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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자기결정, 행복의 필요조건 [고양이 눈썹 No.32]

입력 2022-08-13 16:00업데이트 2022-08-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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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점심시간이면 서울 정동이나 명동 골목길은 활기가 넘칩니다. 반면 대로 변 인도는 지하철 역 부근 외에는 그다지 붐비지 않죠. 대로 변엔 대형 프랜차이즈 상점 등이 있지만 뒤편 이면도로에는 작은 골목식당이나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습니다. 부동산 전문가라면 이를 유동인구와 임대료의 관점에서 해석하겠죠.

보행자에겐 뒷골목이 구경거리가 많아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어떤 가게의 쇼윈도를 보고 필요에 따라 들어가 보기도 하고 음식도 맛을 보는 자유로운 선택, 즉 자기결정권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특징 중 하나인 ‘익명성’과 함께 즐기는 자기결정권입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고 오롯이 내 마음대로 됩니다…

2022년 5월


▽“행복의 한 가지 열쇠는 삶의 자율성이다. 즉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사치다. 북유럽 지역이 하나같이 행복도와 삶의 수준이 세계에서 제일 높고,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하며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진정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삶의 주인이 되고, 자기 의지로 되고 싶은 사람이 되며, 그렇지 않다면 적절하게 경로를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생각에 머물거나 아메리칸드림처럼 공허한 슬로건이어서는 안 된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현실이다. 진정한 기회의 땅이다. 북유럽 국가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보다 계층 이동성이 훨씬 더 크며, 이 지역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주의와 국가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되고 싶은 사람이 되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자유가 훨씬 더 많이 주어진다.”

- 저널리스트 마이클 부스의 책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The Almost Nearly Perfect People: Behind the Myth of the Scandinavian Utopia, 2016년) 중에서

위 책은 영국인 저자가 10년 동안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5개국에서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쓴 북유럽 장기 체험담입니다. 부인이 덴마크 출신이기도 하고요. 영국인 특유의 풍자와 비꼬는 태도도 있지만 날카로운 시각으로 ’행복 제1지역‘을 탐방합니다.

World Happiness Report 2022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 가능한 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 The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가 매년 전 세계 150여 개국 국민의 행복도를 조사해 발표하는 보고서가 올 4월 공개됐는데요, 북유럽 5개국이 모두 10위 안에 들어있습니다(한국 59위, 일본 54위, 대만 26위, 중국 72위).

▽휘게(느긋), 폴켈리(아늑), 라곰(유쾌)…. 북유럽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정작 마이클 부스는 북유럽 사람들이 엄청 무뚝뚝하고 비사교적이라며 합니다. 딱히 이렇다할 재미를 추구하지 않는대요. 특히 핀란드 사람들은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엘리베이터를 낯선 사람과 함께 타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로 비사교적이라는 군요. 즉 라이프스타일이 행복의 가장 큰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복지, 평등, 사회 인프라, 무상 교육 등 흔히 알려진 북유럽 행복의 이유 외에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지 있을까? 그는 이것을 찾기 위해 평범한 시민은 물론 역사학자와 인류학자 언론인 소설가 예술가 정치인 철학자 과학자 심지어 요정 연구가를 만납니다. 그리고 책 말미에서 자신이 찾은 것을 밝힙니다. 마치 무뚝뚝한 북유럽인의 말투라도 흉내 내듯 무덤덤하게 말이죠. 이 책의 핵심 내용이지만 딱히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사치‘ 즉 자기결정권입니다.

2018년 10월


▽북유럽 나라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비롯해 자율성이 큽니다. 복지와 사회 인프라가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인데요, 하던 일이 싫으면 언제든지 그만 둬도 됩니다. 새 직업을 구할 때까지 기존 봉급의 60~80% 가량을 받을 수 있거든요. 쉬면서 새로운 직업에 대한 교육도 무상으로 받습니다. 직업 변경에 대한 선택은 자유롭지만, 책임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런 사회에선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표현은 없겠죠.

이러한 복지 제도는 그들 사회 내부에서도 논란거리입니다. 과도한 복지가 성장과 활력을 방해한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북유럽 5개국 국민들에겐 여전히 현행 복지 시스템에 대한 높은 신뢰가 있다고 합니다. 직업에 따라 사람을 무시하거나 올려다보는 문화도 적습니다. ’평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이 북유럽에 비해 삶의 행복지수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자기결정권이 적기 때문이 아닐까요? 선택으로부터 소외된 분들이 많습니다. 학생에겐 ’자기주도 학습‘이 중요하다지만, 어차피 입시라는 큰 틀 속에서 선택에 제한이 있으니 과연 그것을 ’자기주도‘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30~50대 가장들에겐 선택권이 사실상 아예 없습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지못해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이런 말을 많이 하고 많이 듣죠.

“내가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야”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먹고 살려면 별 수 있냐. 참아야지. 술 한 잔 먹고 잊어. 너 내일 또 출근해야 하잖아.” (먹고사니즘)

“네가 왜 결정을 해? 판단은 윗분들에게 맡겨! 너는 시키는 거나 잘 해!” (답정너)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 다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야!” (영화 ’극한직업‘ 대사)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밖은 지옥이야” (드라마 ’미생‘ 대사)

“연기 아닌 인생이 어디 있냐?”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대사)

자기결정권이 없으면 불행해지는 것은 개인의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집단도, 국가도 불행합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1918년에 주창한 ’민족자결주의‘가 식민 지배를 받던 전세계 약소민족들을 크게 고무시킨 이유죠.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을 위한 기초이면서 행복의 필요조건입니다. 행복은 자기결정의 결과이자 ’파생상품‘이기 때문이죠.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매 시각 자기 결정을 반복하며 자신의 일을 도모하며,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다 보면, 행복이란 놈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운전자는 멀미를 하지 않습니다. 핸들을 쥐고 속도와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니까요. 멀미는 뒷좌석 승객이 합니다. 특히 뒷좌석에 앉아 마음속으로 운전을 하고 있는 승객이 멀미를 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합니다. 멀미는 내 의중과 맞지 않게 차량이 움직일 때 올라오고, 고통은 본인의 계획과 상관없이 환경이 변할 때 많이 커지니까요.

2021년 3월____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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