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전술핵 대화 두고 美내부 이견…핵사용 준비 vs 징후 아니다

  • 뉴시스
  • 입력 2022년 11월 3일 1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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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 수뇌부 사이에서 우크라이나에 전술핵무기 사용 시점과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논의했다는 첩보 보고서 해석을 두고 미국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사용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우려 또한 깊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결심했다는 구체적 징후는 아직 포착되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푸틴 대통령의 절망감이 절정에 달할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하고 있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복수의 미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러시아 군 수뇌부가 최근 우크라이나에 전술핵무기를 언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전술핵 관련 논의는 푸틴 대통령이 참여하지 않은 채 러시아 군 수뇌부끼리 이뤄졌으며, 당시는 푸틴 대통령이 국제사회에 핵무기 위협 강도를 한층 높이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는 푸틴 대통령의 핵위협이 단순한 ‘정치적 수사(rhetoric)’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NYT는 진단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보도와 관련한 어떤 구체적 언급도 하지 않겠다”면서도“우리는 처음부터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 위협에 깊이 우려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고,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과 같이 현대 핵보유국의 지도자가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의 잠재적 사용 가능성을 꾸준히 언급할 때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CNN은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이러한 첩보를 모아 분석한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 조 바이든 행정부에 공유했다고 보도했다. 보고서 초안에는 정확한 대화의 맥락이 결여돼 있어 이를 확인한 일부 정부 관계자들이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보고서를 검토한 일부 다른 관계자는 러시아 고위 장성끼리의 대화는 극히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반응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러시아군 손실과 그로 인한 좌절감이 절망감으로 바뀌어 전술핵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고 한다.

앞서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 4월 러시아 흑해함대 상징인 모스크바함 격침 국면에서 “푸틴 대통령의 현재 절망이 향후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 탈환에 성공했던 9월 이후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시사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9월21일 에비군 30만 명을 징집하는 부분 동원령 선포 후 “러시아의 영토 보전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당연히 우리 영토와 자국민 보호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이것은 허세가 아니다. 핵무기로 우리를 협박하려는 자들은 상황이 (핵무기 사용 방향성이) 그들에게 향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 9월30일 우크라이나 4개 점령지(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주) 병합 선언 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 투하 사례를 언급하며 “러시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영토를 지킬 것”이라며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거듭 시사한 바 있다.
이처럼 푸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가능성 우려가 커지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7일 민주당 상원 선거위원회 자금 모금 행사에서 “푸틴이 전술핵을 말할 때는 농담이 아니다”라면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위기”라고 우려했었다.

러시아는 또 크름대교 폭발 사건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의 ‘더티 밤(dirty boms)’ 준비를 주장하며 국제사회를 상대로 공론화에 집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의 더티 밤 주장은 ‘가짜 깃발 작전’으로 자신들의 전술핵무기 사용을 위한 명분 축적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별도 성명을 내고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 ▲대량파괴무기(WMD) 사용 징후 ▲재래식 공격으로 국가존립이 위협 받을 경우 자위권 차원에서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기존 핵 독트린을 재확인했다. 더티 밤은 러시아의 핵사용 조건에 부합한다.

NYT는 미국 관리들에게 전해진 러시아 군 수뇌부의 전술핵 관련 대화 내용은 워싱턴과 서방에 두려움을 심어 흔들어보겠다는 러시아의 의도가 담겨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사용 여부와는 무관하게 전술핵 사용 위기 조성만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꺼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군사지원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우크라이나의 요청에도 장거리 미사일, 전투기 제공은 보류하고 있다.
마이클 맥폴 전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 지도자가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실질적인 군사적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미 국방부는 절대로 우크라이나에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푸틴에 의해 단념됐다”고 진단했다.

전술핵 위협은 우크라이나를 휴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목적의 카드일 수 있다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이미 병합한 점령지 4곳을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는 조건으로의 휴전 협상을 위해 최대한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데릭 호지스 전 유럽주둔 미군사령관은 “어떤 핵무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현재 전쟁터에서의 이점은 전혀 없다. 핵무기는 사용하지 않을 때 가장 유용하다”면서 “러시아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가 협상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크렘린의 요구에 굴복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중이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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