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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신진우]무너진 장마당, 분노한 민심… 김정은의 노다지는 해킹이었다

입력 2022-08-12 03:00업데이트 2022-08-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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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우 정치부 차장
2500만 달러(약 325억 원).

사석에서 만난 고위 당국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뒷돈’을 이렇게 추산했다. 이 정도 외화만 매달 안정적으로 수급하면 평양에 밀집한 권력층에게 사치품, 선물 등을 뿌리는 데 지장 없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여기서 의문 하나. 북한 인구가 2500만 명에 달하는데 2500만 달러만으로 일편단심 충성심이 유지될까. 평양 밖 주민들의 배고픔이 수령님에 대한 분노로, 그 분노가 폭동의 심지가 되진 않을까. 당국자가 말한 해답은 ‘장마당’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이미 10년 전에 당국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 대신 주민들은 장마당 경제로 자생했고, 북한 당국은 이를 눈감아줬다. 덕분에 지배층에 대한 불만이나 평양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고 그럭저럭 불만 없이 굴러왔다는 거다.

2020년. 그렇게 유지되던 장마당 경제가 위기에 봉착했다. 코로나19 태풍이 덮쳐서다. 국경 폐쇄로 북-중 무역이 막히니 장마당이 휘청거렸다. 장마당이 흔들리니 평양 밖 주민들의 분노는 스멀스멀 번졌다. 올해 5월 김정은이 현철해 인민군 원수의 빈소에서 손수건까지 꺼내 들어 눈물을 펑펑 훔치는 모습을 공개한 게 주민들 분노를 감성으로 누그러뜨리려는 고육지책이란 해석까지 나왔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김정은의 과제는 더욱 또렷해졌다. 장마당 붕괴로 무력해진 주민들을 구워삶을 외화가 절실해진 것. 이렇게 절박한 김정은의 눈에 들어온 노다지가 바로 사이버 범죄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재택·원격 근무가 확산되면서 보안 틈새가 벌어진 상황은 특히 호재였다. 국가 차원에서 해커를 양성하고 관리하던 북한이 노골적으로 해킹에 뛰어든 이유다. 중국 등 해외로 ‘수출’한 사이버 전사들이 벌어들인 외화의 90% 이상은 본국으로 상납된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김정은이 연 1조 원 가까이 사이버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소식통은 “요즘 북한에는 해커를 양성하는 일종의 ‘학원’까지 우후죽순 생겼다”고 했다.

암호화폐 가치의 상승은 이런 북한 해킹 공작에 날개를 달아줬다. 암호화폐는 상대적으로 디지털 방어가 약하고 제재 회피가 쉽다. 최근 7조 원에 육박하는 국내 은행권의 수상한 외환 거래에도 그 해외 송금의 끝단에 북한이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런 해킹에 맞서야 할 우리 정부가 공세적 대응은커녕 방어조차 힘겨워한다는 데 있다. 북한이 해킹으로 축적한 자금은 이제 핵·미사일 개발에까지 전용된다. 그런데도 우린 범부처 차원 컨트롤타워 구성조차 힘겨운 실정이다. 이른바 사이버안보법 부재로 민간 분야 보안 집행은 막혀 있고, 사이버안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사이버워킹그룹은 간판에 비해 대응 역량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앞서 5월 한미 정상회담 뒤 공동성명에선 ‘사이버안보’만 무려 12번 언급됐다. 하지만 의지만으론 절박한 김정은의 해킹을 따라잡을 수 없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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