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서해공무원, 北 발견 전 中어선 올라탔던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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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10월 14일 13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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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文 정부 ‘월북몰이’ 결론
“통일부·국방부 등 대응 無…컨트롤타워 작동 안했다”
“故 이대준 씨, 한자 적힌 구명조끼·붕대”…中어선 초기 구조 가능성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관련해 국방부, 해경 등 9개 기관을 조사한 감사원이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정부 기관들의 발표는 왜곡된 결론이었고 청와대 국가안보실 주도로 사실이 은폐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한 56일간의 감사 결과를 13일 공개하고 5개 기관에 소속된 20명에 대해 검찰 수사를 요청한다고 14일 밝혔다.

감사원이 공개한 조사 결과에는 피살 사건이 일어난 2021년 9월 22일 이후 관련 기간의 초동대응과 사건 발표 등 업무처리 과정이 상세히 담겼다. 감사원은 당시 문재인 정부 국가위기관리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봤다. 아울러 이 씨가 월북했다고 결론 내고 발표하는 등 이른바 ‘월북몰이’를 했다는 취지의 결론도 내놨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 씨는 2020년 9월 22일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는데 감사원은 당시 국가안보실이 관련 사실을 전달받고도 유관 부서인 통일부를 제외한 해경 등에만 상황을 전파했다. 심지어 대응 방향 결정 등을 위한 ‘최초 상황평가회의’도 실시하지 않았다. 국방부에서는 군사대비태세 강화나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 작전 검토도 없었다고 했다.

안보실은 청와대 내부보고망을 통해 대통령에게 상황보고서를 서면 보고했지만 상황이 종료되기 전인 오후 7시 30분에 안보실장 등 주요 간부들은 퇴근했다. 감사원은 이를 두고 ‘국가위기관리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통일부도 이 씨가 해상 부유물을 잡고 표류 중이며 구조활동 정황이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는 상황을 파악했음에도 송환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다가 국정원으로부터 추가 상황 파악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고 상황을 종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당시 담당 국장은 통일부 장관의 저녁 만찬 일정을 알고 관련 상황을 보고하지 않고 퇴근했다고 전했다.

사건 다음 날인 23일 안보실은 이 씨와 관련해 확인된 추가 첩보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하고 회의참석기관에 ‘보안을 유지하라’는 지침을 하달한 뒤 대통령에 보고할 안보보고서에는 이 씨의 피살·소각 사실을 제외했다.

감사원은 당시 정부가 월북을 단정할 수 없는 월북 의사 표명 첩보와 부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이 씨의 ‘자진 월북’을 속단했다고 봤다.

사건 초기 국방부와 국정원은 조류방향과 어선 조업 시기 등을 이유로 이 씨의 월북 가능성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국방부 장관을 통해 이 씨의 월북 의사 표명 첩보가 보고되자 안보실은 국방부에 '자진 월북' 내용을 기초로 종합분석 결과를 보고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안보실은 이 결과를 국방부가 그대로 언론에 발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방부는 ▲타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 착용 ▲CCTV 사각 지역에서 슬리퍼 발견 ▲발견된 당시 소형 부유물에 의지 ▲월북 의사를 표명 등 4가지 월북 판단 근거를 들어 종합분석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감사원은 이 중 하나도 명확히 확인된 것이 없다는 결과를 내놨다.

감사원은 해경 역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증거를 사용하거나 기존 증거를 은폐하고 실험 결과를 왜곡, 사건과 직접 관련 없는 사생활 공개 등으로 사실과 다른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고 봤다.

특히 감사원은 이 씨가 9월 22일 오후 3시 30분경 북한 해역에서 북한 군에 의해 처음 발견됐을 당시 이 씨의 팔에 실종 당시에 없던 붕대가 감겨 있었고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씨가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근무하던 중 소연평도 남방 2.2km 지점에서 실종된 시각은 전날은 21일 새벽 1시 58분이었다. 이 씨는 실종 38시간 만에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붕대를 감고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서해경비계선과 북한한계선(NLL) 사이 해역에서는 중국 어선뿐이었다. 이에 감사원은 이 씨가 중국 어선에서 초기 구조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또한 해경은 당시 이 씨가 승선했던 무궁화 10호와 민간어선에서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가 사용되지 않으며, 국내 인터넷 상거래 등을 통해 국내에서 유통·판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부는 ‘자진 월북’이라는 결론에 맞추기 위해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했다고 감사원은 보고 있다. 구조된 이 씨가 다시 바다로 들어간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감사원 판단대로 이 씨가 처음부터 구명조끼를 착용했었던 게 아니라 실종 도중 중국 어선에 구조돼 한자가 적힌 중국 구명조끼를 입게 됐다면, 그가 자진 월북을 계획했다는 유력한 근거가 무너진다.

감사원은 안보실, 국방부 등 5개 기관, 총 20명에 대해 직무유기,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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