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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길들일 수 없는 치명적 매력, ‘고양이 숭배’의 역사[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2-08-05 03:00업데이트 2022-08-05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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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터키) 에페소스 셀수스 도서관의 귀족 저택 앞. 마침 들고양이 한 마리가 자리 잡고 볕을 쬐고 있는 모습을 포착했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 등지에서 고양이는 귀족들의 반려동물이었다. 강인욱 교수 제공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수많은 반려동물 중에서 고양이는 인간에게 특별하다.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세상의 수많은 동물을 파괴하는 인간이건만 유독 고양이에게는 충성을 바치며 집사의 역할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1만 년 가까이 이어지는 반려묘의 역사 속에서 고양이는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했다. 어쩌다가 고양이는 다른 애완동물과 달리 사람을 집사로 다루게 되었을까. 인간과 함께한 고양이의 수천 년 역사를 살펴보자.》

9000년 전 야생 고양이

인간의 대표적인 반려동물이건만 정작 고양이가 길들여졌는지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고고학자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고양이의 특성 때문이다. 늑대에서 진화한 개와 마찬가지로 고양이도 맹수류에서 진화했다. 개의 경우 인간의 삶에 밀착하여 살면서 지속적으로 종이 개량되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개가 되었고, 그 개량의 과정은 고스란히 유물로 발견되는 뼈와 DNA에 남아있다. 반면에 고양이는 인간의 곁에 살았지만 인간의 동반자로 함께하기보다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사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지속적으로 가축화가 진행되지 않고 좀 지나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 결과 발굴한 고양이 뼈만 가지고는 생포된 들고양이인지 집고양이인지 밝히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가장 빠른 고양이의 흔적은 근동에서는 약 9000년 전, 중국에서는 5000년 전에 발견되었다. 모두 신석기 시대이다. 대체로 고양이는 빙하기가 끝난 직후 농사를 짓는 마을이 등장하면서 인간과 본격적으로 가까워졌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곡식을 갉아먹는 쥐들을 잡아먹는 고양잇과 동물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초기의 고양이는 지금의 고양이와 직접 관련은 없다. 고양이는 자신이 필요할 때에 인간에게 다가왔고, 또 훌쩍 사라져서 다시 야생의 들고양이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의 고양이 숭배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 미라를 담던 관이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강인욱 교수 제공
기원이야 어떻든 인간의 숭배 대상이 된 것은 바로 고대 이집트였다. 이집트에서는 선왕조(先王朝)인 기원전 3700년경의 무덤에서 고양이 뼈가 발견되었는데 무덤에 묻히기 4∼6주 전에 부러진 뼈까지 치료받은 흔적이 있었다. 즉, 살아생전에 이미 사육되고 인간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후 수천 년간 이집트가 멸망할 때까지 이집트인들은 극진하게 고양이를 모셨다. 수많은 이집트인들의 무덤에는 수많은 고양이 미라가 주인의 미라와 함께 묻혔다. 심지어 고양이의 먹이인 쥐도 함께 미라로 만들어서 넣어둘 정도였다. 그리고 바스테트를 비롯한 수많은 신들에게 고양이의 이미지를 부여하였고 고양이를 죽이면 사형시킨다는 법을 만들 정도였다.

고양이는 또한 맹수의 상징이기도 했다. 고양이는 호랑이, 표범 등 잔혹한 맹수들과 함께 고양잇과에 속한다. 다만 그들 중 가장 작아서 인간이 길들일 수 있었을 뿐이다. 초원의 유목 전사들도 자신의 상징으로 고양이를 내세우기도 했다. 대표적인 초원의 기마 문화인 스키타이와 흉노의 다양한 동물 장식에서 가장 애용되는 동물이 바로 고양잇과의 동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쨌거나 이집트인의 고양이 숭배는 너무 지나쳐서 주변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었다. 기원전 525년 페르시아 제국의 캄비세스 2세는 펠루시움 전투에서 이집트를 무너뜨렸다. 이집트가 수천 년간 이어온 왕국의 영광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외세에 복종되는 큰 사건이었다. 일설에는 이 전쟁에서 이집트에 맞선 페르시아 군대가 고양이를 앞장세우고 고양이를 그려 넣은 방패를 사용했다고 한다. 고양이를 경외하는 이집트의 군대가 차마 공격을 못 하고 머뭇거리는 중에 이집트 군사를 무찔렀다는 기록이다. 물론, 이 전쟁을 두고 당시 최고의 역사가였던 헤로도토스의 기록에는 정작 고양이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그 정황은 다소 의심이 된다. 어쨌든 이집트의 고양이 숭배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인간을 지키는 수호동물


고양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차가운 도시이다. 여기에는 수천 년 인간 역사가 숨어있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어 살면서 거대한 곡식을 쌓아두어야 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그 곡물을 갉아먹는 쥐가 들끓게 된다. 그로 인해 식량의 위기가 오는 것은 물론이고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의 원인이 되어 도시 자체를 멸절시킬 수 있다. 설치류를 잡아먹는 고양이야말로 도시의 형성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이러니 최초의 문명인 이집트가 고양이를 떠받들고 살 만하지 않는가.

고양이가 필요한 또 다른 사람들은 여행가였다. 이집트의 고양이는 지중해와 홍해를 통해 교역이 확대되면서 선원들과 함께 배에 타서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배 안에 있는 유해동물로부터 곡식을 지키면서 또한 외로운 선상 생활의 동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다 생선도 잘 먹으니 안성맞춤이었다.

2500년 전 고양이 모양에 금박을 씌운 카자흐스탄 기마민족 사카문화의 예술품. 강인욱 교수 제공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에서도 고양이는 동반자였다. 최근 카자흐스탄에서는 2800년 전 만들어진 잔켄트라는 도시에서 이미 사육화가 된 집고양이의 뼈가 발견되었다. 이 고양이 뼈를 분석한 결과 주로 작은 설치류를 먹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에 만들어진 도시에서 곡식을 지키기 위해 근동 지역에서 고양이를 들여왔다. 그리고 이 고양이는 실크로드의 여행가들과 함께 사방으로 퍼졌다. 고양이가 곡물을 지키고 나아가서 귀신도 막는다는 소문과 함께였다.

아마 한국에도 실크로드를 통해서 고양이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록만 본다면 한국에서 고양이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가 되어서야 등장한다. 하지만 이미 가야의 유물 중에 식량 창고 위에서 쥐를 노려보는 고양이의 토기가 있고, 고양이 뼈들도 제법 발견된다. 한국은 약 3000년 전부터 고인돌을 만들고 벼농사를 짓는 마을이 등장했다. 이때부터 곡식을 쌓아두는 창고가 널리 발달했으니, 고양이 같은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 같다. 다만 아직 그것을 증명하는 자료는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외로운 도시인의 동반자


고양이가 가진 야성은 인간에게 고마운 것이다. 고양이를 길들인다면 자칫 그 특성은 사라질 수 있다. 고양이를 길들이는 대신에 그 야성을 유지하고 고양이의 집사를 자처한 것은 인간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런 실용적인 이유만으로 지금의 고양이를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지금은 고양이가 쥐를 잡을 일도, 또 곡물을 지킬 필요도 없지만 여전히 인간에게 고양이는 필요하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을 움직이는 고양이만의 감성도 있었다. 이미 기원전 6세기경부터 페르시아의 여성은 고양이를 너무 아낀 나머지 각종 장식으로 치장하여 함께 침대에서 재우는 등 정성을 다해서 모셨다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로 고양이만의 치명적 감성은 인간을 유혹해왔다. 지금도 고양이가 군림하게 된 것은 바로 도시라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문명 때문이다. 자연과 분리되어 인간들이 모여 사는 도시의 건설로 인간은 편리함과 동시에 극심한 외로움을 얻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고양이 사랑으로 이어졌다. 인간에게 복종하지도 않으며 또 맹수의 후손이던 고양이에 대한 대책 없는 우리의 사랑이 계속되는 이유는 죽음보다 더 힘든 외로움이라는 도시가 만든 부산물이 아닐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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