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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유윤종튜브]휴가지에 가져가고 싶은 여름 음악

입력 2022-08-09 03:00업데이트 2022-09-2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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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classicgam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육체는 슬퍼라, 아, 나는 모든 책들을 읽었건만/떠나자, 저 멀리 떠나자! 미지의 거품과 하늘 가운데/새들은 벌써 취하였구나!/그 무엇도, 두 눈에 비치는 낡은 정원도,/바다에 젖어든 이 마음 붙잡을 수 없으리…’(말라르메, ‘바다의 미풍’)

덥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상상해보면 한결 나을까. 오케스트라의 풍경화가로 불렸던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는 영원의 도시 로마의 역사와 역사를 배경으로 한 교향시 로마 3부작을 썼다. 그중 첫 번째인 ‘로마의 분수’ 중에서 2악장 ‘한낮의 트레비 분수’는 꿈속의 여행지 한가운데의 물과 빛, 무지개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휴가는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는 창의의 원천이지만 때로는 명작의 산실이 된다. 브람스가 휴가를 이용해 교향곡 2번을 작곡한 오스트리아 뵈르터 호숫가의 소도시 푀르차흐.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바야흐로 휴가의 정점이다. 휴가도 그냥 쉬는 게 아니라 창조력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했던 사람들이 있다. 브람스도 수많은 명작을 휴가지에서 썼다. 그의 교향곡 2번은 오스트리아 남부의 뵈르터 호숫가에 있는 푀르차흐에서 작곡한 곡이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분위기가 감돌아 한여름 휴가 때 듣기 좋다. 1악장 시작 부분부터 아, 이제는 쉴 수 있다, 너무 평화롭다며 길게 심호흡을 해보는 듯한 기분이다.

여름은 음악축제의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이면 더위가 덜한 쾌적한 고지대에서 콘서트도 열고, 음악가들의 마스터클래스도 여는 축제가 많다. 이런 축제에서 들어보고 싶은 곡이 있다. 산속 숲 사이로 흐르는 청량한 물살이 느껴지는 듯한 곡,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 4악장이다.

이런 여름 음악축제들에는 훤히 뚫린 자연 공간과 함께하는 콘서트가 많다. 1967년 미국 말버러 음악축제에서 연주된 송어 5중주는 악기 연주 사이 잠시 쉬는 부분에 신비한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수풀의 가수로 불리는 귀뚜라미들이다.

체력을 소진시키는 더위 속에서 바다나 시냇물이나 계곡을 찾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음악으로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 때도 있다. 기자는 여름 더위로 지칠 때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집 작품 90을 꺼내든다. 산속 계곡을 흐르는 시냇물, 어디선가 퐁퐁 흐르는 샘물 같은 여러 가지 물의 표정을 이 작품집은 전해주는 것 같다.

더위가 심할수록 밤은 달콤해진다. 낮에 활동하기 어려운 만큼, 저녁 나절 그나마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면 밤 산책을 한번 나가볼까, 달큰한 밤공기를 맡아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 작곡가 보로딘은 밤을 사랑하는 작곡가였다. 현악사중주 1번의 3악장은 ‘노트루노’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밤의 음악이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진하고 달콤한 온갖 자연의 냄새가 코에 밀려드는 여름밤을 전해준다.

보로딘이 묘사하는 러시아는 춥고 눈에 덮인 한겨울의 러시아가 아니라 남쪽 초원지대 여름의 러시아다. 그가 끝맺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오페라 ‘이고르 공’에서 주인공인 이고르는 초원지대 민족을 정복하러 원정을 떠났다가 포로가 된다. 초원 민족의 추장은 이고르를 잘 대접하고, 연회를 열어서 호의를 베풀며 북쪽으로 돌아가지 말고 자기들과 함께 지내자고 제의한다. 초원 저 너머 아련히 해가 저물고, 열기가 식은 땅 위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전사들과 처녀들이 춤을 추는 이국적인 장면이 있다. 보로딘의 ‘이고르 공’ 중에서 ‘폴로베츠인의 춤’이다.

이탈리아는 성악의 나라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나폴리 민요가 인기 있다. 민요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대부분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그 시대 민중의 가요다. ‘오 솔레미오’ 같은 화창한 곡도 있지만 어딘가 울분 같은 어두움이 느껴지는 곡들도 많이 있다. 우리가 오늘날 나폴리에 가면 느껴지는 화려함 이면의 퇴락함과도 같게 느껴진다.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부르는 나폴리 노래 ‘엄마, 뭘 알고 싶은 거죠’를 듣고 있으면 나폴리의 남루한 한 부두노동자가 머리에 떠오른다. 러닝셔츠만 입은 채 종일 고된 노동을 하고 밤중에 돌아온 그는 창을 열고 빛나는 항구를 바라본다. 그의 머릿속에 종잡을 수 없는 슬픔이 치민다.

너무나도 태양이 뜨거울 땐 구름 한 점이라도 하늘을 가려주고, 어디선가 소슬한 미풍이 불어오면 그렇게 달콤할 수 없다.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이 바로 그런 느낌을 전해준다. 저 구름을 투명한 유리잔에 담아 삼킬 수 있다면!

유윤종 문화전문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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