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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뒷날개]경쟁하고 유혹하는 ‘식물의 왕국’도 있다

손민규 예스24 인문MD
입력 2022-10-01 03:00업데이트 2022-10-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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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위한 변론/맷 칸데이아스 지음·조은영 옮김/264쪽·1만6800원·타인의 사유
대형서점에는 책의 분야마다 담당자가 있다. 서점에서 일하는 내가 현재 맡은 분야는 인문, 사회정치, 역사, 종교, 자연과학이다. 자연과학은 올해 7월부터 추가로 맡았는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동물과 식물에 관한 책이 서로 다른 분야로 나뉜다는 사실이다. 동물에 관한 책은 인문으로, 식물에 대한 책은 자연과학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동물 해방’(연암서가),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서해문집)는 인문 서적이다. 반면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김영사), ‘미움받는 식물들’(윌북)은 자연과학 서적 매대에 진열되어 있다. 동물권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을 인간 공동체로 포함하려고 하고, 식물은 여전히 과학적 탐구 대상으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일까. 식물은 정적이고 수동적이며 평화롭고 아름다운 탐구 대상이라고 보는 것 같다.

이 책은 식물에 대한 이런 이미지에 반기를 든다. 저자는 식물이 아름답고 평화를 지향한다는 건 인간의 편견일 뿐이라고 말한다. 식물도 동물처럼 생존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식물은 화학 물질을 분비해 토양을 오염시켜 경쟁자를 죽이고, 암벌의 모습을 한 꽃으로 벌을 꼬드긴다. 파리지옥처럼 곤충을 잡아먹는 육식식물도 있다. 광합성을 하지 않고 숙주로부터 양분을 빨아먹는 기생식물도 많다. 경이로운 식물의 성생활, 이동성, 공격성을 증명하는 다채로운 예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식물의 공격적인 생존 본능에 초점을 맞춘 만큼 표지도 색다르다. 대개 식물 책은 외관이 아름다운데 이 책의 표지는 다소 기괴하다. 라플레시아의 섬뜩한 모습을 전면에 내세웠다. 라플레시아는 단일 꽃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지름이 1m, 무게가 10kg을 넘는다. ‘시체꽃’이라는 별명에서 보듯 이 꽃은 인간의 윤리적 기준으로 봤을 때 아름답지 못하다. 썩어가는 살 냄새를 풍기는 건 논외로 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를 갉아먹으며 살아가는 기생식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기생식물을 이해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생태계 전체로 보면 기생은 생물 다양성을 지켜준다. 기생식물이 숙주로 삼는 식물은 대개 번식력이 강하다. 이들을 그대로 놔두면 생태계 다양성이 깨지면서 무너진다. 기생식물이 숙주의 번식력을 어느 정도 억제함으로써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오히려 문제는 식물의 기생이 아니라, 인간의 공격성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수억 년 동안 생존을 이어온 식물에 닥친 대멸종 위기는 인간의 문명에서 비롯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인식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인류 공동체로 포함하는 건 어떨까. 앞으론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식물 책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손민규 예스24 인문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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