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윤완준]“2022년 유럽이 1945년 日보다 위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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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1기만 폭발해도 수십만 사망
푸틴 핵위협, 끔찍한 시대 시작되나

윤완준 국제부장
윤완준 국제부장
미국의 대표적 핵 비확산 전문가 조지프 시린시온이 26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에 글을 썼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 핵 공격 위협을 한 뒤다.

시린시온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과시용 발사다. 흑해처럼 사람 없는 곳에 핵무기를 쏜다. 미국이 핵무기로 대응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시린시온은 푸틴이 이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서방에 충격을 주기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고위력 핵무기 사용 가능성도 거론했다. 50∼100kt의 핵무기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한다. 1kt은 TNT 1000t 폭발력이다. 수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 미국과 나토가 직접 대응에 나설 것이다. 러시아가 나토를 직접 핵 공격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전략폭격기에서 발사된 크루즈미사일로 중부유럽을 공격한다. 핵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저위력 핵무기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수도 있다. 단거리미사일 이스칸데르에 10kt 핵탄두를 탑재한다. 수백∼수천 명이 사상할 수 있다. 시린시온은 이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라고 했다.

러시아가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상황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CNN은 28일 나토군 화생방·핵무기 방어부대 지휘관 출신인 해미시 드 브레턴고든을 인터뷰했다. 러시아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전략핵무기는 언제든 발사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술핵무기는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미사일을 쏠 이동식 발사 차량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발사대가 수백 km를 이동해 단거리미사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위치에 오기 어렵다고 봤다.

그가 꼽은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핵발전소를 공격하는 것이다. 전술핵무기 공격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러시아 소행을 부인할 수 있다.

푸틴의 핵위협 이후 서방 언론과 전문가들은 여러 시나리오를 두고 논쟁 중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모두 푸틴의 핵 공격이 현실화될지 불안해하고 있다. 미소 간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60년 만에 처음이다. 1945년 이후 77년간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았다.

비현실적이던 핵전쟁 공포가 어느새 현실로 다가왔다.

분명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어떤 시나리오든 너무 많은 피해를 볼 것이다. 전술핵무기 사용으로 시작된 미국과 러시아 간 충돌이 9000만 명 사상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미국 프린스턴대의 시뮬레이션도 있다.

비정부기구(NGO) 연합체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푸틴의 핵위협에 21일 성명을 냈다. 2017년 노벨 평화상 수상 단체다.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특히 유럽 같은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재앙적이다. 폭발력 10∼100kt의 전술핵무기라 해도. 1945년 히로시마를 파괴한 원자폭탄의 폭발력이 15kt이었다. 14만 명이 희생됐다. 핵무기 1기만 폭발해도 수십만 민간인이 사망할 것이다.”

CNN은 27일 ICAN의 성명을 “2022년의 유럽이 1945년의 일본보다 핵 공격에 훨씬 위험한 지역이라는 내용”이라고 요약했다. 우리는 21세기 가장 끔찍한 시대가 시작하는 티핑포인트(급변점)에 와 있는지 모른다.

윤완준 국제부장 zeitung@donga.com
#2022년 유럽#1945년 일본#더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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