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진우]中 사드 3불 억지 여지 준 文정부 ‘조급 외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진우 정치부 차장
신진우 정치부 차장
2017년 10월의 어느 날. 사석에서 만난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는 “중국과는 이런 식으로 정리하면 안 된다. (중국이 발목을 잡으면) 두고두고 우리 발목이 아플 것”이라고 했다. 며칠 뒤 그달의 마지막 날, 한국과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합의문을 발표했다. 얼어붙은 한중 관계가 15개월 만에 정상화 궤도에 올랐다며 당시 문재인 청와대는 자평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드 문제가 이번 합의로 봉인됐다고 보면 된다”고 반색했다.

한숨을 푹푹 내쉰 ‘그’는 바로 이 사드 합의에 깊숙이 관여했던 당국자였다. 그는 협의 과정에서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등 ‘3불(不)’ 여지를 남긴 것을 특히 아쉬워했다. 중국은 협의 내내 3불을 ‘합의’라고 부득부득 우겼는데 우리만 ‘입장 표명’이란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봉합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단 거였다. 중국으로부터 사드 보복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지 못한 것도 찜찜하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의 사드 압박은 청와대 관계자의 호언장담이 무색하게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 시작됐다. 시진핑 주석은 문 대통령을 만나 사드를 콕 집어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사드 합의 불과 11일 뒤였다. 이후에도 중국의 사드 맹폭은 이어졌고, 3불은 그때마다 포문을 여는 명분이 됐다. 우리 정권이 바뀌니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 또 사드 3불을 들먹거리고 있다. 최근엔 배치된 사드 운용을 제한하는 ‘1한(限)’까지 끄집어냈다.

올해 수교 30주년인 한중 관계에 갈등의 골을 후벼 파는 사드 논란에 대한 1차 책임은 당연히 중국에 있다. 사드 운용 의도를 왜곡하고 2017년 합의문에 없는 내용까지 요구하며 압박하는 자체가 내정 간섭이다.

다만 중국에 이런 여지를 남긴 문재인 정부의 ‘조급 외교’는 분명 곱씹어봐야 한다. 당시 사드 협의 과정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모르지만 청와대가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건 정황 상 분명해 보인다. 당시 협상 과정을 잘 아는 다른 당국자는 “그때 청와대가 한중 정상회담 성사에 애가 탔다. 이상하리만큼 중국과 마주앉으면 참을성이 없었다”고 떠올렸다. 인내심과 수싸움이 핵심인 외교 협상장에서 상대에 조급함을 노출해 패를 까고 판에 뛰어들었단 얘기다. 외교가에선 당시 조금만 긴 호흡으로 중국을 상대했다면 오히려 중국이 초조해했을 판세였다는 게 중론이다.

임기 초 한미 정상회담으로 첫발을 뗀 윤석열 외교는 이제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본보 인터뷰에서 “한미 관계는 강화, 한중 관계는 재정립, 한일 관계는 회복 중”이라고 자평했다. 뒤집어 말하면 어느 관계 하나 아직 내세우기 애매한 단계란 의미기도 하다.

국정수행 지지율은 신통치 않고 여권은 내홍을 거듭하는 지금, 윤 대통령은 답답한 마음에 외교에서라도 ‘큰 거’ 한 방을 날리고픈 유혹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연애보다 더 ‘밀고 당기기’가 중요한 게 외교다. 눈앞의 과실에만 정신이 팔리면 제2의 사드 3불에 다른 한쪽 발목마저 붙잡힌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
#중국 사드 3불#억지 여지#문재인 정부#조급 외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