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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조선의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 귀환

입력 2022-08-19 03:00업데이트 2022-08-19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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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에도 없던 ‘구형’ 실물 첫 공개
지구본 모양… 어디서든 시간 측정
‘1890년 무관 상직현이 제작’ 표기돼
고궁박물관 환수문화 특별전 전시
18일 오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최초 공개된 조선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지금까지 문헌으로도 알려진 적 없던 지구본 모양의 조선시대 휴대용 해시계가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9세기 조선에서 제작한 해시계 ‘일영원구(日影圓球)’를 미국에서 환수했다”며 실물을 최초로 공개했다. 지금까지 해시계는 일반적으로 친숙한 솥 모양의 앙부일구(仰釜日晷)만 10여 점이 전해졌는데, 완전한 구형(球形)을 갖춘 해시계가 발견된 건 처음이다.

높이 23.8cm인 일영원구는 십자형 받침대 위에 지구본처럼 원구가 올려진 형태를 띠고 있다. 동으로 만든 지름 11.2cm의 구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12지(支) 명문과 세로선 96칸이 표시돼 있다. 조선시대는 하루를 12시 96각(刻·15분)으로 계산했다.

일영원구는 시반(時盤·바닥)과 영침(影針·그림자를 만드는 막대)이 고정된 앙부일구와 달리, 해의 움직임에 따라 지구본을 돌리듯 구체를 회전시켜 시간을 맞춘다. ‘T’자처럼 생긴 바늘의 그림자가 생기게 한 다음, 구체에 파인 일직선 홈으로 그림자가 들어가게 기준점을 맞추면 현재 시간을 알 수 있는 방식이다.

앙부일구가 설치 장소에서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반면, 일영원구는 언제 어디서라도 해만 떠 있으면 시간 측정이 가능하다. 위도도 상관없다. 이용삼 충북대 명예교수(천문우주학과)는 “12지라는 조선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위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뒀다. 조선 후기 과학의 진일보를 보여주는 유물”이라며 놀라워했다.

제작자와 제작연도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점도 가치를 드높인다. 원구 한쪽에 ‘대조선 개국 499년 경인년 7월 상순에 새로 제작했다’는 글과 함께 ‘상직현 인(尙稷鉉 印)’이란 낙관이 새겨져 있다. 1890년 상직현이라는 인물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는 상직현이 총어영(摠禦營) 별장(別將)과 별군직(別軍職)에 임명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임금의 호위와 궁궐이나 도성 방어를 담당하는 무관을 일컫는다. 또 상직현은 1880년 수신사(修信使) 일행으로 일본을 방문했으며, 아들 상운(尙澐)은 청나라에서 최초로 전화기를 들여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일영원구는 1940년대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 장교를 거쳐 미국의 개인 소장가가 매입해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문화재청과 재단이 낙찰받았다. 일영원구는 19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환수문화재 특별전에 전시된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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