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유가족이 모여, 퍼즐이 완성됐다[히어로콘텐츠/산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11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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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4> 살아간다, 완성된 퍼즐 조각


지난 이야기
2017년 9월 강릉의 60년 된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불이 났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건물 내부로 들어갔던 이영욱 소방경과 막내 대원 이호현 소방교.
갑자기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두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갔다.
남겨진 가족인 영욱의 아내 이연숙, 그리고 호현의 아버지 이광수.
주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됐고,
세상과 단절한 채 슬픔과 상처를 홀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소방청 조인담 주임의 설득으로 딸 소윤과 소방관 유가족 모임에 참석한 박현숙.
영혼 없이 앉아 있던 현숙은 갑자기 한 아이의 외침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얘들도 소방관 아빠 없어요?

올해 7월 3일 서울역. 박현숙(오른쪽)과 딸 소윤(오른쪽 두 번째)이 원주로 향하는 기차를 타러 가기 전에 다른 소방관 유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올해 7월 3일 서울역. 박현숙(오른쪽)과 딸 소윤(오른쪽 두 번째)이 원주로 향하는 기차를 타러 가기 전에 다른 소방관 유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에서 이틀간 열린 소방관 유가족 모임.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가 끝났다. 태백으로 돌아온 박현숙은 딸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고 큰 숨을 내쉬었다. 쉴 틈 없이 짜인 레크리에이션을 치르느라 딸아이를 어르고 달랜 기억 외엔 머릿속에 남은 게 별로 없었다.

소윤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도 없었다.

현숙은 다음 날 눈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청 조인담 주임이 만들어둔 단체 카톡방을 열고는 캠프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소방관 아내와 남편 등 12명이 모여 있는 카톡방이 잠시 활발해지다 곧 잠잠해졌다. 알림이 울리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던 현숙은 ‘쩝’ 하고 소리를 냈다.

이틀 뒤였다. 현숙은 연이어 울리는 ‘카톡’ 소리에 재빨리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관 가족 중 한 명이 보낸 메시지였다.

‘주변에 한부모 가정이 없어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도 제 말에 공감해주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안동 산다고 했던 엄마네….”

레크리에이션 때 현숙의 옆자리에 앉았던 엄마였다. 그녀의 둘째 딸이 소윤과 동갑내기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재빨리 답장을 썼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1, 2시간 거리에 사시는 분들은 가끔 모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마돌캠 2018년 행사
마돌캠 2018년 행사


● 같은 모양의 슬픔
시간이 지나며 대화는 더 깊어졌다. 사는 곳이나 나이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하재웅] [오후 3:26] 퇴근길에 하늘나라로 간 와이프 폰 해지하고 왔어요. 서류에 다 나와 있는데, 굳이 누구 휴대전화냐고 계속 물어보는 직원이 너무 미웠습니다. ㅠㅠ 슬픈 이야기 꺼내서 죄송해요.

현숙은 캠프에서 재웅을 만난 것도 기억이 났다. 유일한 아빠였다. 그는 소윤과 동갑내기인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소방관 부부였던 재웅은 몇 달 전 혼자가 됐다. 아내는 119센터로 출근하기 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아내가 잦은 인사이동 등으로 받은 스트레스 외에는 세상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를 본 현숙의 코끝이 찡해졌다.

[서울맘] [오후 3:41] 저는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간 남편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고 말았어요. 다른 젊은 남자가 그 전화를 받는 게 순간 너무 서글퍼서 대성통곡을 했네요. ㅠㅠ

[박현숙] [오후 4:26] 재웅님 미안해하지 마요. ^^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에요.

현숙은 남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곳에서 모두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후 11시 넘어 끝난 대화는 다음 날 오전 7시부터 다시 시작됐다.

“엄마, 전화기 그만 봐!”

또래보다 말을 빨리 배운 소윤이 종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현숙에게 소리를 쳤다. 현숙은 소윤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안동맘] [오후 11:34] 그런데 우리 모임 이름은 뭘까요? 저는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를 줄여서 ‘마돌캠’이라고 적어놨어요. ㅋㅋ

인담은 한 달 넘도록 카톡방을 지켜봤다. 가족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점점 확신이 생겼다. 조심스럽게 다음 사업을 시작했다. 가족들의 심리상담 지원이었다.

[안동맘] [오후 1:29] 심리상담을 하면 내용이 기록에 자세히 남나요? 상담 간다고 하니 식구들이 기록에 남는 거 아니냐고 껄끄러워하시더라고요….

[조인담] [오후 1:34] 1. 상담센터는 의료 행위가 아니라 예민한 개인정보가 남지 않음. 2. 상담은 일단 무조건 받아보시는 것을 추천. 생각보다 상담사님 의견에 공감됨.

현숙도 망설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직후 주변에서 심리상담을 권했지만 받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상담사가 자신과 딸의 이야기를 정해진 기준에 맞춰 받아들이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도 싫었다.

카톡방에선 인담의 설득으로 심리상담을 받고 온 가족들이 남긴 후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예상보다 좋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현숙의 마음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다들 좋다고 하는데… 한번 가볼까.’

현숙은 소윤을 데리고 인담이 연결해준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원주의 한 상담센터에서 그림을 활용한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박현숙의 딸 소윤(왼쪽).
원주의 한 상담센터에서 그림을 활용한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박현숙의 딸 소윤(왼쪽).


“소윤 어머니, 꼭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돼요. 아이도 엄마의 슬프고 기쁜 감정을 다 볼 수 있어야 해요. 아빠의 죽음에 관해서도 조금씩 설명을 시작하는 게 좋아요.”

그동안 현숙이 애써 외면했던 이야기를 상담사가 먼저 꺼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소윤도 친구들을 보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때였다. 이제 현숙은 소윤이가 아빠를 물으면 숨기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소윤아, 아빠는 구급차를 타고 출동하는 소방관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간 거야. 아빠는 소윤이에게 나비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꽃으로 보일 수도 있어. 어디에든 아빠가 있는 거야.”

이야기를 들은 소윤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현숙은 딸을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도 아빠 많이 보고 싶어. 소윤이도 많이 보고 싶지?”

“엄마, 내 아빠는 내 아빤데… 엄마 니 아빠는 누군데?”

소윤의 해맑은 대꾸에 현숙은 울다가, 웃곤 했다.

마돌캠 가족들은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길 원했다. 소방청에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도 가족들은 즉석 모임을 했다. 각자의 집에 모여 새벽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들도 아빠, 엄마가 없는 친구들을 형제자매처럼 생각했다.

박현숙이 딸 소윤과 다른 유가족 자녀를 끌어안고 있다.
박현숙이 딸 소윤과 다른 유가족 자녀를 끌어안고 있다.


[안동맘] [오전 9:52] 유가족들이 모여서 저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은 것 같아요. 조각나서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한 조각씩 모여 맞춰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

가족들이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인담은 후원 기업과 기관에 선언했다.

“우리 이거 계속하시죠. 정기적으로 모이게 하고, 더 많은 가족이 참여하게 해요.”

● 다른 이에게 내민 손
마돌캠 결성 직후 현숙은 김포에서 소방관 2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봤다. 출동을 나간 수난구조대의 보트가 전복되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소방관 1명은 돌이 갓 지난 쌍둥이 자녀를 남겨 놓고 떠났다. 남겨진 아내가 걱정된 현숙은 인담에게 전화했다.

“주임님, 저는 마돌캠에서 다른 가족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이번에는 다른 소방관 가족에게 저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조의금부터 보내면 되지 않겠어요?”

“얼마나 해야 할까요.”

“음.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죠.”

현숙은 2년 전을 떠올렸다. 남편의 빈소에 앉아서 눈물을 참아내려 애쓰던 자신의 모습. 가장 힘들고 아플 때.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 시간. 그 마음은 현숙이 제일 잘 알았다.

현숙은 인담을 통해 조의금을 전하고 마돌캠의 존재를 알렸다. “혼자 슬퍼하지 말고 당신과 똑같은 가족이 이렇게 모여 있다”는 소식을 조의금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아 전했다. 얼마 후 인담이 먼저 현숙에게 전화를 했다.

“소윤 엄마, 원주에 이연숙 여사님이라고 계세요. 소방관 남편이 1년 전에 강릉에서 순직했는데, 같은 강원 지역이고 사는 곳도 가까우니 자주 연락하며 지내고 만나보세요.”

박현숙과 이연숙 등 순직 소방관 유가족이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모여 있다.
박현숙과 이연숙 등 순직 소방관 유가족이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에 모여 있다.


현숙도 기억하는 사건이었다. 강릉 경포호 앞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발생한 화재.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1년 정도 지나서 발생한 사고였다. 불을 끄던 소방관들이 순직했다는 뉴스를 보며 현숙도 자신의 곁을 떠난 남편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힘드실까. 영결식을 마치고 현충원에서 돌아온 날 밤은 정말 공허할 텐데.

그때 현숙은 당장 강릉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유가족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다녀올까. 시동생에게 강릉까지 운전을 좀 부탁할까.

강릉을 가는 방법까지 고민해 봤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그때는 아기 엄마가 유난을 떤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겁이 났다.

인담의 전화를 받고 현숙은 마음을 먹었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그해 10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직 소방관 합동 추모 행사가 열렸다. 매년 같은 시기에 열리는 행사였다. 현숙이 묘역에 도착하자 승민의 묘비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현숙은 두 손을 모으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혹시 이연숙 여사님 맞으시죠? 조인담 주임님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태백 허승민 소방관…?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남편들이 같은 소방본부 소속인데, 여태 인사도 못 했네. 자주 연락하고 지내면 나야 고맙지. 매일 집에만 있는데….”

현숙과 연숙이 통화를 하면 1시간이 훌쩍 넘었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이야기했다. 현숙은 연숙의 권유로 평생 살아온 태백을 떠나 원주에 자리를 잡았다.



현숙은 마돌캠 가족들을 만난 것이 운이라고 생각했다. 인담이 가족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다면, 그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주임님, 마돌캠을 비영리단체 같은 걸로 만들어서 다른 유가족들을 체계적으로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순직 사고 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가서 함께 위로해주고… 마돌캠 2기, 3기 이렇게 계속 만들면 좋잖아요.”

인담은 현숙의 이야기가 정말 고맙고, 반가웠다.

‘아파했던 사람이, 이제는 아픔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려 하는구나.’

현숙의 아이디어는 미국에선 이미 20여 년 전부터 자리 잡은 문화이자 제도였다.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과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이 남겨진 가족이 모여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패밀리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내에선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1년에 한 번씩 소방관 유가족과 추모식을 열지만 미국처럼 자조 모임을 만들어 지원하진 않는다.

속마음과 달리 인담은 현실적인 답을 했다. 인담 역시 그때는 갑작스럽게 인사발령이 나 완전히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다. 관련 제도나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쉽게 나설 수 없는 환경이었다.

“소윤 엄마, 마음은 좋은데요. 그렇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해요. 현실적으로 큰돈도 필요하고요. 저도 더 고민해볼 테니, 다른 가족들이랑 논의도 해보고 잘 생각해봐요.”

인담의 답을 들은 현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순직 소방관 예우, 유가족 지원 업무를 담당했던 소방청 조인담 소방경.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순직 소방관 예우, 유가족 지원 업무를 담당했던 소방청 조인담 소방경.


흩어진 조각이 모였다

2022년 7월 1일. 마돌캠 첫 모임 후 4년이 되는 날이었다. 현숙은 원주에서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많이 컸네, 우리 소윤이.”

소윤은 좌석 끝에 걸터앉은 채로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4년 전에는 기차에 앉아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았는데, 어느새 많이 컸다고 현숙은 생각했다.

딸을 바라보던 현숙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코로나19 탓에 거의 1년 만에 보는 마돌캠 가족이었다. 소윤과 묶여 세쌍둥이로 불리는 동갑내기 여자아이 둘도 와 있었다. 소윤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어색했는지 잠시 엄마 뒤에 숨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세 아이는 놀이터에서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나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올해 7월 2일 서울 롯데월드에서 회전목마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소윤(오른쪽).
올해 7월 2일 서울 롯데월드에서 회전목마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소윤(오른쪽).


하룻밤이 지나고 마돌캠 가족들은 함께 롯데월드로 향했다. 뾰족한 고양이 귀 모양의 머리띠를 한 세 아이는 기차놀이를 하는 것처럼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회전목마 같은 놀이기구를 탈 때도 접착제를 붙여 놓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 고양이다? 야옹”

다른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소윤이 갑자기 양손을 오므리며 고양이 흉내를 냈다.

“야옹, 야옹, 야옹.”

다른 아이는 강아지를 따라 했다.

“멍멍! 멍멍! 멍멍!”

까르르.

세 아이가 동시에 웃었다. 같이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듯 세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롯데월드에 이어 수영장까지 다녀온 아이들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에 빠졌다. 아이들을 재운 어른들은 그때서야 숙소에 모여 야식을 시켜 놓고선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말한 그건… 잘되고 있어?”

현숙이 재웅에게 물었다. 재웅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이 공무상 재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한 행정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변호사와 같이 자료 모으고 있어요. 아내가 일하면서 얼마나 소방관으로서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감을 느꼈는지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래, 애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그게 우리 일인 것 같아.”

현숙과 다른 마돌캠 가족들이 재웅의 등을 토닥였다. 밤이 깊도록 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일요일이 왔다.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2박 3일간 6명의 아이를 함께 돌본 마돌캠 가족 5명은 서울역 근처 카페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

“우리 한동안 만나지 말자. 어우, 힘들어 죽겠다.”

소윤과 동갑내기 딸을 키우는 안동맘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현숙이 손뼉을 치며 대꾸했다.

“나도 딱 그 얘기 하려고 했어. 우리 무더운 여름에는 만나지 않는 걸로!”

그러면서도 그들은 홍대 앞, 석촌호수 등 이번에 가보지 못한 곳들을 이야기했다. 힘들다고, 만나지 말자고 투덜거린 뒤 10분도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또 다음 모임 일정을 잡고 있었다.

롯데월드에서 딸 소윤과 범퍼카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는 박현숙(오른쪽).
롯데월드에서 딸 소윤과 범퍼카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는 박현숙(오른쪽).


기차 출발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기차 타는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 안동맘이 현숙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숙은 같이 손을 흔들어주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동맘을 꼭 끌어안았다. 안동맘도 현숙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생 많았어. 건강히 지내고 있어.”

현숙과 안동맘은 서로를 토닥였다. 세쌍둥이처럼 지낸 아이들도 그 옆에서 어른들을 따라 서로를 안아 줬다.

현숙이 뒤이어 기차를 타러 뛰었다. 급한 마음에 동동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다가 현숙은 뒤를 돌아봤다. 다른 마돌캠 가족들이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현숙과 눈을 마주치자 다들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현숙도 조용히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소윤의 손을 꼭 붙잡고 남은 계단을 내려갔다.

올해 7월 3일 서울역. 박현숙(오른쪽)과 딸 소윤(오른쪽 두 번째)이 기차를 타러 가기 전에 다른 소방관 유가족과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올해 7월 3일 서울역. 박현숙(오른쪽)과 딸 소윤(오른쪽 두 번째)이 기차를 타러 가기 전에 다른 소방관 유가족과 손을 잡으려 하고 있다.


▶프롤로그 보기
[산화]美, 제복과 함께한 수천 촛불… ‘13분 추모식’ 뒤 흩어진 한국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808/114850319/1


▶1회 보기
[산화]①“괜찮은 척했다, 살아가야 했기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809/114868239/1



▶2회 보기
[산화]②슬픔이 터졌다 “더는 못 가겠어”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810/114887400/1


▶3회 보기
[산화]③‘보상금 부자’ 됐다며? 툭 던진 한마디, 비수가 됐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811/114905719/1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119 신고 접수부터, 현장 출동이 끝난 후까지 이어지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https://original.donga.com/2022/firefighter/part01)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승건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
▽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




히어로콘텐츠팀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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