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과일, 살아남기 위해 더 달콤해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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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길들이기의 역사/베른트 브루너 지음·박경리 옮김/348쪽·1만8000원·브.레드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마라.”

구약성서 창세기는 인류의 심층 의식에 과수원이 이미 낙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려준다. 독일의 자연 전문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역사 속의 다양한 과수원과 그 형태를 설명하며 그 나무 사이사이 자리 잡은 사람들의 삶과 노동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한다.

식물의 다른 부분과 달리 과일은 ‘자발적으로 내주는’ 영양소다.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동물을 유혹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가축처럼 지금의 인간과 과일도 서로 영향을 끼쳐온 공진화(共進化)의 산물이다.

인간은 과일을 자신에게 더 매력적으로 변모시켰고 과일을 맺는 식물 편에서도 자손을 더 퍼뜨리기 위해 인간에게 영향을 끼쳤다. 과일을 먹는 영장류의 뇌는 그러지 않는 종보다 평균 25% 크다. 과일을 섭취하려면 언제 열매가 익고 어느 열매가 독이 없는지, 어떤 색깔이 제대로 익은 건지 판별할 수 있어야 했다. 과일을 먹게 된 인간은 조상인 유인원 대에 스스로 비타민C를 합성할 수 없게 됐다. 과수원을 만드는 것은 미래에나 결실을 볼 계획적 투자이므로 문명의 형성에 깊이 관여했다.

과일 역시 크기, 당도, 빛깔, 향 등 모든 면에서 인간을 만족시키기 위해 큰 변화를 겪었다. 말려야만 쓴맛이 없어져 먹을 만했던 옛 사과는 오늘날 다양하고 매력적인 사과 품종들로 변모했다. 로마제국은 각지의 과일을 불러오고 퍼뜨리는 허브(Hub)였다. 대(大) 플리니우스가 쓴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 박물지에는 1000여 종의 과일이 나오는데 그중 71종이 양조용 포도였다.

과일의 문화예술사도 풍성히 담아냈다. 화가 세잔은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말한 뒤 빼어난 그림들로 이를 실현했고 르누아르는 자기 사유지에서 자란 올리브기름을 맛만 보고 구분해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과일 길들이기의 역사#과일#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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