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트럼프 압색에 한국 사례 든 NYT “전직 대통령 기소 민주주의 양날의 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10일 1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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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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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방수사국(FBI)이 기밀 반출 혐의 수사를 위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면서 중간 선거를 3개월여 앞둔 미국 정치권에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백악관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압수수색 사전 승인 가능성에 선을 그었지만 미 공화당은 “정적에 대한 정치적 박해”라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기 대선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 또 2020년 1월 6일 미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를 주도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들은 “내전이 임박했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파하며 FBI에 대한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 트럼프 “바이든은 다 알고 있다” vs 백악관 “뉴스보고 알아”


트럼프 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에 “바이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며 전날 FBI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어제 벌어진 일은 모든 미국 시민의 권리에 대한 전례 없는 침해”라며 “(지금) 미국은 제3세계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바나나 공화국은 정치·경제적으로 낙후된 중남미 국가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압수수색에 대해 사전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사전공모설을 일축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은 FBI의 압수수색에 대해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며 “우리도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정치적 박해’, ‘사법체계의 무기화’ 등의 표현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이날 FBI 수사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 화상 회의를 갖고 FBI의 상부 기관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승인한 법무부에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공화당 서열 3위인 엘리스 스테파닉 하원 의원은 “(법무부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와 함께 정적을 겨냥해 사법부를 무기화한 바이든(대통령)과 행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하원 정보위원회 간사인 마이크 터너 의원도 “FBI 국장에게 즉각적인 설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 인사들도 압수수색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펜스 전 부통령은 “압수수색은 미국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해치는 행위”라며 “법무장관은 즉각 국민들에게 어제 행동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성추문 의혹으로 퇴진한 민주당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는 이날 “이번 압수수색은 하찮은 기록들을 찾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치적 전술로 간주될 것”이라고 말했다.

● 마라라고에서 12박스 문건 압수한 FBI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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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반발에도 법무부와 FBI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소식통을 인용해 FBI가 압수수색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별장 마라라고 리조트 지하에서 12박스의 문건을 압수했다고 보도했다. FBI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이 올 1월 백악관에서 반출한 15박스 분량의 문건을 반환했지만 여전히 불법 반출된 문건들이 더 있다고 보고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또 이날 미 연방항소법원은 미 재무부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납세 기록을 하원 세입위원회에 제공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2019년 하원이 트럼프그룹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재무부에 2017,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납세기록 제출을 요구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면책권을 들어 이를 거부한데 대한 판결이다. 뉴욕주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자산 가치를 부풀렸다가 세금을 낼 때는 자산 가치를 줄였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FBI의 기밀 반출 수사와 1·6 의회 난입사태, 조지아주 대선 결과 뒤집기 수사에 이어 분식회계 수사까지 전방위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 트럼프 조기 출마 선언 검토…지지자들은 시위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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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수사망이 좁혀지자 조기 대선 출마 선언을 검토하고 있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과 두 차례 통화를 가졌다고 밝히며 “그가 중간선거 이전에 출마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그 믿음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인 마이클 카푸토는 CNN에 “중간선거가 끝날 때까지 대선 출마를 미뤄야 한다고 조언해왔지만 법무부가 어제 핵폭탄을 떨어뜨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이날 소셜미디어에 “우리는 굴복하지 않을 것”, “도달하지 못할 정상은 없다”는 등 대선 출마를 암시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올렸다. 또 이날 지지자들에게 발송한 정치자금 모금 이메일에서도 “이런 무법과 정치적 박해, 마녀사냥을 반드시 드러내 중단시켜야 한다”고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친(親)트럼프 성향의 온라인 포럼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들이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에 대한 공격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며 폭력 시위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NBC방송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포럼에 “이미 오래 전에 우리는 내전에 들어섰다”, “총을 장전했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으며 게시자 중 일부는 1·6 의회 난입사태로 기소된 인물들이라고 보도했다. CNN은 또 일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단체들이 FBI에 대한 시위에 대한 전단을 뿌렸다고 전했다.

한편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 가능성과 관련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등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전직 지도자를 기소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한국에선 세 명의 전직 대통령 중 두 명이 감옥에 있으며 한 전직 대통령은 부패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권위주의로 역행을 막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지만 정치적 경쟁자를 감옥에 가두는 선례를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한국과 함께 프랑스, 이스라엘, 브라질 등을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거나 처벌한 국가들로 언급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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