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살해범, 이달 3일도 피해자 근무지 조회… 경찰 “계획범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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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일 피해자 살던 곳 2차례 배회, 외모 닮은 다른 여성 미행하기도
징역 10년이상 보복살인 혐의 적용
살해범, 위치추적 교란 앱 설치… 현금인출기서 1700만원 인출 시도
警 “도주 준비”… 오늘 신상공개 심의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신당역 스토킹 살인’의 범인 전모 씨(31·구속)가 사건 발생 최소 11일 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 씨는 이달 3일 피해자인 전 동료 역무원 A 씨(28)의 근무지 정보를 확인했으며, 14일 범행 전 A 씨가 과거에 살았던 동네를 두 차례 찾아가 A 씨와 닮은 여성을 미행했다. 경찰은 전 씨의 혐의를 징역 10년형 이상에 처해지는 ‘보복살인’으로 변경했다. 19일에는 전 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 범인, 피해자 닮은 여성 미행도
18일 경찰에 따르면 전 씨가 범행을 미리 계획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전 씨는 범행 11일 전인 이달 3일 지하철 6호선 구산역 역무실에서 자신을 ‘불광역 직원’이라고 소개한 뒤 서울교통공사 내부망을 통해 A 씨 근무 일정을 확인했다. 또 경찰이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한 결과 전 씨는 14일 오후 2시 반 집을 나선 뒤 구산역 근처를 찾아가 2시간 이상 일대를 배회했다. A 씨는 구산역 인근에서 거주지를 옮긴 뒤였지만 전 씨는 이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전 씨가 당시 범행에 쓰인 흉기를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피해자의 예전 집 앞에서 기다리던 전 씨는 A 씨와 외모가 닮은 여성을 7분가량 미행하기도 했다. A 씨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 그는 오후 6시경 구산역 역무실에서 다시 A 씨의 근무 일정을 파악했다. 이어 다시 A 씨의 옛집 인근을 배회하다가 오후 7시경 일회용 승차권을 끊어 지하철을 타고 범행 장소인 2호선 신당역으로 이동했다.

전 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포렌식 한 결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를 조작하는 애플리케이션도 설치돼 있었다. 경찰은 범행과 관련된 행적을 교란하려는 목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씨는 앞선 14일 오후 1시 20분경 자신의 집 근처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예금 전액인 1700만 원을 인출하려고 했지만 인출 한도가 초과돼 실패했다. 전 씨는 ‘부모님께 드리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은 범행 뒤 도주를 준비하려던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 경찰, 보복살인 혐의 적용
전 씨는 범행 당일 오후 3시경 정신과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도 했다. 경찰 조사 등에서 “평소 우울증세가 있다. 범행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형을 감경받는 것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은 “범행 은폐 등을 미리 준비한 계획범죄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17일 전 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태블릿PC와 외장하드를 분석하고 있다.

경찰은 전 씨의 혐의를 형법상 살인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범죄(살인) 혐의로 변경했다. 전 씨는 “피해자가 고소한 사건에 대해 합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전 씨에게 내려질 수 있는 형량은 5년 이상의 징역(살인)에서 10년 이상의 징역으로 늘어난다. 경찰 관계자는 “19일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전 씨의 이름과 얼굴 공개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추모 이어져
신당역 출구 앞에도 추모공간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출구 앞 
추모공간에서 18일 시민들이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경찰은 19일 범인의 신상 공개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신당역 출구 앞에도 추모공간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스토킹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중구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출구 앞 추모공간에서 18일 시민들이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경찰은 19일 범인의 신상 공개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7, 18일 서울 중구 신당역에는 추모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신당역 10번 출구와 범행 현장인 화장실 앞에는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추모객들은 “스토킹처벌법 강화하라” “더 이상 슬픈 죽음이 없도록 연대하겠다” 등의 글을 종이에 써 붙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조민욱 씨(45)는 “두 딸을 가진 엄마로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아이들을 데리고 일부러 찾았다”며 눈물을 훔쳤다. 박모 씨(26)는 “피해자가 또래 여성이라 더 안타깝다”며 “스토킹 가해자를 사전에 피해자와 확실히 분리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성단체들은 17일 추모제를 열고 “여성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정부는 구조적 폭력임을 시인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신당역 스토킹 살인#신당역 살해범#계획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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