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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정연욱]佛 최고훈장 韓 현충원 거부

입력 2022-10-03 03:00업데이트 2022-10-1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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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2월 경기 양평 ‘지평리’ 전투는 6·25전쟁의 변곡점이었다. 중공군의 인해 전술에 계속 밀리던 유엔군이 거둔 첫 승리로 반격의 계기가 됐다. 유엔군은 미군과 프랑스 대대가 주축이었다. 이 프랑스 대대에는 100여 명의 한국인도 있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에 입대했으나 영어 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프랑스 대대로 차출된 것. 이들의 국적은 엄연히 대한민국이었다. 당시 참전용사 박동하(94), 박문준(91) 옹이 산증인이다.

▷지평리 승전보가 울린 지 71년이 지났지만 프랑스 정부는 두 노병을 잊지 않았다. 올 6월 이들에게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를 수여한 것. 이들은 지난해엔 프랑스 최고 무공훈장인 ‘군사 훈장’도 받았다. 프랑스에서 특별 예우를 받은 두 노병은 정작 고국에선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신세다. 사후에 국립현충원 안장이 거부된 것. 외국이 아닌 ‘국내’ 무공훈장 수여자만 현충원에 안장한다는 현행 국립묘지법 때문이다. 보다 못한 주한 프랑스대사까지 나서서 이들의 현충원 안장을 두 차례나 요청했지만 무산됐다고 한다.

▷지난해 6월 미국 조지아주에서 6·25전쟁과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우리 교민 100여 명이 참전용사 자격을 인정받았다. 미국에서 다른 나라 출신 군인을 참전용사인 ‘베테랑’으로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순탄치 않았다. 오직 미국 시민으로 참전한 경우에만 베테랑으로 인정한다는 관련법을 바꿔야 하는데 사실 불가능한 ‘희망사항’으로 비쳤다고 한다.

▷참전용사들의 헌신적 노력 덕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노구를 이끌고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주 의회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 빌 히천스 조지아주 하원의장은 “‘오늘 나와 함께 피를 흘린 사람은 영원한 나의 형제’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법 개정에 동참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보훈에 국경이나 국적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 최고 훈장을 받은 두 노병처럼 외국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우리 국민은 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추정치만 있을 뿐 규모를 파악할 전체 명단조차 없다. 이런 상태라면 언젠가 이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잊혀질 것이다. 역대 정권은 해외 참전 군인들을 만날 때마다 “보훈에 국경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 조항 운운하면서 정작 챙겨야 할 우리 참전용사들을 나 몰라라 한다면 낯부끄러운 일 아니겠는가. 관련법도 손봐야겠지만 당장 기억의 사각지대에 놓인 2만여 명의 명단 복원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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