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진마스크 쓰고 삽질, 30분만에 숨이 턱… “피해복구 끝이 안보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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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침수피해 시장 자원봉사 해보니

침수된 상가 벽체 부수고 폐기물 운반… “일손 턱없이 부족” 12일 오후 전국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시장에서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기자를 포함한 봉사자들은 침수된 상가 사이 벽체를 
부수고 나르는 일을 맡았다. 포항=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침수된 상가 벽체 부수고 폐기물 운반… “일손 턱없이 부족” 12일 오후 전국 각지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시장에서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기자를 포함한 봉사자들은 침수된 상가 사이 벽체를 부수고 나르는 일을 맡았다. 포항=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오시지만 아직 일손이 부족합니다.”

12일 낮 12시경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마련된 통합자원봉사지원단(지원단) 사무소. 사무소에 앉아있던 담당자는 “추석 연휴에도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와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지만 피해 규모가 워낙 커 복구 수요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1호 태풍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포항을 도우러 온 봉사자들은 일단 이곳으로 모인 뒤 현장에 투입된다. 매일 1000여 명이 포항 시내 곳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음에도 아직 남은 일이 많다는 말에 동아일보 기자도 펜과 수첩을 내려놓고 한나절 동안 팔을 걷어붙였다.
○ 끝 안 보이는 복구 현장
현장에서 간단한 신상정보를 작성하고 개인 봉사자로 등록한 기자는 사무소에서 5분 거리인 오천시장에 투입됐다. 오천시장은 태풍으로 상가 110여 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한 상인은 “인근 하천이 범람하면서 어른 목 높이까지 흙탕물이 차올랐다”고 했다.

지원단 관계자는 기자에게 작업용 장갑과 방진 마스크를 건넸다. 이어 “상가 사이에 설치된 패널이 완전히 침수돼 철거해야 한다. 석고 재질인데 철거할 때 먼지가 심하게 발생되니 방진마스크를 꼭 쓰라”고 했다.

상가 내부로 들어가자 일부 봉사자가 망치로 벽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봉사자들은 삽과 빗자루를 이용해 부서진 벽체를 포대에 담았다. 기자도 삽을 들고 폐기물을 퍼 날랐다. 이날 포항 기온은 영상 22∼24도로 선선했지만 삽질을 여러 차례 반복하자 금세 땀이 맺혔다. 15m²가량인 상가 내부는 곧 먼지로 가득해졌다. 방진마스크 덕에 숨은 겨우 쉬었지만 눈이 따가워졌다.

30분이 지나자 얼굴에서 흐른 땀이 방진필터를 적셔 호흡이 힘들어졌다. 동료 봉사자가 “잠시 쉬자”고 말해 상점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아직 복구 전인 상가 점포 수십 곳이 눈에 들어왔다. 넋이 나간 듯 자신의 가게를 바라보는 점주들을 보니 오래 쉴 수 없어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일을 마칠 무렵이 되자 폐기물과 흙탕물이 반복적으로 몸에 닿은 탓인지 팔에서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 “고맙다며 내민 식혜 한 잔에 피로 잊어”
생면부지의 봉사자들은 휴식을 취할 때마다 피로해소제를 나누고, 서로 어깨를 주무르며 힘을 냈다.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을 함께 해서인지 금세 친구처럼 정이 들었다. 시장 상인들도 추석 연휴를 포기하고 찾아온 봉사자들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기자와 같이 상가에서 일하던 박선호 씨(22)는 경북 안동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침수 피해를 입은 분식집 주인이 고맙다며 식혜를 줬는데, 가전제품 중 유일하게 멀쩡한 냉장고에서 꺼냈다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박창훈 씨(53)는 부산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복구 현장을 찾았다. 박 씨는 “TV를 통해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 나니 도저히 명절에 웃고 떠들 수 없어 도우러 왔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일을 하는 며느리 장혜미 씨(31·여)는 “안 그래도 돕고 싶었는데 시아버지께서 같이 가자고 해 두말하지 않고 따라왔다. 일은 힘들지만 어느 때보다 마음이 풍성한 추석”이라며 웃었다.

12일 경북도에 따르면 포항 162가구 214명, 경주 20가구 25명 등 총 183가구가 여전히 마을 경로당 등에 머물고 있다. 12일 오전 7시 기준으로 태풍이 지나간 후 피해 복구를 위해 경북 지역에 투입된 인력은 공무원과 군인, 자원봉사자를 합쳐 3만5420명에 이르지만 피해 시설 8016곳 중 응급 복구가 완료된 곳(3933곳)은 49.1%에 그친다. 지원단 관계자는 “아직 복구 작업이 많이 남은 만큼 자원봉사를 원하는 이들은 포항시자원봉사센터(054-248-8742)로 문의해 달라”고 했다.


포항=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포항#침수피해#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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