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드라마와 현실은 얼마나 같고 다를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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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양육 에세이 펴낸 두 엄마 이야기

“우영우처럼? 그런 대단한 능력 바라지 않아”

‘특별한 아이에서 평범한 아이로’
권현정씨 “평범한 일상, 부모들의 소망… 모두와 잘 어울리는 무난한 사람 됐으면”


이유원 군(왼쪽)과 엄마 권현정 씨. 권 씨는 “유원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단체 클라이밍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사회성이 좋아졌다”고 했다. 권현정 씨 제공
이유원 군(왼쪽)과 엄마 권현정 씨. 권 씨는 “유원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단체 클라이밍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사회성이 좋아졌다”고 했다. 권현정 씨 제공
“우영우처럼 암기력이 천재적인 아이는 극히 일부일 뿐이에요. 운동화 끈도 못 묶고, 티셔츠 단추조차 못 채우는 아이가 더 많습니다.”

권현정 씨(42)는 2014년 아들 이유원 군과 병원을 찾았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당시 세 살이던 아들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았다. 권 씨는 하늘이 무너진다는 심정을 그때 처음 느꼈다. 돌아오는 길에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권 씨는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뛰지도,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유원이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 다짐했다. 그 경험을 최근 에세이 ‘특별한 아이에서 평범한 아이로’(캥거루북스·사진)에 담았다.

권 씨는 지난달 28일 전화 인터뷰에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조심스레 언급했다. 그는 “대중매체는 특정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고기능 자폐증’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인의 부모들이 바라는 건 그런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라고 강조했다.

유원이도 처음엔 혼자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1초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에게 권 씨는 ‘응용행동분석’이란 자폐 치료를 이어갔다. 장난감을 쥐여주며 가만히 기다리게 하고, “이리 와”라고 하면 이 의자에서 저 의자로 옮겨가는 연습을 했다. 절제력을 기르려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학습도 반복했다.

길고 고된 시간이었지만 유원이는 몰라보게 나아졌다. 올해 11세인 유원이는 혼자 양치질은 물론이고 목욕도 할 수 있다. 밥을 먹고 수저를 개수대에 가져다둔다. 혼자 책을 읽고 유튜브도 본다. 놀러가고 싶은 장소를 인터넷에서 찾기도 한다.

“발달 속도는 또래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눈에 띄게 뒤처지진 않아요. 유원이가 우영우 같은 특별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모두와 잘 어울리는 무난한 사람이 되길 꿈꿉니다.”

“드라마가 뜨자 ‘아이는 뭐 잘해’ 자꾸 물어봐”

‘아들의 답장을 기다리며’
채영숙씨 “올라가야 할 길 여전히 멀지만 언젠가 ‘야호’하고 소리칠 날 오겠죠”


변호민 씨(왼쪽)의 어머니 채영숙 씨는 “하루하루가 막막해 매일 아침이 오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어느새 아이는 어른이 됐고, 아이의 장애를 온전히 인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채영숙 씨 제공
변호민 씨(왼쪽)의 어머니 채영숙 씨는 “하루하루가 막막해 매일 아침이 오는 게 무서웠다. 하지만 어느새 아이는 어른이 됐고, 아이의 장애를 온전히 인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채영숙 씨 제공
“요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끄니까 주변에서 쏟아지는 질문이 한결같아요. ‘호민이는 뭐 잘해?’ 자폐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이 우영우가 될 순 없는데….”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 경험을 담은 에세이 ‘아들의 답장을 기다리며’(꿈꿀자유·사진)를 쓴 채영숙 씨(56)는 이런 분위기가 “이젠 익숙하다”며 웃어넘겼다. 2005년 영화 ‘말아톤’이 흥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아이가 뭘 잘하는지 부모가 찾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질책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폐 아동의 가족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는 관심이 없다. 채 씨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1993년 잠깐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들 변호민 씨(32)가 세 살 때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은 뒤 삶을 지속할 의미를 찾지 못했다.

“누군가 ‘그래도 아이는 축복의 선물’이라고 위로했을 때, ‘그럼 당신이 똑같이 짐을 지어보라’며 역정을 냈어요. 또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라’는 말엔 ‘남의 팔 하나 잘리든 말든 내 손톱 밑에 든 가시가 아픈 것’이라며 소리쳤죠.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제겐 뼈를 깎는 것처럼 힘들었어요.”

채 씨가 아들을 키우던 시절엔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교사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아이 뺨을 때리기도 했고, 버스를 탔다가 승객들의 눈초리에 중간에 내린 적도 많았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아이가 ‘조금 다른 아이’란 걸 납득시키긴 어려웠다.

“그랬던 아이가 어느새 청년이 됐어요. 호민이는 일반 성인들처럼 일을 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이젠 싫으면 싫다 똑 부러지게 거부하고 자기 의견도 생겼죠. 올라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지만, 언젠간 정상에 도착해 ‘야호!’ 소리칠 수 있지 않을까요. 우영우 같은 능력이 없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우영우#자폐#드라와 현실#에세이#두 엄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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