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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형식, 그 강력한 힘에 관하여[공간의 재발견/정성갑]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입력 2022-08-19 03:00업데이트 2022-08-19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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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아티스트를 만나면 꼭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어떤 미감을 추구하십니까? 하는 것이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추상적 질문일 수 있는데 그 답을 그가 사는 집과 공간에서 선명하게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다녀온 도예가 권대섭의 집이 그랬다. 그가 만드는 달항아리는 동시대 가장 유명한 창작물 중 하나라 어떤 기운과 느낌을 담고 싶은지 궁금했는데 그의 집 앞에 서는 순간 모든 물음이 자동적으로 풀렸다.

입구에는 당찬 기운의 석물과 소담한 대나무 밭이 있었고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폭우에도 깨끗하게 정돈된 정원과 마루 위로 큼직한 돌을 툭툭 올려놓은 집이 보였다. 집을 빙 돌아 가마 쪽으로 올라가니 계곡물 소리가 시원했다. 그 앞으로도 석물이 상징처럼 서 있었는데 여러 생김새의 돌을 보다 보니 왜 그렇게 많은 예술가가 돌에 애착을 갖는지 알 것 같았다. 멈춘 듯 고요하면서도 꽉 찬 밀도의 힘이 느껴지는 비범한 기운. 많은 사물과 풍경이 작가의 마음이 향하는 곳은 무심한 아름다움이라 말하고 있었다. 돋보이려 애쓰지 않아서 되레 깊은 여운을 남기는 달항아리와 찻사발. 그것이 그가 만들고 싶은 사물의 핵심이라 판단했다.

도예 작가들과의 인터뷰는 쉽지 않다. 그들의 작업은 물과 흙과 불이 개입하는 추상의 세계인데 기자는 어쩔 수 없이 구체적 내용을 듣고 싶어 하니 접점을 못 잡고 부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어려움은 때로 작가의 알 듯 말 듯한 말로 명쾌하게 풀리기도 한다. 이번이 그랬다. “조선 시대 작품을 보면 어떤 것들은 꼭 신이 만든 것 같아요.” 18세기 백자를 포함해 그는 골동품을 여럿 갖고 있는데 그건 어떤 호사나 취향의 문제라기보다 이루고 싶은 꿈이나 작가로서 추구하는 지향점에 관한 얘기일 수 있다. 이 말도 단서처럼 꽂혀 들어왔다. “형식을 내세우면 괴롭지요. 다도를 이야기할 때 복잡한 규율에 관해 이야기하면 골치가 아프잖아요. 그런데 내용을 알려면 그 형식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해요.” 석물을 두고, 돌담을 쌓고, 소담한 정원을 가꾸는 것이 작업의 형식을 세우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하는 물음에 작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예술가의 집이 아름다운 건 형식이 곧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 형식이 앞단에 있고 내용이 뒷단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담고 싶은 내용이 명확해야 형식도 내세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구체화한 형식은 뭉근하고 지속적으로 작가의 눈과 정신에 영향을 끼치고 결국 작품에까지 가 닿는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것이다. 형식이 저 혼자 겉돌지 않고 삶의 태도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칠 때 누군가의 공간과 집은 진짜 좋은 곳이 될 수 있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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