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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충무공 묘소 지킨 민초들의 기록, 문화재 됐다

입력 2022-08-12 03:00업데이트 2022-08-12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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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유적보존회’ 자료 4254점
문화재청,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본보 ‘위토 경매’ 보도후 모금운동
‘이충무공 유적 보존위원회’의 성금 대장. 문화재청 제공
일제강점기 동아일보가 주도해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의 묘소와 위토(位土·묘소 관리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토지)를 지킨 내용이 담긴 자료들이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청은 “5월 30일 등록 예고됐던 ‘일제강점기 이충무공 묘소 보존과 현충사 중건민족성금 편지 및 자료’를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고 11일 밝혔다. 1931년 충남 아산에 있는 충무공 위토가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국내외 동포들이 앞다퉈 성금을 보내와 이를 되찾았다. 당시 성금과 함께 보낸 편지 2609점을 포함해 성금결산 및 지출장 등 총 4254점이 기록물로 등록됐다.

충무공의 후손이 충무공 위토를 담보로 돈을 빌린 사실은 1930년 9월 20일 동아일보의 단독 보도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1931년 5월 13일자에 위토가 은행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고 또다시 단독 보도했다. 당시 모인 성금은 1만6021원30전으로, 현재 가치로 10억 원이 넘는다.

동아일보 주도로 결성된 ‘이충무공 유적 보존위원회’는 1931년 6월 11일 위토를 되찾고, 남은 돈으로는 1932년 충무공 고택 옆 현충사를 중건했다. 1706년 설립된 현충사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1868년 철거된 뒤 60여 년 만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1967년 3월 사적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이육사 친필 편지 및 엽서’와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독립운동가인 시인 이육사(1904∼1944)가 1930년대 친구와 친척에게 쓴 편지와 엽서는 당시 생활고를 겪던 시인의 근황과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사료다.

1921년 천도교 중앙대교당과 함께 건립된 ‘서울 구 천도교 중앙총부 본관’에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사회계몽 활동이 활발히 이뤄졌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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