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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의사의 ‘장애 외면하면 자식은 지옥 삶’ 한마디에 마음 바꿔”

입력 2022-08-06 03:00업데이트 2022-08-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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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US오픈’ 초대 챔피언 프로골퍼 이승민의 어머니 박지애 씨
아들, 장애 가진 선수들 출전한 美골프협회 주최 대회서 우승
네 살 때 자폐성 발달장애 진단
“아직 어려서 그래” 부정했지만… ‘장애 아들 둔 엄마’ 인정하며 동행
1일 경기 성남시 판교역 인근에서 만난 발달장애 프로골퍼 이승민(오른쪽)과 어머니 박지애 씨가 의자에 앉아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민은 지난달 미국골프협회가 개최한 US 어댑티브 오픈에서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성남=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돼요?”

1일 경기 성남시의 한 카페에서 본보 기자와 인터뷰 중이던 이승민(25·하나금융그룹)을 알아본 한 시민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이승민이 연신 “저요?” 하며 당황하자 함께 있던 어머니 박지애 씨(56)가 “(이)승민이가 유명해져서 그래. 엄마 볼 때처럼 웃고 있으면 돼”라고 말했다.

이승민은 지난달 20일 막을 내린 미국골프협회(USGA) 주최 ‘US 어댑티브 오픈’에서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이 대회는 지체, 시각, 발달 등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8개 부문에 각각 출전해 장애 정도에 따라 전체 길이가 다른 코스에서 순위를 가리는 대회였다. 이후 사람들이 아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말을 걸어올 때마다 박 씨는 가슴이 찡하다.

이제 이승민은 장애 극복의 대명사가 됐지만 박 씨조차 아들이 여섯 살 때까지는 장애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이승민이 두 살이던 1999년 주치의가 “승민이는 남들과 좀 다르다”고 했을 때도, 네 살이던 2001년 자폐성 발달장애를 진단받은 뒤에도 박 씨는 ‘아직 어려서 그래’라고 되뇌었다.

이승민이 남과 다른 행동을 할 때면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이승민은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 받으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가지고 노는 대신에 수십 대씩 일렬로 줄을 세웠고, 식탁 위에 놓인 접시를 하루 종일 한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리기도 했다. 아들이 이런 행동을 반복할 때면 나이가 들면서 나아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그런 박 씨의 마음을 바꿔놓은 건 의사의 한마디였다. 이 의사는 “부모가 자식의 장애를 외면하면 창피함을 숨길 순 있어도 아이는 지옥 같은 삶을 살 것”이라며 “아이가 행복하려면 부모부터 자식의 장애를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씨가 자신을 ‘장애 아들을 둔 엄마’로 인정한 건 그때부터였다.

이승민이 중학교 1학년이던 2010년 골프를 시작하면서 박 씨는 그림자처럼 아들 곁을 따라다녔다. 이승민이 그린 위에 올라간 자신의 공만 바라보며 직진하다가 상대 선수의 공이 굴러갈 라인을 밟고 지나갈 때면 박 씨는 입버릇처럼 “우리 아이가 장애가 있다. 죄송하다”고 설명해야 했다.

어머니 박 씨는 13년간 아들을 위해 고개를 숙였고, 덕분에 이승민은 세상 앞에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고교 2학년이던 2014년 세미프로 자격증을 딴 이승민은 2017년 발달장애 선수로는 국내 최초로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정회원 자격을 얻었다.

아들이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도록 박 씨는 2년 전부터 캐디 윤슬기 씨(42)에게 지도를 부탁했다. 윤 씨는 매일 11시간씩 빠짐없이 반복 훈련을 지시했다. 팔 힘만으로 위에서 아래로 도끼 내려찍듯 하던 스윙을 좌우 방향으로 바꿔주기 위해서였다. 훈련이 버거워 연습장을 뛰쳐나갈 때마다 이승민이 안겨 울 곳은 박 씨의 품뿐이었다.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천재 변호사 우영우는 로스쿨, 로펌 동기인 최수연이 일상생활 중 겪는 어려움을 도와주자 그를 ‘봄날의 햇살’이라고 불렀다. 이승민은 어머니를 ‘나의 상냥한 수호천사’라고 부른다. 박 씨는 “그저 승민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을 바란다. 승민이가 조금 늦되더라도 자신의 목표를 하나씩 이뤄 가는 걸 곁에서 하나하나 지켜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성남=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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