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한국어[벗드갈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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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곤 한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로 유창하게 해야 한국 생활에 지장이 없느냐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신은 어떤 위치에서 뭘 어떻게 하면서 생활하고 싶은지’를 역으로 물어본다.

필자는 2009년도에 한국에 처음 왔을 적에 공인 한국어능력시험(TOPIK) 점수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시험의 등급은 1급부터 6급까지 있는데 당시 5급에 해당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고급 수준으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수준이다. 한국에 있는 대학교 및 석·박사 과정에 지원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최소 한국어능력시험 3급 이상이니 한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꽤 있었다.

지금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게 된 친구들과는 달리 필자는 한국어를 이미 ‘아는’ 사람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언어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었다. 그러나 할 줄 안다고 믿었던 한국어가, 전공 수업을 듣는 첫날에 ‘외계어’처럼 들렸다. 그 외계어를 해석하고 친근해질 때까지 걸린 시간이 2년 정도다. 그 기간 동안 열심히 단어 공부를 한 끝에 전공 수업을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한국어는 매우 복잡한 언어이다. 같은 말도 그것이 나온 상황, 당시의 어조나 눈빛에 따라 엄청나게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언어이다. 물론 다른 나라 언어도 같은 면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어는 더 특출난 언어이지 않을까 싶다.

간단한 예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돈을 내다’라는 말의 경우 상황과 쓰임새에 따라 ‘결제하다, 계산하다, 납입하다, 납부하다’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많은 단어의 뜻은 모두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다’는 의미다. 또 다른 예는 ‘가까운 곳’이다. 해당 단어와 가장 가까운 단어는 ‘근방, 주변, 동네, 인근’ 등이다. 원어민이 아닌 경우 그 단어의 쓰임새를 제대로 알아야 표현의 부자연스러움을 피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을 정도의 표현도 여럿인데 그 가운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가 있다. 이 말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은 ‘아니다’라는 부정형을 보고 이 표현은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의미일 것이라고 잘못 추측할 수 있다. 독자 여러분도 우리나라 말이 어렵다고 생각될 때가 언제인지 의견을 나눠줬으면 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배울 만해요?’라고 물었을 경우 그들의 대답을 통해 현재 어떤 수준의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만약 ‘한국어는 배우기 쉬운 언어 같다’라고 답할 경우 한국어를 배운 지 정말 오래되지 않은 학습자일 것이다. 중급 수준으로 올라가면 슬슬 ‘한국어가 어렵지만 재미있는 언어’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한국어능력시험 6급 취득 수준 이상으로 한국어를 아는 사람들의 경우 ‘한국어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언어’라고 대답하기 일쑤다. 마지막 분류의 사람에게 한국어는 ‘썸’이라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아리송한 언어다.

그렇다면 한국어 초급 학습자들은 왜 이토록 어려운 한국어를 쉽다고들 할까. 가장 큰 원인은 케이팝과 K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이 작품들을 통해 한국어에 대한 친근감을 쌓았을 것이다. 그 안에 등장하는 ‘오빠, 사랑해, 좋아, 예쁘다, 싫어, 안녕’ 등의 단어가 매우 친숙해져 한국어를 잘 안다는 착각이 들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어딜 가도 한국어를 자신 있게 할 수 있겠다 싶은 순간이 찾아왔었다. 그러나 한국에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있다. 어쩌다 남편에게 몽골에 있는 가족, 친척 이야기를 꺼낼 때 호칭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여전히 곤란할 때가 있다. 결혼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단어를 배워야만 했다.

한국에서 사회적 위치와 환경이 바뀔 때마다 느끼게 된 것은 ‘나는 한국말을 할 줄 안다’라는 말을 아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도 한국어를 익히고 있는 학습자에 불과하다. 한국어는 정말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어려운 언어이다.

벗드갈 몽골 출신·서울시립대 행정학 석사
#한국어#어려운 언어#산 넘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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