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으로 전락 막는 사회안전망 필요하다[동아시론/구인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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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복지 사각지대’, 추석 어찌 보냈을지
기준 엄격해 서민·중산층 지원 배제가 문제
경제위기 시대, 폭넓은 안전망 마련해야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세상 살기 너무 힘듭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수원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아픈 구석을 드러냈다. 10년 가까이 위기가구 발굴 정책이 실시됐지만 복지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점이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런 소외된 가구들이 지난 추석 명절은 또 어떻게 보냈을지 걱정이 앞선다.

수원 세 모녀 사건과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사건 이후 대책을 둘러싼 논의에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복지제도를 충분히 갖추었지만, 위기가구를 찾아내 제도와 연결하지 못한 점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복지 사각지대’라는 용어도 오해를 일으키는 데 일조한다. 본래 복지 사각지대는 제도의 지원을 받을 자격을 갖추었으나 정작 지원을 신청하지 않아 발생하는 ‘비수급’ 사각지대를 가리킨다. 전문가들은 이런 비수급의 이유로 수혜자에 대해 낙인을 찍는 복지행정 탓을 하기도 하고, 정부가 복지제도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복지 사각지대 실상은 이와 다르다. 선정 기준이 엄격해서 생계 위기를 겪는 이들마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적 배제’가 사각지대의 주된 원인이다. 악명 높던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고 있지만, 제도적 장벽이 아직도 많다. 취약층을 찾더라도 제공할 복지 혜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수원 세 모녀 중 모친은 암 투병 중이었고 두 딸은 희귀난치병으로 고통을 받았다니 기존 복지제도들을 통해 지원받을 만한 것들이 없지 않았다. 긴급복지나 기초보장제도를 통해 생계비,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재난적 의료비 지원 제도도 있다. 그런데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순간에도 세 모녀는 복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우리의 복지 안전망은 그다지 의지할 만한 제도로 생각되지 않았나 보다. 안타깝게도 우리 복지제도는 많은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이처럼 거리가 먼 존재로 남아있다. 사실 여러 차례의 위기 순간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들 지원을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시민들이 불운과 실패를 거듭하며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취약 상태에 이르게 된 이후에만 지원 자격을 인정하곤 하기 때문이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은 중산층이 위기가구로 내려앉는 경로를 잘 보여준다. 가장이 운영하던 공장의 부도와 채무의 덫, 경제활동을 하던 아들의 사망, 세 모녀의 질병으로 인한 가재 소진 등 감당하기 힘든 불행을 겹쳐서 겪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의 허점도 드러났다. 생업에서 실패를 겪은 이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제도가 없었고, 유일한 수입원인 아들이 사망하는 위기에 지원도 없었으며, 병원비 내느라 월세도 내지 못할 지경까지 의료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 많은 시간 모든 불행을 맨몸으로 감당해온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사회의 지원에 희망을 걸 이유가 있었을까?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대책은 위기가구 발굴 정책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단전, 단수 등 빅데이터 정보로 수십만의 위기가구를 발굴하면 일선 공무원들이 일일이 찾아가서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그 성과에 대해선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발굴된 위기가구 중 실제 지원을 받는 사례가 적고, 지원을 받더라도 미미한 수준의 일회성 지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금 정부가 마련 중인 수원 세 모녀 사건 대책도 위기가구 발굴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위기가구에 대한 수집 정보의 수를 늘리고 경찰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실효성을 의심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정부가 근원적인 처방을 찾으려면 그간 위기가구 발굴 정책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정보를 공개하고 재평가를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더 나아가 복지 패러다임의 근본적 검토도 필요하다. 그간 우리의 복지행정은 엄격한 선정 기준으로 취약층을 선별하는 일에 치중하였다. 취약층을 위한 복지가 취약층으로 전락해야만 지원하는 복지가 되었고 서민, 중산층을 배제하는 복지로 되었다.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보여준 우리 복지의 자화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이제 막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새로운 경제적 불안정의 시대가 오고 있다. 디지털경제로 전환되면서 영세 소상공인과 저소득 근로자들이 사업 실패와 실업 등 구조조정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가급등과 경기침체가 생계를 위협한다. 경제적 불안정 위험에 처한 서민, 중산층을 포괄하는 폭넓은 안전망을 구축하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수원 세 모녀 사건#취약계층#사회 안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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