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되고 더 깊어진 감정… ‘나만의 백조’ 욕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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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출산 뒤 내달 ‘백조의 호수’ 무대 오르는 국립발레단 한나래
출산으로 몸은 다소 흐트러져도 아이로 인해 수없이 많은 감정
과거엔 테크닉-동작 중시했지만 풍부한 감정 담긴 춤 보여주면서
김리회 선배처럼 좋은 본보기로

몸의 온 근육을 사용하는 데다 신체의 선(線)을 중시하는 발레리나에게 출산은 곧 은퇴 선언으로 여겨졌다. 무용계에선 출산 후 골반이 벌어지거나 틀어지면서 발레리나의 점프력이 약해지고 다리를 길게 뻗는 동작이 어려워진다는 속설도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출산 후 주역으로 활약하는 ‘워킹맘 발레리나’가 늘고 있다.

한나래는 다음 달 공연하는 ‘백조의 호수’에 이어 11월엔 전막 발레 ‘지젤’에서 저승의 냉정한 여신 미르타 역으로 무대에 선다.
 그는 “극적인 성격의 미르타를 맡아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한나래는 다음 달 공연하는 ‘백조의 호수’에 이어 11월엔 전막 발레 ‘지젤’에서 저승의 냉정한 여신 미르타 역으로 무대에 선다. 그는 “극적인 성격의 미르타를 맡아 다양한 감정을 표출하는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020년 출산 후 4개월 만에 복귀한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한나래(32)가 대표적이다. 그가 다음 달 12∼15일 공연하는 전막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주인공 오데트와 오딜 역으로 14일 무대에 오른다. 2019년 출산 후 100일 만에 국립발레단에 복귀해 오데트와 오딜을 맡아 무대에 선 수석무용수 김리회(35)와 같은 행보다. ‘백조의 호수’에서는 백조 오데트와 흑조 오딜 역을 한 명의 발레리나가 맡는다. 한나래는 ‘백조의 호수’에서 발레리노 김기완(지크프리트 역), 구현모(로트바르트 역)와 호흡을 맞춘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15일 만난 그는 “결혼 전이었던 2015년에도 오데트와 오딜 역으로 무대에 섰던 적이 있다. 엄마가 된 후에도 이 역할로 무대에서 춤출 수 있어 무척 설레면서도 긴장된다. 기승전결을 갖춘 ‘저만의 백조’를 보여드리는 것이 목표다”라고 했다.

한나래는 지난해 12월 ‘호두까기 인형’의 마리 역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일부 공연 회차가 취소되면서 무대에 서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무대가 그에겐 더욱 뜻깊다.

“당시 제 공연 회차만 취소돼 너무 속상했어요. 출산 후에는 무대에 빨리 서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낳고 2주 후부턴 몸을 열심히 움직였거든요. 집에서도 토슈즈를 신고 기본 발레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발레를 한 그는 임신 및 출산 기간에 처음으로 1년 남짓 발레를 쉬었다. 가장 긴 휴식기였다. 하지만 발레를 놓을 수 없었다. 누워 있는 아이 옆에서 플리에(무릎을 구부리는 동작)와 탕뒤(발끝을 오므린 채 바닥을 미는 동작)를 수없이 반복했다.

“평생 몸을 써왔기에 출산 후 달라진 몸 상태를 바로 느낄 수 있었어요. 갈비뼈 위치는 틀어졌고 골반 관절은 늘어났죠. 근육도 원체 가는 편이어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운동이란 운동은 다 해본 것 같아요.”

발레복 튀튀를 입고 아들을 들어올린 한나래. ⓒyoon6photo
발레복 튀튀를 입고 아들을 들어올린 한나래. ⓒyoon6photo
‘엄마 발레리나’가 되면서 몸은 다소 흐트러졌을지 몰라도 감정의 폭은 깊어졌다. 아이의 존재는 출산 전 느끼지 못했던 많은 감정을 알게 해줬다. 아이가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불안과 고통을, 천천히 말을 배워 가는 아이를 볼 때면 과거엔 느끼지 못했던 벅차오르는 기쁨을 경험했다.

“엄마가 된 후에 제가 느끼는 감정이 다양하고 커졌어요. 예전엔 완벽한 테크닉과 동작으로 작품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면 이젠 풍부한 감정을 담은 저만의 춤을 보여드리는 게 중요해요.”

서울예고, 이화여대에서 무용을 전공한 그가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건 2012년. 어느덧 입단 10년 차 ‘선배 발레리나’의 대열에 들어섰다. 무대에 서지 못했던 임신 기간엔 국민대 대학원에 진학해 무용 이론을 공부했고, 7월엔 국립발레단 안무가 양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리즈’에 참여해 발레 안무가로서 첫발을 뗐다.

“발레와 안무, 공부까지….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육아와 병행하는 요즘엔 1분 1초가 소중해요. 김리회 언니가 제게 좋은 본보기가 돼 줬던 것처럼 저도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어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000∼10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백조의 호수#국립발레단#한나래#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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