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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송평인]맨홀 참사

입력 2022-08-12 03:00업데이트 2022-08-12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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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도시는 프랑스 파리였다. 나폴레옹 3세는 복잡하게 뒤엉켜 있고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는 골목길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 방향으로 뻗어가는 방사형 도로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상만 봐서는 그가 한 파리 현대화 작업의 절반을 본 것일 뿐이다. 그의 시대에 만들어져 파리의 독특한 관광명소가 된 곳이 하수구다. 현대화된 파리를 떠받치는 시설의 절반은 지하에 있다.

▷맨홀은 농촌에는 없다. 맨홀은 도시에서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통로다. 사람(man)이 들어가는 구멍(hole)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프랑스어로도 같은 뜻의 트루 돔(trou d‘homme)이다. 하수도로 통하는 맨홀이 있고 상수도로 통하는 맨홀이 있고 전기통신선이 모여 있는 곳으로 통하는 맨홀이 있다. 맨홀을 통해 사람이 들어가서 이런 것을 점검하고 정비하지 않으면 도시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무심코 지나가는 행인이 열려 있는 맨홀에 빠지는 사고가 세계적으로 보면 심심찮게 발생한다. 그래서 맨홀에 들어가 작업할 때는 안내판을 주변에 설치해야 한다. 맨홀 뚜껑은 아무나 쉽게 열 수 없도록 두꺼운 쇳덩어리로 만들어진다. 두꺼운 쇳덩어리다 보니 팔면 돈이 꽤 돼 도난사고도 간혹 일어난다. 그 경우 도난은 둘째 치고 뚜껑이 없어져 맨홀이 열려있는 상태 자체가 아주 위험하다. 그래서 맨홀 뚜껑에 잠금 장치를 해두기도 한다.

▷최근 집중호우로 서울 강남에서 하천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하수도 물이 역류해 엄청난 수압에 의해 무거운 맨홀 뚜껑이 열리고 지하로부터 물이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물이 솟구쳐 오를 때도 위험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순간은 하수도의 수압이 다시 낮아져 지상의 물이 빠져나갈 때다. 마침 그럴 때 한 성인 남매가 맨홀 근처를 지나다가 먼저 누나가 맨홀에 빨려 들어갔고 누나를 구하려던 남동생마저 빠져 들어가는 참사를 당했다. 맨홀에 빠지면 구조가 난망이다. 지하관로로 휩쓸려 가버려 위치 파악 자체가 어렵다. 로봇을 이용한 수색 끝에 남동생의 시신은 다른 맨홀에서 찾았지만 그 누이를 찾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침수 지역의 한 시민은 열린 맨홀을 쓰레기통으로 막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것도 맨홀이 보일 때의 얘기다. 물이 깊고 탁해 열렸는지 닫혔는지 알 수 없는 맨홀이 도처에 있을 수 있다. 서울시에 보도에만 11만 개가 넘는 맨홀이 있다. 이 중 하수도 맨홀은 4만여 개다. 침수 순간 4만여 개의 맨홀이 죽음의 구멍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할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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