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정치로 까먹은 점수, 정책으로 메울 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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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새 쏟아진 설익은 정책들
분위기 바꾸려다 정부 신뢰 하락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장관들이 국민이 감탄할 정책을 쏟아내 분위기를 확 바꿔줬으면….’ 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스타 장관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안 보인다는 말이 나와도 좋다”고 했을 때 속내는 이런 것 아니었을까. 새 정부의 진심이 담긴 정책이 국민 관심사로 떠올라 도어스테핑, 인사 논란, 여당 내홍으로 깎아먹은 점수를 만회하길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을 전후해 벌어진 일들은 그런 바람과 많이 달랐다.

대표적 사안이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채무조정 지원 방안이다. 신용 낮은 청년채무자의 대출이자를 최대 절반까지 깎아주고, 3년간 원금 상환도 미뤄주는 프로그램이 특히 논란이 됐다. 금융위로선 과거 카드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그랬듯 어차피 한 번은 치르고 넘어가야 할 대규모 채무조정이고, 정부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는 2030세대의 마음을 돌리는 데 도움도 된다는 심산으로 서둘러 이 방안을 내놨을 것이다.

문제는 청년들마저 “빚을 내 주식, 가상화폐에 투자해서 날린 돈을 왜 세금으로 메워 주냐”며 반발한 것이다. ‘공정’에 한없이 민감한 청년들의 정서를 읽지 못해 생긴 실책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선수들 동의도 없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추진하다가 청년층의 반발에 부딪쳐 허둥대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금융위, 금융감독원, 검찰이 함께 내놓은 공매도 대책도 뒷말이 많다. 코로나19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매도를 통제한 나라는 한국뿐이고, 앞으로 증시에 더 많은 외국 자금을 끌어들이려면 공매도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시장의 일반 상식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도전 중인 이재명 의원이 공매도를 싫어하는 개미투자자를 의식한 듯 “한시적 공매도 금지”를 옹호한 며칠 뒤 정부 대책이 나왔다. 공매도 전면 금지가 아닌 건 다행이지만 검찰이 불법 공매도를 응징한다는 발표는 ‘검찰 공화국’ 이미지를 더 강화했다.

최근엔 교육부가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1년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가 학부모, 교육계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나흘 만에 발을 빼는 일이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 초기 초등학교 조기 입학 방안을 불쑥 꺼냈다가 물러섰던 일의 판박이다. 대통령실이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국민제안을 모아 정책화하겠다고 했다가 클릭 수 조작 등이 감지됐다는 이유로 취소한 것 역시 어이없는 일이다.

이런 일들이 보름 사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해당 부처들로부터 대통령이 직접 보고받고 관심을 표한 사안들인데 대체로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고, 어느 지점에서 반발이 나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가 허점을 찔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부 캐비닛에 묵혀 있던 정책을 급히 꺼낸 듯 정책 소비자의 급변하는 정서와 시류를 읽지 못하는 공무원 특유의 ‘정책 감수성’ 부족이 느껴진다.

정부의 ‘정치 성적’과 ‘정책 성적’은 비슷해야 정상이지만 한국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정책 실패에도 40%대 지지율을 끝까지 지킨 문재인 정부가 증거다. 극단으로 갈라진 좌우 진영, 세대 간 의견 차이가 원인일 것이다. 국민들도 ‘밥 먹는 배 따로, 빵 먹는 배 따로’ 식으로 정치와 정책을 별개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 빠르게 가” 식으로 공무원들을 채근하면 ‘정책 사고’가 반복돼 정부의 신뢰만 하락한다. 임기 안에 반드시 결과를 내야 할 노동 연금 교육 재정 등 큰 개혁의 동력도 약화될 것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설익은 정책#정부 신뢰#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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