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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후진국형 ‘직업성’ 암 잡으려면

입력 2022-08-19 03:00업데이트 2022-08-1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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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병원에서 열린 직업병안심센터 개소식 모습. 센터는 서울, 중부(인천 경기 강원),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지역별로 거점 종합병원이 중심이 돼 근로자들의 직업성 질병을 찾아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양대병원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국내에는 아직도 후진국에서 많이 생기는 암이 있다. 바로 ‘직업성’ 암이다. 직업성 암은 직업적 발암요인에 노출돼 발생하는 암이다. 따라서 사전에 발암요인 노출을 최소화하면 직업성 암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대표적인 직업성 암으로 폐암,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등이 있다. 특히 폐암의 경우 조리업을 하는 곳에서 연관성이 많아 대표적인 직업성 암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직업성 암이 왜 후진국 암이 된 것일까? 우리나라 직업성 암 사망률은 전체 암 사망의 약 2∼5%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체 암 환자 중 4%는 직업성 암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국내 20세 이상 집단에서 발생한 암 대비 직업성 암 인정 비율은 2019년 기준 전체 암 환자의 0.09%(233명)에 불과하다. 암 관련 국가 통계를 비롯해 다양한 암 치료 성적, 암 환자들에 대한 보장성 강화 등을 살펴보면 한국은 선진국에 가깝다. 그런데 직업성 암은 왜 이리 인정 비율이 낮은 것일까?

이는 직업성 암을 인지하는 환자가 거의 없고, 의사들조차도 직업성 암과 관련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다. 얼마 전 국립암센터에서 열린 제75회 암정복포럼에서 국내 직업성 암 연구 현황과 발전 방향이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이경은 선임연구원은 “직업성 암은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산재 신청을 하기 어려운 질환”이라고 지적했다.

급성 질환은 현재의 직업 환경에서 요인을 찾고 산재 신청을 하는 과정이 비교적 명확하다. 그러나 암의 경우 노출과 발병 시점 사이 기간이 길고 과거 직업적 노출 요인을 찾기 힘들다. 가령 한 직장인이 A회사에서 폐암의 발암요인에 노출됐지만 나중에 B회사로 옮겨 폐암이 발생했을 경우 원인은 A회사에 있었기 때문에 B회사에선 폐암의 원인을 찾기 힘들다.

이 외에도 직장인이 취급한 물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근로자 스스로 산재 신청을 하기 어려운 구조다. 무엇보다도 직업성 암으로 판정받기 위한 환자 중심 시스템이 잘돼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즉, 직업성 암을 인정받으려면 환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직접 신청하고, 환자가 직업과 암의 연관성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그 기간도 만만치 않게 많이 걸린다. 암 환자들이 직업성 암 판정을 받기 위해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많아 이 분야에서 환자 중심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 보인다.

직업과 암의 연관성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빅데이터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조리업 종사자는 어떤 암에 잘 걸리고, 도장작업을 하면 어떤 암에 잘 걸리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국민, 의사들에게 알려 나가는 정책도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직업성 암을 대하는 노동당국의 시스템을 보면 후진국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의사의 역할이 크다. 단순히 암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의사들은 대개 환자의 직업을 묻지 않는다. 진료 차트에 환자의 직업 환경을 체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는다면 환자나 의사가 암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직업성 암의 인정 비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능동적인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용보험과 암 등록 자료, 통계청 원인별 사망자료를 통합해 사업장 기반의 24개 암 감시 데이터를 만들어 2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누적 암 발생 건수를 집계해 모니터링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런 조사의 경우도 직업 환경이 안 좋은 사업장일수록 비협조적일 확률이 큰 데다 역학조사에 대한 협조 또한 제도적으로 강제성을 띠지 않기 때문에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회사의 기술 유출을 막는 산업기술보호법이 지난해 강화되면서 내부를 조사하기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일터와 암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일이 더욱 어렵게 됐다. 산업기술보호법을 근로자 입장에서 재개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희망은 보인다. 고용노동부가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질병과 직업 사이의 관련성을 평가한 후 필요하면 산재까지 연계하는 ‘직업병안심센터’를 한양대병원 서울센터를 시작으로 전국 6개 지역에 올해 내로 설치하기 때문이다. 직업병안심센터가 직업병을 잘 알리고 국민과 의사의 소통을 활성화해서 더 이상 암의 직업 관련성을 몰라 그냥 묻히는 일은 없기를 기대한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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