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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러시아 귀족의 얼굴 바꾸고 美 독립혁명 촉발한 그것[책의 향기]

입력 2022-08-20 03:00업데이트 2022-08-2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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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의 흑역사/마이클 킨, 조엘 슬렘로드 지음·홍석윤 옮김/568쪽·2만2000원·세종서적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여성참정권운동은 “투표권 없이 세금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세종서적 제공
17세기 후반 러시아에는 ‘수염세’라는 게 있었다. 표트르 황제(1672∼1725)는 러시아의 이미지를 말끔하게 정돈한다는 명분 아래 전국 귀족들에게 ‘수염 면도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무용지물. 귀족들은 반드시 수염을 지키겠다며 반발했다. 콧대 높은 귀족을 꺾을 묘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황제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수염을 기르는 귀족에게 해마다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역시 결과는 세금의 승리였다. 귀족들은 목숨보다 귀하다던 수염을 깎기 시작했다.

수염에 세금을 매긴다는 발상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지탱하는 핵심 원리는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국제통화기금(IMF) 공공재정국 부국장과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들이 볼 때 온실가스 배출원에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세’도 수염세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쉽게 말해 “탄소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와 “수염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부과 원칙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특정 행위를 저지하는 데 세금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류 최초의 상형문자를 만든 수메르 문명은 기원전 2500년에 만든 점토판에 세금 납부 영수증을 기록했다. 세종서적 제공
제목처럼 세금을 다룬 책이지만 어지러운 계산과 수치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기원전 2500년 수메르 점토판에 새겨진 세금 납부 영수증부터 오늘날까지 과세제도의 변천사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저자들은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들이 세금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고 설명한다. 미 독립전쟁을 촉발시킨 ‘보스턴 차 사건’이 세금과 직결됐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 그런데 이는 과도한 세금을 물려서가 아니라 오히려 세금을 철폐해 문제가 불거졌다. 18세기 영국은 식민지를 넓히며 막대한 빚을 짊어졌는데, 동인도회사가 미 대륙에 수출하는 차 판매량이 늘어야 이를 상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밀수업이 성행했던 미국에선 세금을 물린 동인도회사 차는 경쟁력이 떨어졌다. 이에 영국이 자국 차에 과세를 철폐하자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 밀수업자들과 영국의 지배에 반발하던 지식인을 중심으로 미국인의 분노를 샀다.

19세기 초 인도에는 ‘가슴세’가 있었다. 하층민 여성들이 집 밖에 나설 때 가슴을 가리면 세금을 내야 했다. 가슴을 가리는 건 상류 계급 여성의 특권이란 어이없는 이유를 내세웠다. 1840년 낭겔리란 여성은 스스로 가슴을 자르고 이에 저항했다. 그는 그날 목숨을 잃었지만, 이때 촉발된 저항이 거세지며 가슴세는 폐지됐다.

저자들은 ‘좋은 세금’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누구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지는 당대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릴 수밖에 없다. 애초에 모두를 만족시킬 좋은 세금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단 얘기다. 이 때문에 좋은 세금을 만드는 해법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시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에 있다”고 강조한다.

1986년 미국 의회가 전반적인 세율은 낮추되 세원을 넓히는 세제개혁법(TRA86)을 통과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공화당과 민주당은 당파를 넘나든 활발한 토론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 이를 통해 세수 부족 문제를 해결했다. 시간이 걸려도 충분한 합의 과정을 거친 정책만이 조세 저항을 줄일 해법이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책에는 세금의 미래도 담겨 있다. 가까운 미래에 소득세는 구시대 유물이 될 거라고 내다봤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노동이 사라지면 소득세도 없어질 것이란 예측이다. 이 밖에 부가가치세나 법인세, 탄소세 등도 다양한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 전망한다. 동의하느냐를 떠나 세금의 변화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면 사뭇 흥미롭다.

다양한 세금 제도의 변천사를 훑다 보면, 먼 훗날 이 시대의 세금을 어떻게 바라볼지도 궁금해진다. 표트르 황제의 수염세처럼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아야 할 텐데…. 저자들의 조언대로 무조건 밀어붙이기보다는 충분한 합의가 전제돼야만 현 시대를 사는 이도 미래의 후손들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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