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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교실, 그 부드러운 미래[동아광장/김금희]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입력 2022-08-17 03:00업데이트 2022-08-17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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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진한 삶 속에서도 꿈 찾는 부탄 아이들
‘교사는 미래 어루만지는 사람’이란 믿음도
우리는 아이들 미래, 부드럽게 만지고 있나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얼마 전 부탄 영화 ‘교실 안의 야크’(2020년)를 봤다. 부탄이라고 하면 아마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나라로 알려져 있을 것이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위치해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못 되지만 삶의 만족도가 높은 나라, 실제 부탄에서는 국가 단위에서 관리하는 국민 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정책이 있다고 한다. 영화 첫머리에도 그 흔적이 등장한다.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젊은 교사이지만 정작 본인은 현재에 대한 불만과 회의, 무력감에 시달리는 주인공 유겐의 티셔츠에 아이러니하게도 ‘국민 총행복’이라는 말이 인쇄되어 있다.

‘교실 안의 야크’가 특별한 것은 부탄의 미래들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부탄의 아름답고 자족적인 삶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경제적, 사회적 조건 속에 자기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청년과 아이들의 모습이 핍진하게 펼쳐진다. 유겐은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부탄의 엘리트이자 팝 가수를 꿈꾸는 젊은 예술가, 그리고 호주 이민을 계획하고 있는 부탄 사회의 잠재적 이탈자다.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해 있는 그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그저 적당히 시간을 때워야 하는 고역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행태를 지켜보고 있던 교육부장관이 그를 ‘전 세계에서 가장 외딴 학교’가 있는 루나나로 보낸다.

루나나가 얼마나 외떨어진 마을인가는 여정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일단 시외버스를 타고 밤낮없이 달려 가사주에 내린 다음 도보로 6일을 걸으면 된다. 첫날에는 민가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지만 나머지 기간에는 야영을 하면서 산과 계곡을 오르는 것이다. 주민이 단 세 명뿐인 산 중턱의 민가에서 쉬던 날, 유겐은 흙투성이에 굳은살이 박인 주인집 남자의 맨발을 보며 왜 신발을 신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남자는 신지 않는 것이 익숙하고 신발값도 만만치 않다고 답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네댓 살쯤 되었을 자식의 발을 비추는데 아이만은 노랗고 반들반들한 질 좋은 장화를 신고 있다. 적어도 아이의 삶만은 그 신발값을 감당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고생 끝에 루나나에 도착한 유겐은 칠판 하나 없는 학교와 마주한다. 필기할 종이가 없어 추위를 막기 위해 붙여놓은 문풍지를 뜯어야 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까닭에 ‘차(car)’라는 영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에 줄행랑을 치려던 유겐은 점차 이 특별한 교실을 자기 힘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그런 유겐의 교실에는 영화 제목 그대로 야크 한 마리가 들어와 자리를 지킨다. 유겐에게 루나나 사람들의 영혼과 정신에 대해 알려주는 마을 친구 살돈이 선물한 것이다. 도시인들은 아마도 가축 정도로 알고 있을 이 동물을 향한 루나나 사람들의 존중과 사랑이 한 철없는 교사의 각성기 정도로 흐르던 서사를 순식간에 종교적 차원으로 심화시킨다.

“목동보다는 더 나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부모들의 염원은 유겐의 교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들은 영어로 수학 문제를 풀고 농구를 한다. 칫솔과 치약의 사용법을 배우고 장래 희망을 이야기할 때 모두 이곳이 아니라 도시에 있을 자신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야크는 조용히 여물을 씹으며 아이들을 지켜본다. 루나나 사람들에게 식량과 가죽과 사랑과 자연에 대한 경외, 그리고 삶의 섭리까지 알려주는 이 야크는 모든 존재들이 과연 세상에서 어떤 ‘쓰임’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쥐고 있다.

교사를 그저 생계를 위한 직업 정도로 여겼던 유겐의 태도가 바뀌는 이유는 루나나 사람들이 너무나 극진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사란 미래를 어루만지는 사람”이라며 거기에 자기 아이들의 내일을 건다. 우리는 가끔 세상을 투자와 산출, 과정과 결과로 매우 단순히 바라보고 함부로 미래를 예상하고 결정한다. 교문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 미래를 숫자로 계산하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교실에서 하게 될 기대와 두려움, 그 한발 한발에 담긴 성장이라는 의미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인간의 쓰임에 대한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미래들을 얼마나 부드럽고 신중하게 어루만지고 있는 것일까. 루나나 사람들의 교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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