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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김순덕 칼럼]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모른다

입력 2022-08-18 00:00업데이트 2022-08-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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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20번이나 읊조리면서도
대통령실 인사쇄신도 안 밝힌 회견
사랑 없는 사랑고백처럼 공허하다
‘내 식구’만 챙기는 인사부터 탈피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100일을 맞아 연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소회와 국정운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2022.8.17.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듣고 싶은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도 ‘시작도 국민, 방향도 국민, 목표도 국민’이라고 하는 것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17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발언. 그러나 한 번도 사랑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사람의 사랑 고백처럼 답답하고 공허했다.

마음에서 우러난 사과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은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한 치도 국민의 뜻에 벗어나지 않도록 국민의 뜻을 잘 받들겠다. 저부터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하겠다”고 말하기는 했다.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래 놓고 국정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국민의 관점에서 세밀하게 한번 따져 보겠다”고 답했다. 입때껏 뭘 하다 이제 와 ‘여러 가지 지적된 문제들에 대해’ 따져 본다는 건지 모르겠다.

대통령실부터 인사쇄신을 해야 하는 이유는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밖에 안 돼서다. 대통령의 분신이랄 수 있는 대통령실장이라도 바꿔 대통령이 달라질 것임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장이 미워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연애할 때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 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는 “몸이 약한 저를 걱정해 ‘밥은 먹었느냐, 날씨가 추운데 따뜻하게 입으라’며 늘 전화를 잊지 않았다”던 윤 대통령이라고 했다. 그게 사랑이다. 사랑이 있어야 상대의 뜻을 알고, 공감도 가능한 법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공감했다면 “정치 경험이 많지 않아서, 특히 도어스테핑을 하면서 태도나 말투에서 국민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죄송하다.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는 말도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앞으로 고치겠다”라고 사과했어야 했다.

‘부인 리스크’에 대해서도 “제 처가 당초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과 다른 모습을 보인 점에 대해서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특별감찰관을 속히 임명할 수 있도록 여야가 힘써주기 바란다”고 밝혀야 했다. 그랬다면 국민의 돌아선 마음도 상당 부분 풀렸을 것이다.

그 대신 윤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대통령 소통의 새 모습이라는 도어스테핑에 대해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린다”며 당당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와의 ‘집안싸움’에 대한 질문에도 “다른 정치인들이 어떤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어떤 논평이나 입장을 표시해본 적이 없다”며 솔직하지 않은 답변을 했다. 차라리 윤 대통령이 통 큰 사과와 수습 의지를 보였더라면 훨씬 대통령다웠을지 모른다.

윤 대통령이 숨차게 소개한 100일간의 국정과제가 간단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2017년 8월 17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던 탈원전 정책을 윤 대통령이 폐기함으로써 우리 원전 산업을 다시 살려낸 것만 해도 하늘이 도왔다 싶다. 취임 열흘 만에 한미 정상회담으로 한미 연합 방위태세를 공고히 한 것도 박수 칠 일이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최근 중국의 부상(浮上) 아닌 ‘거대한 몰락’을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만에 하나 3·9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했다면 윤 대통령이 어제 강조한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특히 외교 안보 분야에 있어서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이라는 발언은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에게서는 결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윤 대통령의 어제 기자회견은 현미절편 같다. 영양가는 있을지 몰라도 먹음직스럽지 않다. 5년 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은 체리 장식에다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케이크처럼 화려했다. 문 대통령은 “서민 괴롭힌 미친 전세·월세를 잡을 더 강한 부동산 대책이 주머니에 많다”고 큰소리쳤고, 탈원전을 해도 전기료는 크게 오르지 않으며, 꼼꼼한 재원 대책으로 재정부담이 크지 않다고 장담했다.

문 정권의 ‘쇼통’에 홀렸던 탓일까. 문 정권 5년간 국가채무는 404조 원이나 늘어났다. 우리 아이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물려주려면 윤 대통령은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고 지지율을 끌어올려 국민의 협조를 얻어내야만 한다.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건 분골쇄신이 아니다. 지지율이 중요한 것도 좋은 국정을 위해서다. 무엇보다 인사가 중요하다. 검찰이나 대통령 동문, 코바나컨텐츠 같은 ‘내 식구’만 챙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윤 대통령이 취임 전 내걸었던 ‘공정과 상식’은 한 뼘쯤 올라갈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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