자.”
모정애 언니 덕분에 김현영은 언젠가부터 ‘오늘 행복하면 잘 살았던 거예요’라는 말을 여기저기 하게 됐다. 여유가 조금 생겼다. 어떤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고 믿어 보려 한다. 재미와 웃음을 다시 푸짐하게 ‘송금’할 수 있는 김현영이 다시 보이는 것 같다. 모정애 언니는 김현영이 그런 인생으로 재진입하도록 계속 끌어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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