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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송평인]김일과 이노키

입력 2022-10-04 03:00업데이트 2022-10-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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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TV 시절인 1970년대 시청자를 열광시켰던 양자 대결 경기로 1977년 홍수환이 파나마에서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4전5기의 승리를 거둔 프로권투 경기와 더불어 1975년 김일과 안토니오 이노키가 장충체육관에서 벌인 프로레슬링 경기를 꼽을 수 있다. 아이들은 100% 진짜인줄 알고 열광했고 어른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열광했다. 이노키는 김일과 싸워 대부분 무승부에 1승 9패를 기록했다. 둘의 경기는 한국에서 열리면 이노키가 악역(惡役)을, 일본에서 열리면 김일이 악역을 맡는 식으로 정한다는 말도 있어 승패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프로레슬링은 실력이면서 연기이기도 하다.

▷일본 프로레슬링은 한국계인 리키도잔(力道山)에서 시작한다. 리키도잔에게는 3명의 수제자가 있었으니 자이언트 바바, 김일, 안토니오 이노키다. 셋 다 거구였지만 바바의 덩치가 가장 커 자이언트란 별명이 붙었고 그 다음이 이노키, 김일 순이다. 이노키는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중학생 때 부모를 따라 브라질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안토니오란 링네임을 얻었다. 리키도잔은 바바를 후계자로 택했다. 이노키는 실망하고 나중에 바바와 결별했다. 1976년 프로레슬링을 대표해서 프로권투의 최고봉이었던 무하마드 알리와 이종(異種) 대결을 벌였던 사람은 이노키다. 물론 알리는 서서 무릎 밑으로는 주먹을 휘두르지 못하고 이노키는 누워 있기만 해서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경기 중 하나가 되고 말았지만….

▷턱의 이노키다. 강인해 보이는 턱을 하늘로 치켜들고 주먹을 번쩍 들어올려 ‘다아∼’라고 떠나갈 듯 소리치는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말재주도 쇼맨십도 좋아서 정계로 진출해 두 차례 참의원에 당선되는 등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이노키는 북한에도 서른 번 이상 방문했다. 그가 북한과의 교류에 힘썼던 것은 리키도잔의 영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리키도잔은 한국계지만 함경도 출신으로 친북 성향이었다. 북한에서도 리키도잔의 명성이 높았고 이노키는 그 덕을 봤다.

▷김일은 리키도잔 밑에서 연습생으로 구박을 많이 받던 이노키를 선배로서 자상하게 대해줬다고 한다. 정치인 이노키는 기본적으로 우익이지만 김일과의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한일(韓日) 역사 문제에는 신중한 편이었다. 김일이 말년에 앓아누운 이후로는 거의 매해 한 번씩 방한해 김일을 병문안했는데 2000년 방한했을 때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나눔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한일에서 프로레슬링의 열기는 식고 김일은 2006년, 이노키는 1일 세상을 떠났지만 두 사람이 남긴 경쟁과 우정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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