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수용]예산-세수 ‘동시 펑크’ 날 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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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빚 이자지출 예산안에 적게 반영
세수전망은 장밋빛… 건전재정 가능한가

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정부가 최근 639조 원짜리 대규모 내년 예산안을 내놓으면서 긴축재정이라고 강조한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더 이해가 힘든 건 지출 구조조정으로 24조 원 규모의 여유 재원을 마련한 점이다. 나라 살림에서 불필요한 사업비를 깎는 일은 올해만이 아니라 매년 하는 연례행사다. 지난 10년간 같은 방식으로 아낀 돈만 50조 원이 넘는다. 쥐어짜고 짠 수건에서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또 짜냈다는 건가.

이건 정부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그만큼 계속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인공지능(AI) 분야가 미래산업으로 떠오르자 정부는 AI를 학습시키기 위한 데이터 세트 구축에 ‘올인’했다. 사업비가 2020년 390억 원에서 올해 5800억 원으로 뛰었다. 돈을 쏟아붓고 보니 정작 데이터를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불량도 많았다. 뒤돌아보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지출이 넘쳐나지만 유행에 꽂혀 있을 때 정부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그나마 개별 사업에서 생긴 문제의 파장은 그 분야에만 머문다. 전체 경제로 충격이 퍼지진 않는다. 하지만 나랏빚과 관련된 지출은 잘못 추정하면 국가 신용에 영향을 준다. 현재 우리의 국가채무는 1000조 원이 넘는다. 이에 따른 이자 지급액도 천문학적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국채 이자 상환 시 적용하는 금리를 연 4%로 잡고 총 24조8000억 원을 이자 지급용 예산으로 책정했다. 적용 금리가 높으면 갚아야 할 이자가 많아지고 금리가 낮으면 이자는 줄어드는 구조다.

문제는 금리 상승기인데도 내년 예상금리를 ‘4%’로 낮게 잡은 점이다. 이달 초 기준 국고채 유통금리는 3.8%다. 이자 상환 시 적용되는 금리는 여기에다 1%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더해서 정한다. 이자 상환금리가 지금도 이미 4%대 후반이라는 얘기다. 내년 초에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데도 정부는 내년 국채이자 상환 예상금리를 지금보다 낮췄다. 건전재정을 부각하려 금리를 무리하게 내린 것이다. “내년에는 아무래도 해외 쪽 사정이 좋아져 금리가 다소 내려가지 않을까요?”(정부 관계자) 희망 섞인 추정으로 중요 지출 예산을 짠 셈이다. 과거 여야는 예산안 심사 때 국채이자 상환 예산을 삭감한 뒤 그 돈을 지역구 예산에 반영하곤 했다. 올해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가뜩이나 쪼그라든 이자상환용 예산이 부족해져 예비비를 끌어다 써야 할 수 있다.

내년 국세 수입이 올해 본예산 대비 17%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 전망에도 물음표가 붙는다. 지금은 반도체 경기가 하락하고 부동산 시장에 냉기가 도는 상황이다. 낙관적 세수 전망의 근거는 물가 상승에 따른 부가세 증가, 임금 인상에 따른 근로소득세 증가 정도다. 정부가 성장률, 세수진도율, 임금상승률을 종합해 분석한 뒤 정작 전망할 때는 감(感)에 의존한다고 한 전직 관료의 말이 떠오른다. 한 당국자는 “최상위 대기업이 나라 곳간을 채워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 막연한 믿음에서 장밋빛 세수 전망이 나온 것인가.

예산안 곳곳에 숨어 있는 어림짐작 수준의 전망 때문에 예산과 세수에서 동시에 펑크가 날 수 있다. 그런데도 야당은 “참 비정한 예산안”, 여당은 “다정한 예산안”이라며 소득 없는 공방만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여야는 예산안 심사 마감일에 몰려서야 지역구 사업 챙기기에 혈안이 됐고 기재부는 정치적 분배 과정을 도우며 공생했다. 이 관계에서 건전재정을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예산#세수#나라빚#건전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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