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생활 끝내고 고시원 갈 것”…소액 생계비 대출 첫날 1126건 접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7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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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로 한 시민이 들어서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에게 최대 100만원까지 당일 대출해주는 소액생계비(긴급생계비) 대출이 이날부터 시작된다. 2023.3.27/뉴스1
27일 오전 서울 중구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로 한 시민이 들어서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에게 최대 100만원까지 당일 대출해주는 소액생계비(긴급생계비) 대출이 이날부터 시작된다. 2023.3.27/뉴스1
“저에게는 1억 원 같은 50만 원이네요. 이 돈으로 불안한 찜질방 생활을 끝내고 마음 편하게 지낼 고시원을 구하려고 합니다.”

급전이 필요한 금융 취약계층에게 연체 여부와 무관하게 최대 100만 원을 빌려주는 소액 생계비 대출이 출시된 27일. 서울 중구의 중앙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은 김모 씨(46)는 2000만 원 가량의 금융권 채무 때문에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일용직 근로를 다니며 빚을 갚고 있지만 고시원 월세가 없어서 찜질방 생활을 이어가는 그는 이 상황을 벗어나보려고 센터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전국 46곳의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는 김 씨처럼 경제적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중앙센터에서 만난 조모 씨(49·여)는 “도봉구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학생들이 급감하면서 3000만 원 가량 빚을 지게 됐다”며 “생계비 대출로 공과금과 가스비를 충당할 계획”이라고 했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서 수강생이 돌아오고는 있지만 당장 부족한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긴급 대출을 신청하게 됐다는 것이다.

소액 생계비 대출은 신용평점이 하위 20% 이하이면서 연 소득 3500만 원 이하인 만 19세 이상 성인이면 소득이 없거나 금융사 연체 이력이 있더라도 받을 수 있다. 생계비 용도로 최대 100만 원 이내에서 대출이 가능한데 먼저 50만 원을 빌린 이후 이자를 6개월 이상 성실하게 납부하면 50만 원을 추가로 대출 받을 수 있다. 대출 금리는 연 15.9%로 성실 상환을 할 경우 9.4%까지 낮아진다. 금융 취약계층이 평균 금리가 연 414%로 추정되는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긴급 대출에 대한 수요는 예상보다 많았다. 최근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온라인과 전화를 통한 사전 예약 접수 첫날이었던 22일에는 신청자 폭주로 접속 지연 사태를 빚기도 했다. 21~24일 향후 4주 간의 대출 상담 예약을 받은 결과 예약 가능인원의 약 98%에 이르는 2만5000여 명이 상담을 신청했다.

이날 전국의 통합지원센터에서는 1194건의 상담이 진행돼 1126건의 대출 신청이 접수됐다. 평균 대출금액은 65만1000원으로 집계됐다.

통합지원센터에서는 사전 예약을 하지 못한 채로 대출을 신청하려는 방문자도 적지 않았다. 관악센터에서 만난 박모 씨(25)는 “담낭 수술 비용을 마련하려고 쓴 사채 때문에 매일 10만 원씩 이자가 붙으니 한 푼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스마트폰으로 하루 종일 신청을 시도하다가 신청을 못하고 직접 왔는데 오늘은 상담이 안 된다고 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소액 생계비 대출은 올해 총 1000억 원 한도로 공급된다. 1인당 100만 원씩 대출받을 경우 최대 10만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앞으로의 대출 속도와 상환율 등을 살펴보면서 대출 규모 확대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서울 양천 통합지원센터를 찾은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필요하다면 관계 기관과 추가 재원에 대해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긴급 소액 대출이 연체 여부를 따지지 않는 대출 방식 때문에 대출 상환을 장담하기 힘들고 일회성 지원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 관계자는 “도덕적 해이 우려는 인정하지만 현장 상담을 거쳐 꼭 필요한 돈을 대출하면서 각종 복지와 채무조정 제도는 물론 일자리까지 소개해 드리려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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