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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조기는 왜 연평 바다에서 사라졌을까[김창일의 갯마을 탐구]〈82〉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입력 2022-08-11 03:00업데이트 2022-08-11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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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명태는 남하하지 않고, 조기는 북상하지 않는다. 20세기 한국에서 가장 많이 잡히던 물고기가 자취를 감췄다. 명태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총어획량의 1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위상이 대단했으나 1986년 47만 t을 정점으로 급감해 2008년은 통계에 잡힌 어획량이 ‘0’이었다. 2014년부터 치어 방류를 이어가고 있고, 2019년부터 국내 명태잡이를 전면 금지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다. 명태가 잡히면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 될 정도다. 어민들은 노가리(새끼 명태) 남획으로 명태가 사라졌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반면 수산·환경 분야 과학자들은 수온 상승과 해류 변화를 주원인으로 꼽고 있다.

동해에 명태가 있었다면 서해를 대표하는 물고기는 조기였다. 봄에 서해로 북상하는 조기를 따라 어선과 상선 수천 척이 흑산도, 위도, 연평도 등지로 집결했다. 특히 연평도는 조기잡이 최대 어장으로 어선 세력이 대단했다. 동아일보 기사(1934년 6월 4일자)에서 연평도로 모여든 인파를 확인할 수 있다. 불과 1000명이 거주하는 연평도에 4월부터 6월까지 모여든 선원과 상인이 2만 명에 달한다고 했다. 한강, 임진강, 예성강에서 유입된 토사로 넓은 모래벌판과 갯벌이 형성됐고 잘피가 무성해 조기 산란장으로 최적지였다. 1969년 서해에 냉수대가 형성돼 조기가 북상하지 못하고 흑산도 근해에 머물렀다. 조기잡이 선박이 흑산 어장으로 일시에 몰려들어 조기 씨가 마를 정도로 어획했다. 북새통을 이루던 연평도 조기 파시(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는 열리지 못했다. 결국 1968년 파시가 마지막이었다.

조기잡이가 한창이던 시절을 기억하는 연평도 노인들 이야기를 기록한 적이 있다. “조기는 봄이 되면 산란장을 찾아서 연평도를 거쳐서 북한 대화도까지 올라갑니다. 6·25전쟁 끝나고 공업이 발전했잖아요. 그때는 정화시설 같은 게 변변찮으니 공장 오·폐수가 죄다 한강으로 흘러들었어요. 오염된 물이 조기 산란장을 뒤덮었습니다. 북한은 건설에 필요한 모래를 황해도 해안에서 조달했어요. 조기 산란장이 망가진 겁니다.” 연평도의 노인들은 연평 어장에서 조기가 사라진 원인을 산란장 황폐화에서 찾았다.

나일론 그물 보급과 어선 기계화에 따른 남획에서 원인을 찾는 전문가들도 있다. 나일론 재질의 그물이 1950년대에 보급돼 1960년대 중반 보편화됐다. 어선의 동력화로 그물은 점점 대형화됐다.

조기 어획량 변화, 서식지 이동 등은 남획 때문이 아니라 해양환경 변동이 원인이라 주장하는 수산학자도 있다. 남획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근거 없이 어민을 죄인으로 모는 행위라고 꼬집는다. 서해는 전체 조기 개체군 분포 범위의 5분의 1 정도이므로 바다 환경 변화로 서식지가 남쪽으로 약간만 수축해도 서해에서의 어획량은 크게 줄지만 전체 개체 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견해다. 어족자원 고갈이 아니라 서식지 변동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기가 연평 어장까지 북상하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아직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인간은 바다에서 생기는 일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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